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렸을 적 까지도 우리의 농촌과 삶의 풍경속에는 예를 들어서 진주에서 부산 가던 사람들이, 진주에서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오면 자야 하잖아요. 배도 고프고. 그럼 동네에서 좀 있어 보이는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립니다.그럼 그 집에서 근사하게 상을 차려주고 재워줍니다. 정말 인심 좋은 집은 노잣돈까지 조금 보태서 보내줍니다.이런 풍습이 사실 제가 어렸을 때도 있었습니다.
로마서에는 12장에는 환대에 대한 아주 중요한 구절이 나와있습니다,
12.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4.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얼마전 작고하신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님은 생명사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환대의 사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명이 등장하면서 초기 인류의 환대문명이 많이 사라져갔습니다.
우리가 초기기독교, 원시기독교의 모습을 보면 거기에서는 환대가 생생하게 살아 있었어요.
그 때는 기독교인들의 가정에 양초와 담요와 마른 빵이 구비되어있지 않은 집이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언제 어느 때 나그네가 지나가다가 여기서 재워주십쇼 먹여주십쇼 하고
나타날지 모른다는겁니다. 나그네가 문을 두드리면 들여보내기 위해서 집집마다 등잔과 초가 필요하고. 나그네가 굶주렸을 테니 빵을 준비해뒀다가 식사 대신에 빨리 제공하고. 그 다음에 이 사람이 잠을 잘 때 담요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이 세 가지 요소는 초기 기독교 가정의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런데 12.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하며 기독교인들의 가정에 양초와 담요와 마른 빵이 구비되어있지 않은 집이
없었다고 하는 기독교인 개인들의 환대의 풍속이 필요가 4세기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없어졌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태철학자 김종철 교수님은 그 이유를
4세기가 로마 국가가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써 여태까지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필요한 환대의 풍속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각 가정이나 지역 공동체에서 자발적으로 감당하던 환대의 윤리(역할)가
유럽에서는 국가가 운영하는 구호나 자선단체에게로 이미 넘어가면서 제도화 관료화 되면서 지금 근대 현대인들에게는 우선 자발성이 상실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산업 물질 문명이 등장하면서 초기 인류의 환대문명이 거의 사라져가기 시작했고
거의 붕괴되어 가기 시작 했습니다. 지난 반세기 신업물질 문명 기간동안 우리 개인들에게 우울 불안 탈진등 수 많은 마음의 고통들이 있어왔는데 그 해소하는 방식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우울하거나 심란하면 일기를 쓰거나 친구를 만나 고민을 털어놓거나
지역과 마을 공동체와 함께 우울과 불안을 서로 달랬습니다.
즉 우리 삶에 갑자기 어려움과 재난이 몰려오면 사람들은 치유를 위해서
우리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 공동체와의 관계를 점검하면서 이러한 관점을 통해 나는 누구인지
그리고 나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지를 온전히 파악하며, 또한 우리가 살아가며 의지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파악하면서 사회성과 다른 이들과의 연대성을 키워나가면서 그 위기를 헤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