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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속에 흔들리는 신앙인들에게 보낸 요한의 편지" (계2;1-6) = 새롬교회 8월 8일 주일 말씀 =

그와 함께 춤을...

by 아름다운 마을 2021. 8. 8.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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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속에 흔들리는 신앙인들에게 보낸 요한의 편지" (계2;1-6)

  = 새롬교회 8월 8일 주일 말씀 = 

 

https://youtu.be/vYSiQV_cyxY

 로마의 박해로 밧모섬에 있는 요한은 일곱 교회에 편
지 곧 계시록을 보내어 성도들에게
이 환난의 때를 끝까지견디도록 권면하고 위로한다.

주후 899월 마지막 주, 에베소 시가 도미티아누

스 황제를 숭배하는 종교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에베소의 상류층 기독교인 아민타스는 기독교의

신 외에 황제와 다른 신들을 숭배하라는 압력을 받

는다. 황제 숭배를 강요하고 다신론을 당연하게 생각

하는 로마 제국 치하에서, 노예든, 육체노동자든,

자든, 고관이든 할 것 없이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그

리스도인은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 역사적 배경

을 생각하면, 당시 요한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낸 계시록의 말씀과 환상의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돈과 성공과 타인의 관심을 숭배하는 이 시대에,

세속적 가치관과 타협하지 않으면 소외당하리라는

압력을,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 복음을 전해야

효과가 있다는 오해를,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에서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

야 했을까? 밧모섬에 있는 요한은 일곱 교회에 편

지 곧 계시록을 보내어 세상의 주권자는 로마 황

제가 아니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악한 세상 권세는 곧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선포한

. 그러면서 성도들에게 이 환난의 때를 끝까지

견디도록 권면하고 위로한다.

신앙의 박해 속에 흔들리는 소아시아의 교회에 전한 요한 계시록의 말씀”(2:1-6)

                                                                                                                           새롬 교우여러분! 이번주 주일 말씀은 말씀이 우리와 함께시간으

로 교우여러분들에게 말씀 나눔에 열린 시간입니다, 지금 새롬교회

의 주일 말씀은 사도바울의 3차 세계전도여행의 중심지이었던

에베소서에 대해 두 번의 설교를 하였는데 이번주 그 세 번째 설교

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동시에 받습니다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

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요한은 오늘 에베소 교회에게
첫 사랑을 회복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첫 사랑이란 진리를 잃은 것입니다.

우리가 약대동 성서 학당에서 히브리서 6장을 읽을 때 이러한 기도문이 올라왔습니다,“ 오늘 성서학당은 히브리서6장을 공부 했습니다

"히브리서 6장은 신앙적으로 많이 흔들리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초보적 신앙에서 벗어나서 성숙되고 성장하는 신앙을 보이기를 바라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코로나19로 힘들게 살아가는 공동체와 개인에게 하는 말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자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살지만 개인적 어려움이 오랫동안 진행되다보니 신앙까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는데 이럴때 일수록 어려움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 기도할때고 인문학적인 바탕에서 성서를 읽으며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개인의 신앙을 쌓아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마쳤습니다”(김현자 권사)

히브리서가 당시 로마의 박해속에서 흔들이는 신앙인들에게 보낸 서신인것처럼 오늘 우리의 본문 요한 게시록을 로마의 박해가 일어나자

신앙이 흔들리고 배교하는 사람들에 대해 신앙의 초보를 넘어서라는 권면의 성격이 강한 서신입니다,

 

오늘 에베소 교회에는 첫 사랑을 회복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다시 첫사랑을 회복하는 길이란 무엇입니까?

 

기독교인이면서도 로마 신전의 사제인 니콜라우스는 로마 제국에 협조하고 그들의 인정을 받아야,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도울 수 있다며 아민타스를 회유한다. 기독교인 상인 데메트리우스는 큰 이윤을 남기고 로마에 물건을 팔 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그렇게 하면 속주에 있는 지역민들에게는 물건을 공급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다른 신은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만 믿는다는 이유로, 기독교인 노예는 주인에게 매질을 당하고 기독교인 학생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 이 책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에베소의 다양한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자기의 믿음을 굳건히 지켜 가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1. 자기만 살려고 애쓰고 있는지 돌아보고 회개하게 하시고,

2. 요한이 게시록을 쓴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에베소 교회에는 첫 사랑을 회복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다시 첫사랑을 회복하는 길이란 무엇인가?

1세기 로마 제국은 로마 황제를 주와 신’(Dominus et Deus)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혹독하게 박해했다. 기독교 신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감당할 뿐 아니라 때로는 목숨도 내놓아야 했다.

니골라당이란 누구인가? 교회안에 들어온 거짓 교사입니다

그러나 에베소교회에 침투한 니골라(니콜라우스)당은 로마 제국과 타협하고 세상에서 성공해야만 그리스도인이 살아남고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성도들을 회유합니다.

다시말해 지난주 기도의 말씀에 따라 환난의 때에 기독교 신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감당할 뿐 아니라 때로는 목숨도 내놓아야 했는데 이러한 환난의 때에 알곡과 가라지가 갈라지듯이 이 니골라당은 자기만 살려고 애쓰고 있는 사람들 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환난의 때에 우리가 가장 먼져 점검해 보아야 할일이 자기만 살려고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회개하여야 할줄로 믿습니다,

지난주 새롬교회 대표기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님. 재난의 시대에 이웃과 약자를 생각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현상을 똑바로 보는 눈을 주시고, 현명한 판단력을 주시고, 이웃과 약자를 위해 연대하고 실천하는 제자된 몸을 허락하시옵소서. 자기만 살려고 애쓰고 있는지 돌아보고 회개하 게 하시고

 

왜 하나님이 니골라당을 미워하신다고 하십니까?(2;6)

 

그들은 바리사이처럼 주중에 노동을 하지 않아도 살수 있어 안식일도 잘지키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금식과 기도와 같은 종교생활에 굉장히 열심을 내는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정작 가난한 사람, 강도만난 이웃을 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그러한 이웃에 대한 관심을 멸시하기에 이릅니다. 니골라당과 바리새인들은 로마라는 제국속에서 신음하는 이세상의 궁극적인 문제를 고민하지 않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않았고 좁은 의미의 개인구원에 치중하여 자신의 위선적 종교행위에 치중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교회에서는 오직 안식일과 율법과 신앙과 세상 성공한 이야기만 하고 안식일과 율법을 지키기 못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체 하지 말라는 율법적 성공자들이었습니다.

이 바리새와 니골라당이야 말로 바로 지난주 우리의 대표기도에 나온 자기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 입니다. 이웃과 약자와 연대하고 실천하지 않고 세상의 현상을 똑바로 보는 눈이 없은 거짓신앙인이요 가짜 교사들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이 믿는 신앙은 로마의 세상의 황제신앙과 다른것이 없었고, 이들이 안식일과 율법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긴것은 당시 이러한 성전제사와 율법이 돈이되고 명예가 되었기 때문 인 것 입니다.

오늘 이 재난기에 이러한 개인구원적 소아적 니골라당과 바리새인적인 종교인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 재난기에 이러한 외식하는 개인 신앙은 폐쇄적이고 까다롭고 따뜻함과 은혜가 없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차별과 배제하는데 힘을 발휘하여 온통 공동체에 갈등과 분란을 가져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오늘 계시록에서 요한 사도가 예베소 교회에 전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가장 우선 우리 자신에게 이러한 니골라당과 바리새처럼 자기만 살려고 애쓰고 있는지 돌아보고 회개하게 하고, 나 이러한 자신뿐이 모르는 소아에서 공동체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 대아로나서야 합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이 생태적 위기를 벗어나려면 자신뿐이 모르는 산업물질 문명의 소아에서 벗어나 대아적 생태문명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1914년 영국의 현대 산업문명

 

백낙청선생은 Dh 로런스의 현대문명관이라는 책중 연애하는

여인들과 기술시대라는 장중에서 산업계의 거물인 제럴드를

통해 1914년 영국의 현대 산업문명을 이렇게 그려냅니다,

기계적 무한 반복을 통한 무한대의 생산적 반복 이것이

바로 신적인 운동이있고, 문자그대로 기계에서나온 신이었고

사람들은 이러한 무한대의 생산반복 그것에 따른 생산의지에

감탄하고 급기야는 신적 종교적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힘의 화신이요 거대하고 완벽한 기계이며 하나의

영원하고 무한한 것이었다, 이 생산력은 그들의 제사장 이었습니다,

그들이 진짜 느끼는 종교를 대표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 신과 같은 이 위대하고 초인적인 체제에속함으로써 드높아 짐을 맛보았습니다, 광부들은 기계가 자신들을 파괴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인간이 만들에 낸 가장 좋은 것 가장 경이로운 기계에 속한다는데 만족합니다, 심장은 그들속에 죽어 갔지만 영혼은 만족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원하는 바 이었습니다.

한편 산업계의 거물인 제럴드는 기계의 신이 되는 대가로 맞닥뜨린

자기 존재의 공허감을 치유할 방법을 끝내 찾지 못한 채, 비인간적이고 냉혹한 서구 문명의 상징인 새하얀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가 죽음을 맞는다 제럴드의 죽음은 인간과 문명의 파국을 온몸으로 짊어짐으로써 깊은 메아리를 남깁니다

재난속에 흔들리는 신앙인들에게보낸 요한의 편지(2:1-6)

오늘 이 코로나 재난기에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의 참의미는 무엇입니까? 이러한 니골라당의 활동과 지난주 기도에 나온 우리의 신앙적 일상을 한번 비교해 보면서 계시록 2장의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한번 깊이 생각해 봅시다.

어려운 시대지만 우리 새롬교회는 각자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소규모의 활동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일예배와 구역모임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기도하며 할 일을 찾고, 중보기도, 문예학당, 성서학당을 통해 기도와 배움, 실천을 모색하며, 교회공간 리모델링을 통해 마을에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각 지역선교를 통해,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상의 활동들도 이어가고 있습니다.(지난주일 대표기도)

황제숭배와 산업물질문명을 우상숭배하느라 첫사랑을 버리고 배교하시작할때 요한계시록 등장한것!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신앙의 일상에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황제숭배에 정신을 빼앗기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니콜라당이 등장하여 이러한 배교가 광범위하게 에베소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

초기 교회 안에서 로마 제국과 타협하고 세상에서 성공해야만 그리스도인이 살아남고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니골라(니콜라우스)당이 성도들을 회유모습과 산업혁명당시 산업기계의 무한대의 생산능력에 감탄하고 이 황제 신을 섬기느라 바쁘고 정신없어서 교회를 무시하고 배척하고 배교하기 시작하는 장면과 오늘 에베소에서 황제 숭배의 장면과 교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황제에게로 배교할때에 그것에 동조한 사람들이 바로 니롤라 당이고 이모습은 19세기 산업화 시기에 사람들은 이러한 점점 강력한 무한 반복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페기의 시스템은 이 생산력은 그들의 제사장 이었다, 그들이 진짜 느끼는 종교를 대표하고 있었다, 바로 그 경영주 ceo를 종교 사제로 보기 시작하였고 결국 이러한 스릴에 찬 경험 추구의 실패는 결국 기술문명이외에 다른 가치를 찾지 못하는 현대인의 우울증상으로 불안 피곤 탈진 조울 증으로 삼의 의욕의 상실한채 죽음에 이르는 병이되는 기술시대 인간의 전형적 운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주인마님, 제가 편하게 말해도 될까요?” “그래, 에우플루스, 물론이지.” 나리의 신들은 절대로 노예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에베소에서 보낸 일주일이라는 책에서 노예가 여주인에게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나리의 신들은 절대로 노예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르테미스

는 에베소의 자유 시민들을 좋아하고, 자기네 재물을 여신의 거처에

맡기는 도시들과 귀족들의 재산을 보살펴 주죠. 여신한테는 노예가

많고, 그 노예들은 죽을 때까지 여신의 신전과 넓은 땅에서 일하면

서 보내고요. 아우구스투스나 클라우디우스나 베스파시아누스를

기리는 불과 한 시간짜리 오락을 위해 저와 같은 노예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을까요?”

 

하지만 예수님의 하나님은 완전히 다르세요. 하나님 아들이 노예의 모습을 취하셔서 평생 동안 다른 사람들을 섬기면서 보내시다가, 노예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자유민으로 태어난 사람들뿐 아니라 노예들도 영원히 살 수 있게 해 주셨어요.

 

이 에우플루스라는 노예는 예수님만 믿는다는 이유로, 기독교인 노예는 주인에게 매질을 당하고 기독교인 학생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 이 책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에베소의 다양한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자기의 믿음을 굳건히 지켜 가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

 

황제 숭배 제의 유치를 위한 소아시아 도시 사이의 경쟁 속에서, 8미터 높이의 도미티아누스 황제상 아래에서, 신격화된 황제를 찬양하는 니골라당의 니콜라우스의 연설이 사방에서 들리는 가운데서, 일절 타협 없이 그리스도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계시록의 메시지가 1세기 말 소아시아 거주민들에게 얼마나 엄중한 것이었는지

요한은 이러한 상황속에세 소아시아의 교회게 첫 사랑을 회복하라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 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멘!!


다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는 박해와 재난가운데 우리의 신앙이 이처럼 흔들릴지라도

나콜라당처럼 로마 제국과 타협하고 세상에서 성공해야만 그리스도인이 살아남고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황제를 우상을 숭배하거나 19세기 산업화 시기에 사람들은 이러한 점점 무한 반복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페기의 이 막대한 생산력과 그 경영주 ceo를 종교 사제로 보고 숭배하다가 결국은 자연과 지구촌은 모두 파괴하고 현대인들을 우울 불안 피곤 탈진 조울 등으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는 만든 이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는 신앙에 저항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이러한 재난속에 신앙이 흔들리고 니골라당처럼 심지어 배교하는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지만 우리 새롬교회와 마을에서는 각자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소규모의 활동들이 지속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는 주일예배와 구역모임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중보기도회, 문예학당, 성서학당과 도시농부들을 통해 기도와 배움, 실천을 모색하길 원합니다. 교회공간 리모델링을 통해 마을에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길 원합니다.

주여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많이 부족한 우리를 성령으로 도와 주시옵서서!! 주님! 오늘 밧모섬에 있는 요한 사도가 일곱 교회에 쓴 계시록 편지의 말씀을 사모하면서 우리도 세상의 주권자는 로마 황제가 아니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악한 세상 권세는 곧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선포하며 다시 저희들의 첫 사랑을 회복시켜주시옵고 환난의 때를 끝까지 견디도록 서로 위로 하고 권면하고 위로하

는 신앙인이 되길 간절히 기도드리오며 이 모든 말씀 우리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https://cafe.naver.com/iamsaerom/3742

 

“재난속에 흔들리는 신앙인들에게 보낸 요한의 편지" (계2;1-6)= 새롬교회 8월 8일 주일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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