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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환난에서 예루살렘까지!(고후 1;8-11) =부천 새롬 교회 10월 6일 주일 말씀"

그와 함께 춤을...

by 아름다운 마을 2024. 10. 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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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환난에서 예루살렘까지!(고후 1;8-11)

 

 

https://youtu.be/v8lTj45fSk0

 

바울이 아시아에서 당한 살 소망이 끊어진 환난은 무엇인가?그 하나는 갈라디아 공동체의 운명도 거짓 교사들 때문에 불확실하고, 마케도니아 지역의 빌립보 데살로니카도 조만간 대적자의 손에 떨이질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바울의 마을을 휩싸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바울은 고린도에서 들려오는 고린도 교회의 분열의 소식을 들으며 초대 교회의 네트웍이 해체될 지경에 이렀다는 것을 직감 합니다.그러면서 바울은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마지막 순간에 추진한 것이 바로 에베소 환난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모금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뵈뵈를 로마에 보내어 스페인까지의 선교의 지경을 넓히는 일이었습니다.

아볼로라하는 유대인이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브리스길라와아굴라가듣고 데려다가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사도행전 18 24절부터 27절에 보면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아굴라가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라고 아볼로를소개 합니다

당시 로마 사회는 후견인과 고객이라는 관계로 철저하게 엮여 있었는데, 여기서 부유한 후견인들이 상업 시민 종교조직에 재정적 후원을 제공함으로서 지역사회를 움직였습니다. 특히 고린도처럼 여러 언어를 쓰는 곳에서는 스스로 누군가의 후견인이되어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높이려는  야심가들과 노예에서해방된 신흥부자들이 많았는데, 고린도 교회에는 이러한 후견인들과 노예에서 해방된 신흥부자들에게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곳 이었다. 고린도 교회 초기 개척자들이 이러한 야심가들과 후견인들이나 신흥부자들이 교회에 들어와 로마식의 후견적 네트웍으로  식탁문제와 방언으로 공동를 어지럽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현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새로운 사도들이 교회에 도착하여 바울이 강조한 공동체의 연대를 훼손 시키고, 급기야는 이러한 후견인들이 교회를 장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하지만 한 자지만 요한의 세례만 알지 정작 예수의 성령의 세례를 알지 못하여 브리스길라가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알려준 ”(18:24-27) 아굴라가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로마의 후견인 그룹들에게 예수님을 하늘의 지혜를 가진분이라 신비한 소피아의 예언자로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선택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소통하는 신비한 수단을 제공한 분이라고 소개하기 시작합니다.

아볼로의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고린도 교회의 몇몇 후견인들은 곧 바로 영적인 은사를 사회적 직위의 표시로 간주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영적은사를사회적 지위의 표시로 간주하는 새로운 흐름은 개인이 영적인 자로서 높은 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영적 지식과 영혼 불멸을 이룰 수 있다고 여기며 자신들은 이러한 영적 귀족의식을 획득했다고 주장하는 고린도 교회의 분파를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당시 새로운 신분 상승을 원하는 로마인들에게 저녁식사후 새로운 유희로 인기를 끌던 예언자적 황홀경과 방언을 말하는 로마의 광적인 방언 문화가 고린도교회에 침투한 것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인들 가운데 스스로 영적으로 앞서 나간다는 시위의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13 1절에서 이러한 영적 귀족의식으로 교회를 어지럽히는 로마의 후견인 그룹을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라고 하고꾸짖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에클레시아 운동은 이러한 로마의 후견인체제와 제국의 힘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고린도 분열의 핵심 원인 로마의 강력한 지배체제인 후견인 제도의 숭배자들이 교회에 들어와 아볼로와 함께 헬라적 개인 입신과 출세 세계관으로 고린도 교회 은사와 공동체의식 분열 시키는데 성공 하자 이것과 일전을 하는 바울은 그 교란을 잠재우기위해예루살렘 모금을 통한 협동과 공동체의식 고양하고자 한 것입니다.

 

.로마 제국과 제사장으로 대변되는 중앙의 종교브로커들

vs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운동과 바울의 초대교회 에클레시아운동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운동과 바울의 초대교회 에클레시아운동이바로 이 로마 제국과 제사장으로 대변되는 중앙의 종교브로커들과 지역과 마을의 종교 브로커들인 바리새인들에게 네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정화 청소하시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집접소통의 시대를 여시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 팔레스틴을넘어 유렵전역에 초대교회 에클레시아운동으로급격히 퍼져나간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 브로커 체제의 파산은 사도바울의 시대에도 똑 같이 일어납니다,막강한 군사력을 통해 지중해 세계를 정복한 로마제국의 통치방식은 로마제국은 황제를 신격화 하기위해후견인이라는 브로커로 연결된 체제였다,한 세력자가 후견인이 되어 자기 밑에 피후견인을거느리면서 마피아처럼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후견인제도라는 브로커 시스템을 이용해서 식민지를 관리했고 유대 괴뢰정권도 그 시스템 아래 있었던 것 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이 로마적 출세주의자들과 후견인 그룹들은 바울을 향해 1. 바울의 편지는 힘이있어보이지만 2. 직접 보면 그의 용모는 이렇다 할것이없고 말재주도 시원 찬다고 하며 3. 무엇보다 바울은 베드로처럼 예수를 직접 따라다닌 사도가 아니다 4. 또 그는 우리의 후원을 거부하고 있다는 온갖 가짜뉴스로 바울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모욕과 수난을 겪는 과정에서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1:22-23)라고 영적 귀족의식과 종교적 교만함 물든 로마 후견인 그룹들이 꺼리고, 세상지혜에 물든 헬라인들은미련한것이라고우습게 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신앙을 전면에 들고 나오기 시작합니다

 

우선은 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 행보와 로마행을 앞에두고 이 고린도 교회의 분열의 소식이 어떤 의미가 있고 고린도 교회의 분열의 해결책으로서의 에루살렘모금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살펴 봅시다!!

 

바울은 갈라진 교회들을 하나로 묶는 마지막 문제해결을 시도합니다.

바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금프로젝트가 그것입니다.우선은 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 행보와 로마행을 앞에두고이 고린도 교회의 분열의 소식이 어떤 의미가 이 고린도 교회의 분열의 해결책으로서의 에루살렘모금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살펴 봅시다!!

갈라진 교회들을 하나로 묶는 바울의 구제헌금과 예루살렘에서의 시련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금 프로젝트 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 행보는 이 구제금전달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구제금전달이야기는 실종되고 바울이 체포, 로마로 압송되는, 엉뚱한 사건으로 진행됩니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을 만났지만 구제금을 전달했는지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애시당초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했던 예루살렘 교회도 구제금 수령에 대해 애매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직접쓴 서신이 아니라는 디모데서와 에베소서를 잘 살표보면 바울의 마지막과 그 이후이 초대 교회의 모습을 살펴 볼수 있습니다,

바울은 주후57년 밀레도에서 모인 에베소 장로등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예루살렘으로오르면서 사도행전 20:29-31절 에서 에베소의 장로님들에게 다음과 같은 마직막 말을 남깁니다 ”29 내가 떠나가면 사나운 이리떼가 여러분 가운데 들어 와 양떼를 마구 헤칠 것이며 30 여러분 가운데서도 진리를 그르치는 말을 하며 신도들을 이탈시켜 자기를 따르라고할 사람들이 생겨날 것은 분명합니다. 31 그러므로 여러분은 언제나 깨어 있으시오. 그리고 내가 삼 년 동안이나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각 사람에게 쉬지 않고 훈계하던 것을 잊지 마시오라는말씀을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남깁니다.또한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걱정하면서 디모데 전서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면서 에베소 교회를 디모데에게 맡깁니다.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딤전3;15)

이처럼 바울의 마지막 여행인 예루살렘여행과 로마 여행은 미완의 여행입니다, 그러나 이 바울의 비젼은, 후대에 전세계로 복음이 뻗어 나간 것으로 볼수있듯이 당대에 다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바울의 서신과 제자들에의해 오늘 바울의 서신을 읽고있는우리들에의해 계속 진행중입니다.

 

바울의 제자들은 바울의 사후에 왜 에베소서를쓰게 되었는가?

바울 사후 당시 에베소 교회 안팎은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겹겹이 우겨쌈을 당하던 교회를 향해 에베소서는 교회의 기초를 되짚는데 상당 부분을 할애 합니다. 교회의 본질과 그리스도와의 관계, 성도의 올바른 삶에 관하여 다시 들려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시도록(1:18) 간구한 것은 결코 의례적이지 않습니다. 오늘 에베소서와교회 전반에 퍼져있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높이려고 교회에 침투한 로마의 후견인 그룹의 각자도생의 귀족적 웰빙 신앙관과 구원관을 경계하고.오직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공동체적 몸을 이루는 풀뿌리 에클레시아(교회)운동을 새롭게 깨달으며 새롭게 일어서야할새 시대임을 에베소 교인들에게 알린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왜 교회를 부르셨는지, 그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전하고, 교회와 성도들이 이 땅의 어려움을 마주하며 당당하게 걸어갈 유일한 능력이 무엇인지 주목하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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