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보기에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는 로마법이나 유대법으로는 세울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법과 유대법이 연합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십가가형 직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예수님 이 로마 유대법에 대항하여 무덤을 깨고 일어나셨다는 믿음이 퍼져나가가는 것을 보고 아 이제 우리는 로마나 유대법이 아니라 이 예수의 부활신앙을 믿는 공동체가 함께 모여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부활 공동체가 될 때 하나님의 정의와 평등이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수 있게다는 확심을 가지게 됩니다,
바울은 이러한 소명으로 하나님 나라 정의와 평등을 이루는 은혜와 환대의 몸을
세웠는데 그 이름이 바로 에클레시아 교회이었던 것입니다,
1세기 로마제국이 건설한 거대한 식민(植民)의 시대를 살았던 예수운동의 후계자였던 바울이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을 돌면서 세우고자 했던 것은 ‘자유인이든지 노예든지 하나의 거룩한 영 가운데서 하나가 되는 ‘소명으로부터’(ek-klēsia) 태동한 평등한 공동체 즉, ‘에클레시아’(교회)이었습니다 .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러한 율법을 넘어선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은혜와 환대의 공동체의 이름을
에클레시아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구사회에서 바보(idiot)라는 뜻은 "사사로운 마음만 있고 공적이고 정치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는
시민을 고대 그리스어로 바보(idiot)라고 했다고 합니다, 다시말해 아테네 민주사회에서는
자기 중심적인 것에만 관심이 쏠려있고 공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을 바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테네 사람들이당시 공적인 삶에 참여하지 못하면 인간, 자유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리스의 인간론을 모르면 신약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첫째로 바을의 교회 즉 에클레시아는 지역에서 건물 중심으로 모이던 유대인의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임을 나타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둘째로 바울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여 충성을 맹세하는 헬라 도시시의회 에클레시아와
로마황제와의 후견인 브로커 관계는 거부하면서 1세기에 헬라 도시의 시의회의 공적인 민주
시민의식은 높이 사서 에클레시아라는 이름을 가져다 썻던 것입니다,
세 번째로 사도 바울의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는 헬라 도시시의회인 에클레시아와 유대인의 회당
씨나고그(synagoge)와 다른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의 공동체임을 차별화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가 바울의 에클레시아라는 새로운 개념 사용을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고 합니다.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바울이나 그의 영향 하에 있던 문서들을 제외하고는 이 단어에 신약성서가 이상하리마치 냉담하다는 데서 우리는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바울은 여러 위험을 저항과 위험을 무릅쓰고 바울이 에클레시아를 선택한 이유는 유대교의 회당 씨나고그처럼 건물 중심의 조직을 배제하기 위함이었고 또한 헬라 시의회의 공적인 민주시민 집회를 넘어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요, 신분과 인종과 언어의 경계를 뛰어 넘어 평등함을 추구한 하나님의 시민 공동체를 원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이 에클레시아는 3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1. 건물중심의 유대회당을 넘어 로마황제를 숭배하는 남성중심의 로마시의 에클레시아를 넘어 남과 여, 이방인과 노예를 포괄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환대를 중심으로 한 에클레시아 즉 메시아적 시민 신앙 공동체입니다,
2. 바울은 ‘자유인이든지 노예든지 하나의 거룩한 영 가운데서 하나가 되는 급진적 평등한 메시아적 에클레시아인 교회를 건설하고자 했습니다.
1. 뵈뵈라는 여성에 대한 추천으로 시작, 당시 제국에서 사람취급 못 받던 뵈뵈를 비롯한 여성들 다수가 언급되었습니다, 이는 이미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진 로마의 시의회를 비롯한 시민 사회를 넘어 서고 있었습니다,
2. 16장의 브르스실라 아굴과 이들은 바로 이러한 에클레시아라는 혁명적 급진적 정의 평등 공동체에 충성한 메시아 혁명 세포 동지들이었고, 그들은 바을의 메시아 공동체에 정의에 공감을 하고 그러한 정의와 평등 공동체에 대한 믿음 즉 충성이 있었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3 놀랍게도 바울의 에클레시아 안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참여했을뿐 아니라, 그리스인과 야만인이 함께 참여했고, 또 자유민들의 후손이나 해방노예를이 함께 참여하면서경제적으로 보다 여유를 가진 사람과 노예들과 노예신분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집단 지도체체로 운영되는진정 남녀,빈부,신분 및 민족 차(差)가 전적으로 사라진 정의와 평등의 메시아적 에클레시아(교회)공동체 이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4. 더구나 이러한 정의와 평등의 메시아 에클레시아를 통해 바울이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을 돌면서 세우고자 했던 것은 ‘하나님의 교회인 에클레시아는 세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조건 없이 도와주어야 한다. 부자인 교회들은 가난한 나라의 성도들의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는 은헤와 환대의 공동체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로마서에서 사실상 바울의 최종 목표는 로마 교인들의 후원을 받아 유럽의 다른 지역 즉 서바나 스페인에도 이러한 메시아 에클레시아를 확장시키는 것 이었습니다,
5.결국 바울의 에클레시아라는 시민 신앙 공동체는 로마의 남성중심의 시민사회를 넘어 율법밖의 여성과 이방인 노예들과 함께 예수그리스도안에서는 누구나 정의롭고 평등할뿐만 아니라 이방인과 타자를 받아들이는 범세계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은혜와 환대의 에클레시아 즉 교회공동체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새롬 교회 교우 여러분! 이번 추수감사절 말씀을 준비하면서 약대동의 상황을 살펴보니 코로나 재난 상황 중에도 마을 선교의 영역이 신중년과 어르신 소그룹 중심으로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고
오히려 온라인 사역 부분은 교회와 마을 소공체를 통해 더욱 확장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번 추수감사절 전후로 교우님들이 개인사업의 어려움과 또 형제들과 부모님들이 병환등
어려운 가운데서도 중보기도회 구역회 심방위원회가 협력 연합하여 가을 구역심방일정이 확정되었고 또 젊은 신혼구역의 구역예배가 11월중 처음으로 열리게 되는 큰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