<라오디게아교회, 부유하나 책망만 받은 교회>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계 3:17)
라오디게아는 교통, 무역, 금융의 중심지며, 면직과 모직 산업이 발달했던 도시입니다.이런 여건으로 라오디게아는 재력이 풍부한 도시가 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이곳 사람들은부족함을 몰랐고, A.D. 60년경에 발생한 대지진 때도 자력으로 피해를 복구할 정도로 재력이 탄탄했습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는 연고로 된 안약 제조기술이 유명했는데, 안약 제조 학교가 있을정도였다고 합니다. 사도 요한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
한 것이 없다 하나 실상은 가난하고 눈이 멀었다.’고 지적하면서(계 3:17)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8)고 영적 무지를 깨우친 것은 이런 지역적 배경에서
나온 말씀으로 보입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라오디게아는 남쪽으로 6마일 떨어진 데니즐리에서 물을 끌어와 식수와 사용했습니다. 이 물은 미네랄 성분이 많은 온천수의 일종으로 물의 온도는 미지근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보면 주께서 왜 이 교회를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책망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19-20)
= 주님이 함께 식사하기를 원치않는 라오디아게 공동체에게 너희들 언제까지 나를 문밖에 둘것인가 나는 너희와 함께 식사하고 싶다고 말씀하고 계신것 입니다 아멘!! =
[빌라델비아교회, 작은 능력으로 이긴자가 된 교회]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빌라델비아교회는 일곱 교회중 서머나교회와 함께 유일하게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만 받는 교회로 나타납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작고 무력한것 같으나 내실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건실한 신앙을 가지고 이단을 물리쳤으며, 여러 가지 신앙의 시련이 닥쳐와
도 주님이 시련을 주는 이유를 그 시간이 바로 참과 거짓이 나누어지는 시간인 것을 알아 그 기간동안 무기력해 보였지만 버티고 참아야 하는 상황 버티고 인내하고
참았고 요동치 않고 인내와 성실로써 현실을 잘 극복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에 주님의 상급이 약속되어있었던 것 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코로나라는 전대 미문의 사건 이후 모든 분야에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수가 없습니다, 지금 문명전환기라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난 35주년이후 7-8월 여름내내 산업물질 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기에 있기에 바울의 3차전도여행과 에베소 교회에게 보낸편지 6장 말씀을 통해 생태적 대안 세계관으로 산업물질 문명적 자아 중심적 소아에서 생태적 자연과 지역과 마을과 자아가 공존하는 생태적 문명으로 완전 무장하라는 큰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은 이제 10월 첫째주나 둘째수 사이 대면예배가 시작되기에 이제 10월 대면예배 출발시기 까지 말씀을 신앙적으로 준비해야할 마을 가짐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이시기의 변화은 아무도 쉽게 예측할수가 없습니다. 또 코로나라는 전대 미문의 사건 이후 모든 분야에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문명전환기에는 자신의 주관적이 이야기를 하기전에 먼져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이번주 설교는 계시록 말씀을 중심으로 국내외 신학자들과사회학자들이 이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가 나갈길을 제시한“바이러스에 걸린 교회”라는 책을 중심으로 신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의미로 오늘 말씀을 나누려고합니다.
기독교와 관련된 코비드의 책들은 주로 비논리적 성서해석 혹은 교회의 자기 방어적인 책 혹은 방역에 대해 공권력과 국가의 교회 탄압이라는 자기 합리화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작년과 올해에 출판계에서 놀랍게도 수천권이 휠씬 넘는 팬데믹 관련 책들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한 상당수의 책들이 빠르게 출간되었습니다.하지만, 기독교와 관련된 코비드의 책들은 주로 비논리적 성서해석 혹은 교회의 자기 방어적인 책 혹은 방역에 대한 비판적인 자기 합리화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팬데믹은 공권력과 국가의 교회 탄압이며 대면예배 금지는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면서 사람들을 혹세무민하는 책도 있었습니다. 또한, 팬데믹으로 교회 변혁을 해야한다는 구호는 있지만, 시대 변화는 읽지 못한채 아직도 교회수호와 교회성장 중심의 이야기를 넘어서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우리가 준비해야할 변화는 우리 한국교회가 코로나가 닥치면서 대면 예배를 주장하면서 사회적 신뢰도가 급강하한 것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합니다, 2차에 걸친 대 유행에 한국교회의 큰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2020년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총 네 번의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맞았는데 그중 두 번이 교회로 인해 촉발된 것이고 대면 예배 자제라는 방역지침만 따랐어도 큰 사회적 희생을 치르지 않았으리라는 점에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그러면 교회 밖으로부터 오는 비판적 시선을 알면서도 대면예배를 강행하겠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 한국 개신교의 교회의 각종 모임과 프로그램은 신자를 데려오거나 붙잡아 두기 위한 교회 유지와 성장의 수단이다. 풀어서 말하면, 교회 내부의 체제와 질서의 유지 문제가 교회의 공적, 사회적 (선교적) 책임의 문제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셈입니다. 교회 그 자체를 유지,관리, 성장시키려는 목적이 창조세계의 화해를 위해 부름받은 공동체로서의 선교적 소명 의식을 집어삼켜 버린 상황인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회론과 하느님의 선교의지가 충돌하는 상황입니다.물론 제도교회로서 이러한 교회의 제도 유지하는 점의 필요성을 전적으로 무시할수는 없지만 자유롭게 사유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는 시민-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교인 개개인이 자유로운 성찰적 주체가 되고, 책임 있는 관계적 주체가 되며, 이는 공동체로 이르는 길 즉 만남, 성찰, 치유, 연대로 이어져야 합니다.(성공회대양권석교수)
두번째 김주인 연구자는「코로나19 위기 속 교회의 변화와 이웃됨의 자세」에서 교회의 사회적 고립이 가속화되는 상황을 타개할 새로운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모색한다. 필자는 온라인 교회의 부상과 목회자 이중직의 확산을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응답인 동시에 기존 질서에 고착된 개신교회에 새로운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와 함께 교회가 지향해야 할 이웃됨의 자세로서 ‘조건 없는 환대’와 ‘이웃과의 상호인정’을 제안한다. 군집성과 결속력이 우선시되는‘한 몸’에 대한 열정은 교회 내부로는 훈육과 강제를, 외부로는 배제를 합리화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한 덩어리로 묶여 하나의 생각으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 내부의 다양성과 외부의 자극에 늘 열려 있어야 하는 몸으로서의 신앙 공동체라는 신학적 제안을 건넨다 (조민아 교수는 「부서지고 나누며 다가가는 그 몸」)
세 번째 코로나19 사태는 한국 교회와 교인들 전체에 사회적 시민의식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분석입니다.신천지와 보수적 개신교회처럼 시민적 상식에 미달한 이들의 약점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민적 상식에 의해 구성된다는 시민성 자체의 약점도 드러낸다고 보았다. 많은 신앙인들이 중세적 미신과 기복 그리고 주술 신앙을 넘어 서지 못하고 있는데 오제홍 연구자는 그 핵심적 이유로 「신천지 현상과 그리스도교, 그리고 성경 문자주의」는 한국교회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 원인을 분석한 글을 썼습니다.
오늘 한국의 신천지와 일부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한계로 보수주의와 문자주의에서 기인한 천국과 지옥 혹은 구원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등 이분법적 가치판단을 하는 단순화는 결국 배타적 행동 양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개인 구원을 강조하는 종교들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방법에 대한 인식개선이 먼저되어야 하고, 성경에 기록된 문자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문맥과 문맥 사이에 담긴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하며 단순 암기식 방법에서 벗어나, 역사를 비롯한 시대적 연구 및 시야 확대하는 창의적 교육법을 통해 구성원들의 인식 속에 내재된 편견을 바로잡는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코로나 이후 오히려 온라인 소그룹으로 많은 공부모임이 등장하는 이때에 이러한 온라인 소그룹 공부 모임을 통해 우리 약대동의 마을 학당처럼 새로운 성서읽기 새로운 돌봄과 문화에 기초한 인문학적 성서연구와 지역인문학이 마을곳곳에서 들불처럼 일어나야 할 것 입니다.
넷째로 김승환 연구자는백화점 교회의 종말과 새로운 교회들」에서 새로운 교회론으로 온라인 교회와 가정 교회에 주목합니다.코로나19로 인해 오늘날 디지털종교개혁은 건물중심의 신앙체제를 무너뜨리고 다양한 참여와 실천이 가능한 신앙의 해방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그 실례로 온라인 교회와 가정 교회의 등장을 들고 있다.‘대면예배’와 ‘비대면 예배’가 공존하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사역이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으로 제시됐습니다
다섯째로 배근주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해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돌봄의 윤리, 돌봄의 공동체를 제시한다.
앞으로 돌봄은 단순히 여성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돌봄을 떠맡아야 하는 모든 사람의 문제가 되어야 하는데 특별히 교회가 영성 돌봄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며, 돌봄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담론 만들기를 주문한다.
마지막으로 김진호 목사는 코로나 이후의 한국교회의 나갈길로 단순히 크기가 작은 교회가 아니라 탈성장, 탈권위 탈성별의 내용을 가진 교회를 제안하고 이 작은 교회들은 지역사회에 열린 교회 정도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동맹 연대하지 않고서는 한국교회의 미래는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김진호 목사는 코로나의 변화는 신자들의 신앙에서 ‘장소로서의 교회’의 의미가 퇴조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 되었고,1990년대 이후 이러한 문제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교회로부터 이탈하는 떠돌이 신자 현상, 즉 가나안 성도 현상이 본격화되기 시작되었다고 분석합니다. 여기에 더해 온라인 관계망 형성 속도와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급격한 이행도 교회로부터의 이탈을 가속화시켰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신자들의 신앙에서 ‘장소로서의 교회’의 의미가 퇴조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 되었고, 이에 김목사는 새로운 교회의 모델로 ‘작은 교회’를 제안합니다,
김목사가 규정한 ‘작은 교회’란 규모에 따른 기계적 분류보다는 성장주의에 저항하는 교회, 더 나아가 신앙적, 신학적 노선을 종합해 ‘탈성장, 탈권위, 탈성별을 추구하는 교회’입니다.그래서 김진호목사는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교회의 모델로 라오디아교회의 부자교회가 아니라 빌라델피아 교회가 칭찬을 받듯이 작은 교회’를 제안한 것입니다,
요약하면 ‘작은 교회’란 규모에 따른 기계적 분류보다는 성장주의에 저항하는 교회,
더나아가 신앙적, 신학적 노선을 종합해 ‘탈성장, 탈권위, 탈성별을추구하는 교회’이고.
그리고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는 라오디아교회처럼 크고 부유한 교회에서 빌라델피아 교회처럼 작은 교회로 변신해야 하는데 단순히 크기가 작은 교회가 아니라 탈성장, 탈권위 탈성별의 내용을 가지고 지역사회에 열린 교회 정도가 아니라 지역 사회와 동맹 연대하지 않고서는 한국교회의 미래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져 부자 교회 라오디아교회의 패쇄성을 보아야 합니다.
20.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 주님은 주님이 두드려도 “주님과 함께 식사하지 않고 함께 식사하지 않고 혼자만 살려는 큰 라오디아 교회의 패쇄성에 주님은 언제까지 나를 문밖에 둘것인가 나 너희와 함께 식사하고 싶다 문을 열어라!하고 질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라오디아 교회의 폐쇄성과 함께 작고 가난한 빌라델피아 교회의 열림과 연대성을 보아야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3;8)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코로나 이후는 우리는 지금과는 전적을 다른 새로운 교회 공동체 탄생을 기대하며 코로나 이후의 전혀다른 교회 생태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님! 이제 10월 교회 대면예배를 앞에두고 교회는 지난주 기도문에 나와있듯이 우리는 주일예배와 구역모임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기도하고, 중보기도회, 문예학당, 성서학당과 도시농부들을 통해 함께 기도하고 배움고 실천하길 원합니다.
주님!이제 새롬의 지역선교는 돌봄 문화 센타로 나가면서 코로나 이후 교회와 마을의 새로운 연대와 돌봄 모습이 더욱 본격화되어 나갈것 입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은 교회 교인들과 마을 주민들과 청소년들이 신앙적 유무를 넘어 대면 비대면의 쌍방향 소통을 통해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나가면서 마을과 교회와 지역과 시민사회가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더 이상 부유한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부유하지만 눈이멀고 닫힌 교회가 아니라 작지만 신실하고 쌍방향적으로 소통하는 작지만 열려있고 영향력있는 빌라델피아 교회 유형의 생태계로 창발 탄생되어져 나가길 하오니 “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 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3;8)하는 주님의 말씀을 이루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