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당시 고린도에서 로마까지 육로로 2100km, 배를 타도 1000km로 3개월은 소요되는데 뵈뵈라는 여집사가 이 로마서를 고린도에서 로마교회까지 전달을 합니다.이때 뵈뵈가 이 서신을 로마로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로마 선교는 로마서가 없었을 것 입니다. 그래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뵈뵈를 합당한 예절로 맞이하고 환대해 달라고 권면합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한마디로 환대의 공동체요 환대의 집 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환대의 공동체 환대의 집이 되기까지는 신앙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이 환대에로의 초대에 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초대를 거부했던 대표적 인물이 구약의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치는 요나입니다 !!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치는 요나 ?
요나가 어떻게 했습니까, 배 밑바닥을 내려가 숨어 버렸습니
다. 재난을 당할 때 많은 사람은 자신속으로 기어들어가 숨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3절 말씀에 보면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했다"는 말씀이 나옵
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을 좀 피해서 멀리 멀리 도망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깊은 잠, 이것은 영적인 무감각성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 니느웨로 가기가 싫어서 정반대 방향
인 다시스로 향했습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을 때
바다에 풍랑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뱃사람들이 두려움에 사
로잡혀 각자 자기들이 믿는 신들에게 부르짖었지만 여전했습
니다.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 안에 실은 짐들을 바다에 내던
졌지만 풍랑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뱃길에 익숙했고 능통했던 뱃사람들은
그 원인을 통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원인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치려는 요나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재난에 닥칠때 가장 쉬운 방법은 요나처럼 우리 마음의 동굴로 도망치는것 입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그럴 용기가 없는것이 바로 이 동굴에 갇힌 우리들 입니다.
우리는 경제의 동굴, 배신의 동굴
불안의 동굴 낙담의 동굴에 갖혀 있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배신, 부부싸움, 직장상사와의 갈등등
여러 인간관계의 동굴들이 우리 삶에 우울증,
공황장애,불안장애를 일으킵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이별, 자살, 이혼, 배신,
이것이 우리를 매일 처럼 동굴로 향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동굴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그리고 손을 뻗어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사실 그럴 용기도 없는것이 바로 우리들 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 동굴에서 빠져나갈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환대인데 사실 우리가 환대 한‘다고 하지만 사실
환대는 불가능해 보이고 실패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환대는 하나님의 성령의 힘과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 하기 때문 입니다.
우리의 환대와 헌신은 현실에서 대개 배신과 배반으로 되돌아오기 일쑤입니다
우리가 환대를 실천하다보면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속담처럼, 많은 경우 “왜 더 주지 않느냐?”고 뻔뻔하게 따지거나 불평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줄 만하니까 준 것”이라며 주는 이의 은혜를 깎아내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심지어 “나는 그에게 받은 것이 없다”고 거짓말하거나, 아예 “내게는 그런 도움이 필요 없다”며 선물 자체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에게 치유를 받고 흩어진 열 명의 나병 환자 중에서 예수에게 돌아와
감사를 표하고 구원의 길로 나아간 이는 단 한 명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 부터 치유받은 나병환자 열명중 단 한명만이 감사를
표하러 왔듯이 환대와 선물의 실패 가능성에 대한 인정이야말로
또 다른 진리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선물을 잘 받을 자유뿐 아니라, 잘 받지 않을 자유가 동시에 주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또 우리는 예수께로 왔다가 모든것을 버리라는 말씀을 듣고 안타깝께
도 근심하며 돌아간 부자 청년을 그대로 나둡니다(마 19:16-30)
환대의 은혜에 참여해야 구원이 완성되듯 환대를 잘 받을 자유뿐
아니라 거부할 자유가 있다는 것 입니다.
이처럼 환대는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실패할 확률도 높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함께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와 선물로서는
가능하다는 이 바울의 믿음은 우리의 환대의 실패와 불가능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환대가 가능하다는 새로운 믿음을 열어 줍니다.
이제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재난기에 헐리우드가 외면당하고 서구 백인들이 당황한다고 합니다?
헐리우드 서사가 너무가 뻔하고 식상한 사이에 한류가 새로운 이야기로 뜨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언론, K드라마의 힘은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없는 것이 특징이하고 이야기 합니다.대개 대중영화들 특히 미국 대중영화들은 재난을 당하면 수퍼맨과 같은 영웅이 나오고 가족이 구원되는 해피엔딩과 판타지를 지향하고 그것을 넘어 서지 못하는데
한국영화의 이야기(서사)는 이점에서 다르다는 것 입니다.
한국에서는 영화로 봉합한다고 현실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수퍼맨과 가족구원과 같은 그런 값싼 봉합이 잘 안 통한다고 합니다.. 한국영화에서는 나와 가족이 아닌 우리와 사회와 공동체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고 실제로 그러한 인물이 나오고 이것이 전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있다는 것 입니다
우리도 코로나 기간중에 큰 상실을 경험했습니다.
어린이집 간판내려지고 십자가를 내리던날 차마 보지를 못하겠어서
며칠후 보았습니다, 교회 청소를 하다가 달토를 비우고 달토의 집기를 다 교회당으로 옮기고 마지막 작별을 고하러 일부러 텅빈 달토에 가서 사진 한 장을 찍고 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재난을 이기려면 우리안의 동굴
(개인서사)에서 이제 나와야 합니다.
개인의 동굴에서 나와 일단 이웃과 타자로 나가고 하나님이라는
큰 마당으로 나가면서 우리는 이 길에서 약육강식의 오징어 게임에서 나와
선물과 은혜로 가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이처럼 타자와 마당으로 함께 나가는 길을
바울서신에서는 에클레시아로 가는 길이라 불렀고,
로마서에서는 환대로 나가는 길로 불렀던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다 쓰고 마지막 16장 1-2절에
뵈뵈를 첫 번째로 언급하고 이어서 4절에 브르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 4.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라고 소개 합니다.
이렇게 바울과 뵈뵈와 브르스길라 아굴라는 한 영웅으로는 불가능하고
한 개인으로 실패할수 뿐이 없는 불가능한 타자와 불가능한 환대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공동체로 가능케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서가 이야기 하는 환대 공동체로서 교회인 것 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은 2년만에 교회 본당에서 말씀을 전하며 “마을로 활짝열린 환대의 집!”이라는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코로나 기간동안 베드로 전서에 집없은 자들의 집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지난주 말씀을 준비하면서 미국의 대 공황시기의 카톨릭 여성 도로시데이라는 분의 환대의 집을 세운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이 여성은 대 공항기에 가난한 이들의 당장에 필요에 응답하기위해 환대의 집을 세웁니다.
이‘환대의 집’은 따뜻한 안식처 노릇을 할 수 있으며, 독서실과 직업훈련을 제공할 수 있고 기도와 토론과 공부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환대의 집에는 항상 따뜻한 커피와 수프와 빵이 준비되어 있어 누구든지 들어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 소문이 퍼져, 1936년엔 수백 명의 사람이 도로시의 집 앞에 줄을 섰다.
더구나 이집에서는 아무도 설교를 하지 않고 다만 벽에 걸린 십자가 상만이 유일하게 이들이 그리스도인임을 알려주었다.
점차 다른 지역에도 이런 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여 10년 만에 30채 이상으로 불어났다고 합니다.
이제 코로나이후 우리 교회 공간이 마을의 돌봄의. 공간이요, 문화의 공간이 되고 무엇보다도 마을의 환대의 마당과 집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이제 2년만에 교회에서 다시 예배를 드리며 마을에 활짝 열린 환대의 마당과 집이 되는 새롬교회를 기도합니다. 마을의 마당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바로 환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로마서16장의 초대교회의 환대의 주인공처럼
개인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고 늘 실패할수 뿐이 없는 환대를
성령의 힘과 공동체의 힘으로 가능케한 바로 로마교회의 뵈뵈집사와 부르스길라 아굴라 부부처럼 또는 도로시데이와 같은환대의 주인공들처럼처럼 이 재난의 동굴에서 나와 이웃과 타자에게로 나아가 이제36년의 새롬교회를 환대의 집과 환대의 공동체로 만들어 나가길 기도합니다.
우리 새롬 교회가 마을에 활짝열린 마을의 환대의 집, 돌봄의 집 문화의 집이되어 약대동 이웃과 마을의 마당으로 함께 열어가는 하나님의 환대가 넘치는 은혜의 공동체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