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우리는 그동안 에베소서에서 출발하여 요한계시록을
공부하였고, 오늘을 요한 복음 4장을 읽으려 합니다,
그러데 이 요한 계시록과 요한 복음 요한 123서는 요
한 학파라는 한 학파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요한 학파의 문서들의 기록순서는 요한계시록이 최초
로 집필되었고,그 다음에 요한복음이 그리고 요한일서
그리고 요한이서와 삼서가 차례대로 쓰여졌다고 이야
기 합니다. 그런데 이 요한 문서들은 예수님 사후 90-
100년 사이에 쓰여진 문서들인데 이 문서는 그 특징이
예수님을 알파요 오메가로 . 길이요 진리다, 빛이요
생명의 떡과 물이라는 영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하고 시간적
으로는 알파요 오메가처럼 영원한 분으로 묘사됩니다.
지난주 요한 계시록에서 본 것처럼 땅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늘에서 예루 살렘을 묘사하고, 시간도 영원성
의 예수님이 나타나고 장소도 한 공간에 갇힌 예수님이 아니
라 바람과 불처럼 성령처럼 장소와 공간을 넘어서는 영적
성령의 예수님으로 묘사되기 시작하고 있는 것 입니다.
문명전환기를 맞이하는 니고데모 vs 사마리아여인의 태도
예를 드면 요한 복음의 도입부에 예수님은 요한 복음의 두 주인공인 산헤드린의 두 주인 공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문명전환기에 바람과 같은 성령으로 거듭나기를 요청하고 있고 오늘 우리의 주인공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은 생명의 물을 이야기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여인의 요구와 대화는 예수살렘의 산헤드린 의원이요 바리새파인 니고데모와 비교가 됩니다, 니고데모는 용기있게 예수를 찾아 왔지만 문명전환기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시종일관 어찌하연 그런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질문을 하다가 그 상상력의 한계로 책망을 받고 맙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은 니고데모와 달리 즉각 예수에게 자기동족 사마리아 사람의의 고통과 억압을 풀어주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그 생수를 달라고 과감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의 문명전환 =디지털 온라인시대(메타버스)와 생태 돌봄 문명=
지금 코로나 이후 이 세상의 두경향이 있는데 하나는 디지털시대로 온라인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생태돌봄시대의 도래입니다, 경향신문에는 메타버스에 대해 이렇게 보고 하고 있씁니다. "예전에도 가상 생활은 존재했지만 경계가 분명했다. 현실에서 열심히 일해 아이템을 사는 소비의 공간이던 가상이 이제 새로운 직업을 찾아 일고 돈을 버는 세계가 됐다".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 간 경계의 소멸”이다 코로나 이후의 문명전환기의 의미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농촌사람들이 대거 도시로 이농했듯이 이제 온라인 시대가 열리면서 대면 오프라인 에 있는 사람들이 대거 온라인 가상 세계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집도 짓고 상점도 내고 사업도하고 강의도 하고 학교도 만드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코로나 이전에는 영상예배는 인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건물에 나와서 예배드려야만 하는 주일 성수 교회당만이 강조되었는데 이제 온라인예배를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다는 것이다.지난번 메타 버스에 대해 공부하는 모임에 한 목사님이 코로나 이전에 온라인 예배가 가능하냐 온라인 교회가 가능하냐하는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자신이 확신 컨데 조만간 메타 버스 교회의 시대가 올껏이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특정 건물에 거하는 것일까? 화려한 교회 건축을 하나님이 기뻐할까? 성서를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은 건물 안에 갇혀 있는 존재가 전혀 아니다. 코로나19는 장소적 교회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코로나는 “종교 건물에서 벗어난 종교적 경험의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건물 중심의 신앙이 무너지고 있다”며 건물의 규모가 주던 안정감과 소속감이 아니라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관계 맺기는 ‘온라인’으로도 가능하다. “온라인 예배라는 새로운 접근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도 했다.(바이러스 걸린교회)
코로나 이후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예배
이러한 시대적 의미가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은 요한 복음의 영적예배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예루살렘도 아니고 그림심산도 아니고 신령과 진정으로 영적으로 예배드릴때가 올 것입니다, 요한 스쿨은 기원후 100년이 지난 시대를 반영하고 지난주 말씀 드린 예루살렘 중심주의를 장소 중심주의를 극복하면서 노예 여성 이방인 중심의 가치 중심의 에클레시아 교회를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100년만의 변화이고 이 이후 예수살렘이라는 장소을 넘어서서 전세계로 뻗어나갈수 있었습니다. 오늘 영원한 생수를 얻기 원하는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예루살렘고 아니고 사마리아도 아닌 지금 여기 바로 이곳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 21세기의 코로나도 오늘나 신자들의 신앙에도 큰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예배는 당연히 오직 예배당에 모여서만 드려야 한다는 상식은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예배가 일상화 되는 것으로 변하였고, 맹목적인 신념과 통속적인 관행에 기초한 비합리적이고 비 이성적인 신앙에 대한 신자들의 회의가 확산되어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는 교회 안팎으로부터 사랑과 봉사, 배려와 존중, 연대와 공감의 실천을 강력히 요구받아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는 새로운 신앙의 길을 가지 않을수 없이 되었습니다,
친환경먹거리 조례 오늘 통과! 어찌보면 코로나가 이러한 문명전환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사마리아 여인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라는 장소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때가 온다고 하니 이말을 알아듣고 물동이를 놓고 사마리아 마을에 들어가서 와서 보라 내가 메시아를 보았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과거에는 신자들이 이사, 결혼, 취업, 교회에 대한 실망 등으로 교회를 떠돌았는데, 지금은 코로나로 '떠돌이성'이 강화 됐습니다. 이들이 떠도는 과정에서 굉장히 '성숙'해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코로나19 재난이 평신도를 집단주의 구조로부터 거의 강제적으로 빼내 고독 속으로 밀어 넣었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라 교회 생활이 대부분 중지되고 교회의 전통적 기능과 역할도 상당 부분 중단되면서 평신도 스스로 자립적이고 주체적으로 각자의 신앙과 삶을 영위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바이러스 걸린교회 51쪽) 이 코로나 혼돈과 불안기가 오히려 개 교회 의존을 넘어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다른 공동체와 공조·협력하는 사람도 늘면서 신자들의 떠돌이 현상으로 자립 주체화의 일종의 기회 구조가 생긴 것입니다. 이처럼 경계 너머를 보고 경계를 넘는 일은 굉장한 성찰을 요한다. 이 코로나 재난으로 인한 떠돌이 현상은 바벨론 포로기나 에루살렘 성전 붕괴 후의 상황 처럼 한국교회에 기회다. 놓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예배에는 온라인 부문이라는 우리의 건물과 공간을
넘어서면서부터 여러 형태의 교회가 나올 가능성을 열어 놔야 할
뿐만 아니라 합니다. 온라인 공간 새로운 신령과 진정의 영적 예배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시기 인 것 입니다.
공간과 건물 의존을 넘어서는 지금 여기의 온라인 예수님 !!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지금 너는 네앞에서 메시아를 만나고 있는것이고 지금 네가 마시는 물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일까?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제 사마리아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닌 곳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한다, 즉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장소를 넘어서 예배를 드리는 신령과 진정 으로 예배를 드리는 때가 바로 지금 이때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여기 사마리아 여인의 놀라운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활동이 시작됩니다,
요한 복음 4장 30절 사마리아 여인은 내가 메시아를 만난다. 그리고 물동이를 잊은채 마을로 들어가 사마리아 사람들에 와서 보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우리가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닙니까?
요한복음의 첫 장면에 나다나엘이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것이 나오냐고 할때 빌립과 안드레가 와서 보라고 한것고 같이 사마리아 동네가서 이곳에 메시아를 만났다고 한 와서 보라! 씨즌2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음식을 구하러 마을로 갔던 제자들이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예수는 저자들에게 추수때가 이미 왔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너희가 수고 하지 않은 것을 거두게 했다, 수고는 남들이 했는데 너희는 수고도 하지 않고 추수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예루살렘이다 그리심산이다 하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곳이다 하는 말씀과 니고데모와 제자들이 아니라 사마리아 여인만이 내가 예수를 만났다, 와서 보라! 한 사건을 기억하며 지금이 이미 희어져 메시아의 추수 때가 온것이고 지금이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와서 보아라! 이분이 메시아다 라고 마을로 뛰어들어야 할때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수 있었습니다,
와서 보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무엇인가를 3가지지 차원에서 다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예루살렘에서도 아닌 곳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즉 건물과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장소를 넘어서 예배를 드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때가 바로 지금 이때입니다, 장소와 공간과 건물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독교 신앙은 교회당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 일상생활 자체를 살아 있는 예배로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정재영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그리고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균형 잡힌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교회 사역을 전환하는 것이 한국교회가 코로나 위기를 잘 극복할 뿐만 아니라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두 번째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이 장소와 공간을 넘어선다는 것 이라 하는데 그러면 그것은 정작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예배에서 확보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주일성수는 성도의 의무로 여겨져 왔고, 이를 바탕으로 성도들의 신앙을 평가해 왔습니다. 하지만 예배 행위 말고도 신앙인의 정체성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많다. 선교적 실천,이웃사랑등 다양한 방식으로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데, 이것이 개신교가 따르는 종교개혁의 정신입니다,(바이러스 걸린 교회) 따라서 교회당 중심의 신앙 생활을 넘어 보다 자립적인 일상에서의 생활신앙을 더욱 확고히 해야 합니다.
세 번째 가장 인상적이 장면이 사마리아 여인이 물동이를 놓고 마을에 들어가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 와서 보라! 하는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와서 보라!고 하며 지금 여기의 현장에서 삶을 나누고 전도와 선교를 실천하는 성령을 체험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아멘 !!
다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주님! 오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영적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 하시면서 지금 여기서 드리는 영적 예배를 강조하셨 듯이 온 오프가 올라인으로 융합되는 지금 여기 이시간을 감동적 으로 체험하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를 드리길 원합니다.
주님! 이제 우리는 이제 단순히 성도의 의무로 여겨져 왔던 주일 성수나 장소와 건물 중심의 예배 행위를 넘어 온 오프 올라인 시대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기 를 원하고 새로운 신앙인의 정체성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이제 올라인 시대에 우리 모두는 장소와 건물에 의존하는 코로나 이전의 낡은 신앙을 넘어 보다 자립적이고 주체적 아름다운 올라인 신앙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당 안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뿐 아니라 온라인 시대에 우리의 일상에서 지역과 마을에서 다양한 방식의 온라인 미디어가 되어 지역과 소통하며 다양한 이웃 사랑과 선교적 실천을 올 라인으로 나누려고 하오니 성령으로 부족한 우리를 도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