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는 것의 실체를 강조했다면 야고보서는 아들 이삭을 제물을 바치는 혹은 라합이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 정탐대의 문을 열고 길을 안내하는 믿음의 행동과 실천을 강조 합니다.
•오늘 기독인들이 많은 비난을 받는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말은 많은데 그 믿음이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신앙양태로 기독교 인들이 가는 곳 마다 갈등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바울의 바라보는것을 실체로 만드는 믿음의 상상력은 •반드시 야고보서의 행함과 실천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2, “지금은 우리의 믿음을 행하고 실천할 때”(약 2;14-18)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2;14)
•예수님은 “지금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관심했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들은 ‘지금 이곳’에서의 사랑과 연민의 삶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을, ‘사후 저곳’에서의 구원으로 대체했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교회가 ‘구원 클럽’으로 전락하게되는 지점입니다. 제도화된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저곳’을 강조하면서 이 땅에서의 삶을 박탈하고, 인간이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구체적인 삶에 대한 책임성을 ‘신의 축복(물질, 건강, 성공의 축복)’과 ‘내세의 구원’으로 대체해 왔습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무수한 기독교인은 종교적 기계로 전락합니다. 스스로 사유하기를 포기한 이들은, 너무나 개인의 주체적 사유를 마비시키고, 사후 구원에 집착하게 하고, 이기적인 축복을 가르치는 종교는 사람들에게 ‘마약’과 같은 의존적 신앙으로 기능할 뿐이다. (강남순 교수) ”영혼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2;16)
3. 야고보서의 행동및 실천 신학의 기원
•예수의 시대에 메시아를 고대하며 하나님 나라 운동에 동참한 자들은 원래 예수의 가난-경건의 열정을 물려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는 그 제자들과 함께 자발적 가난의 삶을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러한 자발적 가난의 전을 계승한 유대인 그리스도교도들은 신약성서에서 일단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로 범주화되어 나타납니다. 주후 AD 70년 이후 예수 재림과 종말의 열기가 점차 둔화되면서 물질적 부의 추구에대한 인식도 비교적 너그러워져간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의 식민정책에 따라 도시화가 진전되고 교회 공동체 내에도 부자와 빈자의 경제적 격차가 생기면서 공동소유와 각자의 필요에 따른 균등한 공동분배라는 초대교회의 이상은 적잖이 퇴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별히 AD 70년 이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교회도 이방땅으로 흩어져 바울중심의 이방인 유럽중심의디아스포라 교회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할때에 예루살렘에 남은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를 중심으로 다시 자발적 가난과 신앙의 실천을 강조하기 시작합니다,
예수의 자발적 가난의 후예라고 자부한 유대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빈부의격차로 인한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 이상의 문제, 곧 그들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신학적 문제로 생각한 것 입니다.
그들은 시종일관 가난을 경건의 개념과 같은 것으로 신학화함으로써 예수의 생활 스타일을 고수했던 것 입니다.이처럼 전통화된 가난의신학은 훗날 유대인그리스도교도의 이름조차 가난한 자들을 통칭하는예수의 역사적 고향의 정체성을 표상하는 ‘나조리안’(Nazoreans)으로 불리게 하였던 것 입니다.야고보서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가난의 문제는 오늘 이 시대의 가장 큰 경제양극화를 넘어서 경제복지를 위한 대안적 신앙과 신학사상을 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사회 양극화와 평화에 대한 신약성서적 통찰 (한일장신대 차정식교수)
먼저,그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를 언급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공동소유와 공동 분배로 본인의 소유를 함께 통용했다. 이는 초기 예루살렘교회를 역동적인 공동체로 세우는 저력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의 재림이 지연되면서 재화가 고갈됐고, 이는 공동체해산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의 유대인 교회가 이방인 교회와 만나 서로의 결핍을 채우고 상부상조하는 호혜적 코이노니아의 관계 창출은 양극화 해법의 중요한 암시를 던졌다고 했다.
차 교수는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라는 야고보서 1장의 말씀도 강조했다. 오늘날 교회에서 강조하는 신앙적 경건의 관심 사항이 주일 성수, 십일조, 기도와 금식, 헌신과 봉사에만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신앙의 모양이 가난한 사람에 대한 차별 철폐, 세속적 가치에 대한 비판적 성찰 등과도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차 교수는 야고보서의 신앙을 받아들이면 한 공동체에 있는 양극화 문제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했다.
5,“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라는 예전적 축원은 아무리 강렬한 믿음이 보태진 축원일지라도 거기에 구체적인 행함이 빠져버리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야고보서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은 야고보서 전체에
서 거듭 강조되는데“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라는 예전적 축원은 예나 지금이 통상적으로
하는 것이지만(약 2:17, 26)에서, 특히 공동체 내의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방식과 관련해서
행하는 예전적 축원을 비판할 때 빛을 발한다.
한 공동체 내에서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자에게
(약 2:17, 26) 아무리 강렬한 믿음이 보태진 축원일지라
도 거기에 구체적인 행함이 빠져버리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 축원이 진정성을 띠려면 그 헐벗고 굶주린 자의 필요
에 부응하는 구체적인 유익함이 즉석에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약 2:16). 경건의 개념이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포함하듯, 그리스도인의 믿음 또한 한
공동체 내에서 발생하는 빈부의 격차와 이로 인한 양극
화의 현실에 긴밀히 대처하여 그 문제를 실천적으로 해
소하는 데까지 미쳐야 생동하는 믿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6,“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3-16)
10월부터 with 코로나로 바꾸기위해 나라에서 준비중입니다. 이에 우리 새롬교회도 온오프라인 주일에배를 준비할필요가 있습니다. 미디어를 잘 활용하여 새로운 예배의 형태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필요성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미디어를 제대로 접할 수 없는 시각지대가 존재하니, 그런분들을 찾아서 소소한 돌봄을 실천하는 에클레시아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약대동 마을 돌봄 문화센터가 점점 이런일들을 해나갈것으로 기대합니다. 긴 시간동안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많은 새롬식구들이 약대동 마을에 뿌려놓은 새롬의 씨앗이 열매로 잘 맺어지기를 기도하는 구역예배였습니다.
•(2구역 예배후 엄미선 구역장 정리글 ,,,)
•약대동 돌봄 문화 공간 리모델링이 막바지에 달아 새롬 교우님들과 마을 건강 리더분들과 청소년들이 아름 다운 연대로 합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눈물로 씨를 뿌리는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시편 126편 5절]
•1. 새롬 교우님들과 마을 건강 리더분들과 청소년들이 아름 다운 연대로 합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2. 건강리더 생태리더들이 어떠한 준비와 기대와 기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돌봄문화센타 입주을 앞에두고 선이정 집사님)
9월 성서학당 히브리서 8장으로 모였습니다. 엄전도사님이 대면예배를 앞두고 히브리서 공부를 통해 깨달은 말씀을 나누어 주시겠습니다.
1.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두세 사람
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이고, 이들의 신앙
고백과 종교 행위가 예배라는 생각을 코로
나19 대재난을 겪으면서 깨닫는다.
2. 새롬교회는 현장과 온라인 등 때와 장소
를 구분하지 않고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3. 지역선교 또한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
며 마을과 교회가 한마당에서 어울리는 때
가 마침내 가까이 왔다.
•4. 세상의 한쪽은 불지옥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이미 자본이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지 오래다.
5. 바로 그 자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
이 꿇린체 끌려가면서도 자본의 노예라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죽은)생명들
이 수두룩하다. 당연히 부끄러운 줄은 전혀
모른다.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바라는 것을 실체를 꿈꾸는 아름다운 신앙과 더불어 야고보서를 통해 이러한 꿈과 믿음을 행동하고 실천하는 신앙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말로만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는 입술신앙을
넘어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구체적 실천과 양극화 철폐와 같은 구체적인 행함이 빠져버리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라는 말씀을 통해 야고보 공동체가 합심기도를 통헤 치유와 건강복지공동체를 세운것 처럼 오늘 약대동 마을의 중보기도와 마을심방이 건강 리더들의 치유사역으로 이어지며 꿈꾸는
마을목회와 돌봄마을의 구상이 바로 야고보서의 배후에 작동된 공동체의 건강복지 실천의 원리임을 깨달을수 있었습니다.
주님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2;14)하는 말씀처럼 이제 대면 비대면 예배를 일주일 남겨둔 오늘 지금은 우리가 합심하여 믿음을 행하고 실천할 때임을 믿습니다.이제 새롬교회의 새로운 예배는 현장과 온라인 등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는 살아있는 예배가 되게 하시고 지역선교 또한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며 마을과
교회가 한마당으로 어울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행함의 모범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신앙으로 열매맺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