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는 제국의 약탈 문화에 대한 비판서입니다, 로마의 제국적 사고의 중심에는 신들의 축복과 정의의 여신에 대한 숭배가 그 뿌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세계를 불경건한 불의의 세계라고 표현합니다. 바울은 로마의 도시들의 기념비 전투와 도로 신전들에서 로마의 영광이 명백한 것 같지만 그러한 모습은 허망하고 어리석다고 일축하며 인간이 가질수있는 진짜 영광을 비천하고 무기력한 모조품 우상으로 바꾸었을 뿐이라고 일축합니다. 특별히 황제의 가족들은 잔인하고 추악하며 가족을 살해하고 굴욕적인 성 약탈을 일삼던 자들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로마의 약탈로 인해 강제추방당한 경제적 이민 소공동체에 관심을 가졌습니다.로마에 대해 전공한 분은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쫓겨난적이 없다”, 현재의 우리시대도 실로 전쟁과 제국주의로 말미암아
거처를 잃은 난민의 시대입니다. 로마 제국이 1세기에 가정을 세우지 못하게 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세계 자본 주의도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대에도 많은 사람이 가정과 집이 없이 떠돌고 유랑의 문화에 살고 있어, 사회경제적 노숙자들과 난민이 늘고 있고, 곧 집에서 쫓겨날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세게 2차 대전 이래로 전쟁으로 난민들이 시리아와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쏟아 들어오며. 해안가에서 죽어 있는 아이들과 난민캠프들과 지중해에 전복된 보트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일들이 넘쳐나는가? 우상숭배자들은 창조세계를 하나님이 주신 엄청난 선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폭력성과 지배적인 경제 행태를 신뢰합니다, 우상숭배는 늘 창조주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보지 못하여서 자기 착취화 억압의 방식으로 그 은혜의 풍성함의 열매를 얻고자 합니다. 우상숭배는 언제나 피조물의 입을 막아 창조주를 찬양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 우상숭배는 폭력적인 성욕과 속임과 불신에 근거한 탐욕의 경제를 초래하는 폭력적인 소비를 하게 합니다, 땅을 선물로 보지 못할 때 이렇게 됩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로마서에서 창조세계와 그것을 돌보는 것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게 됩니다.
제국의식사 심포지움에 대항하는 바울교회의 아카페식사
로마 엘리트들이 즐기던 심포지움은 식사와 토론이후 주최자의 명예와부를 드러내려고 기도한 음주와 성적 수발이 이어지었는데 아카페식사는 로마 귀족 남성중심이 아니라 남과 여 그리고 노예와 주인이 모두 함께하는 식사이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아카페 교제의 핵심은 로마의 심포지움과 다르게 사랑 충성 연민 존중과 함께 심포지움에서 강제로 수반되었던 성적 수발에서 자유로와 졌다는것입니다. 다시말해 성서의 “방탕하거나 술취하지말라,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라!”(로마서 13:13)는 말씀은 늘 로마의 심포지움에 성적인 수발이 제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러한 로마의 문화가 신앙 공동체로 침투하여서는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롬1;29-30)대는 공동체의 파벌싸움으로 전염 되고 있는 것에 대한 경고 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문명에 대해 죄 아래 있는 문명이고 심판을 면치 못할 문명이라고 경고했고, 의인이 한명도 없고 입에는 독설이 가득하고. 걷는 발거름마다 피자국을 만드는 전쟁광이라고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로마문명에는 구원이 없고, 진정한 구원은 그들에의해 수치를 당하고 모욕을 당했지만 부활한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온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복절 79주년에 우리를 돌아보면 다시 “친일 밀정같은 자들이 “독립기념관장 임명되는”(광복회 회장)으로 아무도 의로은 사람이 없은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는 오늘 광복절 행사에서 국회에서 지금 무엇을 보는가? 로마서에서 모두 죄아래 있고, 의로운 사람이 하나 없다는 바울의 한탄처럼 공동체로 함께 사는 의식이 점점 희박해 지고, 나홀로 제국의 전쟁문명의 껍데기나 흉내내고, 빵과 서커스 와 명에 수치문화 같은 제국의 껍데기 문화에 휩싸여 있기에 집에서 쫓겨난사람 돌보고 환대하기 , 역사 의식 찾기, 돌봄마을 참여하기등과 같은 그리스도 인들의 참다운 문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를 보아도 마친 가지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후 어느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이 교회, 저 교회 떠돌아다니는 이른바 ‘플로팅크리스천’(Floating Christian)이 등장헸다고 올해에는 이 프로팅크리스쳔들에서OTT 크리스쳔으로까지 번져 나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이러한 플로팅,OTT 크리스쳔들의 등장으로 우리의 신앙은 번개탄처럼 강한 점화력과 휘발성으로 삶의 정체성이 위기에 흔둘리고, 타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뿐아니라 스스로의 고유한 이야기(서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바울은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것을 찾도록 하는데는별 관심이 없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삶을 편한하게 해주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의와 샬롬의 좀더 급진적인 경계를 넓히는 비젼으로 , 우리중 몇 사람은 확실히 불편하게 만드는 비젼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다시 책을 읽고 역사를 배우고 공동체를 배우고 함께 공동체로 사는 의인으로 다시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지난주에는 “마을에서 만난 예수, 함께 세우는 사회적 연대경제”라는책의 저자들이 오랜만에 모여서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를 다시 모이게 한 계기는,1분 30초 미만의 숏과 릴과 같은 도파민 중독에 빠져 책은 물론 동영상도 몇분이상을 집중하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청년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면서, 도시마다 녹색평론 독서 모임이 생겨 새로운 생태시대를 출발시킨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코로나 이후에 “돌봄과 마을”이 시대의 뜨거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음을 서로 확인하며.. “마을에서 만난 예수와 약대동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가며, 사회적 연대 경제라는 주제로 강의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마을을 여행하고 마을의 일꾼을 세우며, 통합돌봄시대를 열어갈수는 없을까 하는 상상을 함께 나누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때에 cbs가 모처럼 돌봄마을 취재 나섰고 지금 약대동 대흥동 향린 교회를 취재하고 앞으로 청개구리를 취재하고 그후 우리동네 사랑방 형식으로 종합 좌담회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도 잘 살려 “모두다 죄 아래에 있고, 의인이 없는 이 시대에 새로운 복음의 길을 ” 살려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