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 공동체의 운명도 거짓 교사들 때문에 불확실하고, 마케도니아 지역의 빌립보 데살로니카도 조만간 대적자의 손에 떨이질것같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바울은 고린도에서 들려오는 •고린도 교회의 분열의 소식을 들으며 초대 교회의 네트웍이 해체될 지경에 이렀다는 것을 직감 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마지막 순간에 추진한 것이 바로 ①에베소 환난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모금운동이고 ② 다른 하나는 뵈뵈를로마에 보내어 스페인까지의 선교의 지경을 넓히는 일이었습니다.
54-55년 겨울 바울이 에베소 감옥에 갇혀 쇠약해지면서 하나님의 개입을 열렬히 기도하자 마케도니아의 빌립보 데살로니카 교회로 부터 시작하여, 아시아 지역의 갈라디아 교회 까지, 예루살렘 후원 프로젝트에열렬히 참여하는 돌풍이 일어나면서 로마제국의 후견네트웍에 경제적 저항(코이노니아)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1. 바울은 당시 파편화되고 목적의식 없이 살아가는 갈라디아 마케도니아 그리스인 공동체에게 세상 왕들과 후견인 들의 허세에 고난을 번창케하는 이기심 개인적인 두려움 연약함 과 대한 믿음의 도전으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라는 사회정의와 평등을 실천하는 성도들만이하나님 나라 상속자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갈라디아 마케도니아 아가야 지역에서 과거에는 이방인이었던 사람들이 상당한 헌금을 내어 놓음으로서 구제헌금은 성공적으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2. 마케도니아의 데살로니카 교회의 모범
데살로니카후서 3:10 의 “일하지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데살로니카 교회가 이처럼 로마의 브로커 제도나 부자교인(고린도교회)에게 의존하지 않는 스스로 자립 자치의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로마로 부터의 여러 박해와 또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자 데살로니카 교회의 일부 교인들이 예수의 부활을 부인하는 신앙이 퍼져 나가면서 데살로니카 교회는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활을 부인하는 신앙적 위기앞에서도 데살로니카 교회는 부자들과 로마의 브로커와 후견 제도에 의존하지 않는 스스로 자립 자치하는 협동조합을 세우고 상생하는 공동체를 끈질기게 추구하여 마침네 이러한 자립 자치하는 공동체를 세우는데 성공을 합니다.
1세기 당시, 로마의 후견인-피후견인 관계는 그리스도인에게 커다란 위협이었습니다. 사실상 바울은 후견인에 대한 의무 때문에 신전에 가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뇌물을 주고받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가르치면서 로마의 후견인-피후견인 관계를 변형시켜서 오히려 초대교회의 새로운 후견인 제도를 창조하게 됩니다.
초대교회 로마의 후견인 제도를 거꾸로 뒤집었습니다. 스데바나, 뵈뵈, 루디아등 교회의 후견인들은 분명 지도자들이었지만, 이들의 지도력은 섬김을 통해 발휘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도자가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은 로마의 후견인-피후견인 제도를 경멸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로마의 후원에 의존말고 자립해 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인끼리 서로 후견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후견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었습니다.그래야 종속을 조장하거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스데바나, 뵈뵈, 루디아등 초대 교회의 후견과 섬김이란로마의 후견제도와는 다르게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거저 주는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 데살로니카 교회의 구제헌금의 모범에서처럼 초대교회는 교회에 침투한 로마의 후견인 체제와 제국의 힘에 대한 저항을 시작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의 핵심 원인이 로마의 강력한 지배체제인 후견인 제도의 숭배자들이 고린도 교회에 들어와 아볼로와 함께 헬라적개인 입신과 성공과 출세의 세계관으로 고린도 교회의 공동체 의식 분열 시키는 것에 성공한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교회에 침투한 로마후견인 세력에 대항하는 새로운 신앙 운동을 일으킵니다.
바울은 교회의 교란과 분열을 잠재우기위해 예루살렘 모금을 통한 협동과 공동체의식 고양하여 갈라디아 마케도니아 그리스인 공동체에게 로마의 문화를 숭배하는 후견인 들의 허세에 대해 도전을 시작합니다.그리고 개인적인 두려움 연약함과 이기심 싸운 철두철미한 성도들만이 하나님 나라 상속자가 될수있다고 강조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갈라진 교회들을 하나로 묶는 마지막 문제 해결을 시도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금프로젝트인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와 마케오니아를 여행하면서 각 공동체의 경제의 일부를 띠어 놓으라고 격려했습니다, 갈라디아에서는 서로 남의 짐을 지어 주십시요,(갈 6;2) 그리고 빌릴보교회의 선교적 후원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들이 그만큼 자율적이었지만 외부의 압력에 취약한 것을 깨닫고 이제 전대미문의 협력과 자원 공유를 통하여 모든 사람의 예속상태를 극복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마케도니아 아가야의모든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모금 형태로 동참하면서 교회의 통일성을 보여주고, 각 지방교회 대표로 선택된 성도들 대표가 예루살렘에 전달함으로서 각 교회의 지역적 지평을 확대할 뿐아니라 모두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세상 끝나때의로운 이방인들이 시온을 향해 나간다는 예언자 이사야의 환상을 실현하기를 원했던 것 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것을 보면서 무엇을 깨달을수있을까요? 그것은 유대에서 ‘선지자 아가보’가 예언 한것처럼 바울이 예수님처럼 예루살렘에서 고난과 박해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 모금운동은 예루살렘 교회의 보수파의 구제 헌금 거부에 의해 좌절된것같아 보입니다.
그러면 뵈뵈를 로마에 보내어 스페인까지의 선교의 지경을 넓히는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뵈뵈를통해 유럽의 서쪽으로 까지 복음을 전파하려던 바울의 마지막 시도도 바울의 체포 구금 그리고 로마의 압송으로 좌절되고 맙니다, 그러면 바울의 마지막 계획은 무엇으로 남습니다.그 기록이 바로 로마서 마지막장 로마서 16절에 남아 있습니다.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나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바울은 구금이 되었지만 바울의 사역은 로마서 16장의 바울의 선교팀으로 아직 남아있었고 그들이 다양한 인종의 다문화 로마 교회를 세웠습니다.
1. 브르스길라 아굴라 중심의 유대인 가정교회
2. 형제를 중심으로 한 헬라인 가정 교회
3. 최정예 멤버로 훈련된 에베소 선교팀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중 최정예 멤버로 훈련된 에베소 선교팀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선교할 때 함께 한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와 깊은 관계를 맺은 자로서
① 안드로니고와유니아같은 부부 선교사로 주로 바울이 나와 함께 갇혔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사울의 선교에 무척이나 협력을 하고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탁훨한능력의 소유자로 보이고,
② 아굴라부부의 사업장에서 같이 일하다가 개종한 노예신분의 에베네도는역시 에베소에서 로마로 이주한 사람으로 바울이 내가 사랑하는 자라고 할만큼 큰 주님의 사역에 충성한 사람 이었습니다.
이처럼 에베소의 선교팀이었던 ③브르스길라 부부와 안드로니고와유니아부부 에베네도는 로마의 가정교회를 세우는 데 큰 공헌을 하면서 로마의 다 인종 신자를 구성하는데 든든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마무리 기도
인도자: 주님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선교 여행을 통해서
그는 로마의 감옥에 구금되었지만 그의 선교는 로마서의 일꾼들로 남아 로마교회를 이루었다는 놀라운 복음의 능력을 함께 경험하였습니다.
회중 : 로마교회의 이야기는 우리 한 개인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고
늘 실패할수뿐이 없는 이웃 환대의 사역을 성령의 힘과 공동체의 힘으로는 가능함을 깨닫습니다.
인도: 그 공동체의 힘이 바로 에베소 지역에서 온 로마교회의 선교팀이었던 브르스길라 아굴라부부와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부부 에베네도였음을 우리는 2000년이 지난 오늘 다시 바라 보게 됩니다.
다같이; 이제 추수와 감사의 계절에 우리 새롬교회도 약대동마을에 활짝 열린 돌봄과 문화의 마당이 되어 사랑과 환대가 넘치는 은혜의 공동체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