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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운동의 방향을 열어준 수로보니게 여인 [막 7:24~30]

그와 함께 춤을...

by 아름다운 마을 2020. 2. 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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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운동의 방향을 열어준 수로보니게 여인 [7:24~30]

   1 오늘 우리의 본문은 유대인 오병이어 급식현장과 이방인 7병이어 급식현장 사이에 수르보니게 여인의 딸의 치유사건 입니다,

 

예수님이 페르키아 지역에서 한 곳에서 잠시 쉼을 쉴때에

이 지역 귀족여인이 딸을 고치기 위해 등장 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주여 저를 도우소서”(26).라고 간청합니다. 이 이방여인은 예수를 통해 아픈 딸을 살릴 수 있는 길을 발견한 것입니다, 자기는 온데간데 없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매달린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엄청 의외의 아주 잔인한 답을 하십니다,

예수 :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 (7:27).

이러한 예수님의 말은 전형적인 유대인들의 관점으로서

이방인을 타자화하고 차별과 배제 냉대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여인은 예수에게 실망했을 법도 한데,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대담하게 대꾸한다.

수로보니게 여인 :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8)

이때 예수님은 대오각성하시고 예수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하십니다, 여인의 투쟁어린 간청으로 끝내는 여인의 간청이 현실로 구현되었다.

결국 이 둘의 대화는 딸이 살아나는 사건으로 집약됩니다.

예수 :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태)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마가 29.)

 

오늘 수루보니게 여인 딸 치유이야기는 페르키아 지역에서 한 곳에서

잠시 쉼을 쉴때에 이 지역 귀족여인이 딸을 고치기 위해 등장하여

이 수르보니게 여인은 예수운동의 방향을 즉 그 방향타를 바꾼 사건입니다,

 

이여인은 어떻게 방향타를 바꾸었습니까?

마가복음에서 수루보니게 여인의 치유 사건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선 이 이방 여인의 이야기는 지금 예수와 함께 항해를 하면서 에수를 따르는 유대인 제자들과는 너무나 대비가 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항해여행중 예수님이 옆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공포에 찌들어 우리가 다 죽게되었다 유령이다 하고 공포심에 떨고 있으며 심지어 제자들은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라고 하기 까지 합니다,[8:16~17].

 

그러나 잠시 쉴 때 나타난 수로보니게 이방여인은 제자들이 생명의 빵으로 오신 예수님이 옆에 계심에도 불신하고 다죽게 되었다고 하고 심지어 떡이 없다고 할 때

예수님께 자신의 딸을 살리기위해 그 생명의 떡의 부스러기라도 달라고 합니다,

개도 그 식탁에 부스러시는 먹지 않느냐고 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돌려

그녀의 딸을 고치고 만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예수님이 누구 이신가를 지금껏 예수님을 따라다닌

내부 그룹인 제자들은 정작 모르고 진정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그 부스러기라도 달라고 하는 것은

내부그룹 밖의 사람 즉 이방여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이 수루보니게 빵 부스러기 사건이후 예수운동은 엄청난 변화에 직면하게 됩니다,

예수의 생명의 빵'은 안의 남성들로부터 철저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여성에게로 돌려진 것을 의미하고 또 다른 하나는 유대인 중심의 사역에서 이방인 중심의 사역으로 사역이 확대되기 시작하면서 8장 이방땅에서 7병이어와 7광주리 사건으로 확대되기 시작 합니다,

 

이 수르보니게 여인이 등장하는 시점은 바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선교 여행이 진전되지 않고 바다위를

뱅뱅돌면서 유대인 제자 남성 제자들이 바다를 건널 때 마다 

우리가 다 죽게 되었다, 유령이다하고 아우성을 칠 바로

그때 이 이방여인 수루노니게 여인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새롬교회의 약대동 지역 선교가 벽에 부딪칠때마다 하나님이 이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분들을 우리 약대동에 보내주셔서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약대동 지역선교의 방향을 열어주신 선교적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수르보니게 여인의 눈으로 우리 약대동의 지역 선교의 순간들을 보면

길이 막히는 순간마다 우리 가운데 이 수르보니게 여인과 같은 누군가를 보내주신 것을

기억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경험은 우리로 풍파 올때 마다 오히려 이번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을 보내주실까 하는 기대감으로 그 공포를 잊게 하여 왔습니다,

우리 새롬 교회의 초기 지역 선교 시절 하나님은 000 집사님을 보내십니다

마을 도서관 세울 때 0전도사님을 , 지역 공부방에 000 집사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중보 기도회때 0권사님과 0집사님을 

찬양대 위해 000 집사님 협동조합 달토를 위해 000 전도사님을 보내셨고,

또 이번 김용희님 고공농성때 000 집사님이 등장하십니다,

 

 로마의 가장 풍요와 안정을 구가했던 황금시대의 그 끝자락인

마르쿠스 아우엘리우스 시대는 엄청난 전염병에 시달린 음산한 시기였습니다.

1. 천연두로 추정되는 이 전염병이 15년이나 계속되는 동안, 이 병으로 사망한 인구를

제국 전체의 4분의 1 혹은 심지어 3 분의 1 까지로도 추산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전영병이 창궐하던 이 위기의 순간 대부분의 크리스도인들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끊임없이 병자를 돌아 보았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교도들은 이와 반대로 행했습니다. 그들은 병들어 앓기 시작한 사람들을 쫓아냈으며 사랑하는 친구들도 멀리했습니다. 그들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을 길에 내다 버렸고, 죽은 사람을 매장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죽음을 피하려 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전염병이 지난후 주류를 이루던 로마의 상류층들은 소수로 추락하였고 부수러기와 같이 한줌뿐이 안되었던 기독교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들이 바로 로마의 주류가 된 것입니다, 전염병이라는 위기가 기독교를 유럽의 주류로 키운 것입니다,

또한 19세기 조선에는 호열자라는 콜레리가 창궐하였습니다,

그때 해월 최시형선생이 동학을 30년간 포교하면서 내수도문이라는

집안 살림과 위생법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콜레라와의 전투였습니다

그때 희한하게도 호열자라는 괴질귀신은 동학도들을 피해간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졌습니다,하여튼 19세기 조선에 상륙한 콜레라는 절대적인 위기가 사실 한편으로 민중종교인 동학혁명의 기초를 구축시켰던 것입니다,

=해월 최시형은 말한다 “묵은 밥을 새 밥에 섞지 말라. 묵은 음식은 다시 끓여 먹어라. 침을 아무데나 뱉지 말라. 만일 길이거든 땅에 묻고 가라. 대변을 본 뒤에 노변이거든 땅에 묻고 가라. 흐린 물을 아무데나 버리지 말라. 집안을 하루 두 번씩 청결히 닦으라.”
이해 6월에 과연 ‘괴질(怪疾’이 크게 유행하여 전염되지 않은 사람이 백에 하나도 없었으나 오직 도가(道家)는 무사하였을 뿐 아니라 해월께서 사시는 마을 40여 호에는 한 사람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 이곳은 경북 상주시 화서면 봉촌리 전성촌이었다. 충청·경기·전라·경상 등 원근 각지에서 소문을 듣고 해월을 찾아 도에 드는 사람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고 동학교단 기록은 전하고 있다.해월의 위생청결에 대한 강조는 동학을 하면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신화를 낳았고, 동학에서 제시한 질병의 치료와 역병의 예방은 많은 사람들이 동학에 입도하는 동기가 되었다. 질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게 된다는 동학에 대한 소문이 신도를 늘리는데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http://www.koreanhistory.org/%EC%97%AD%EB%B3%91%EA%B3%BC-%EC%9E%AC%ED%95%B4-19%EC%84%B8%EA%B8%B0-%EC%BD%9C%EB%A0%88%EB%9D%BC-%EC%B6%A9%EA%B2%A9%EA%B3%BC-%EC%A1%B0%EC%84%A0-%EC%82%AC%ED%9A%8C%EC%9D%98-%EB%B0%98%EC%9D%91/

 

[역병과 재해] 19세기 콜레라 충격과 조선 사회의 반응 | 한국역사연구회

김신회(서울대학교 박사과정) 인간은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각종 질병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느 한 지역이 낯선 질병에 노출되어 부모, 형제가 3~4일 내에 연속적으로 죽어 나가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를 경험한 자나 그러한 소식을 접한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겪을 공포와 충격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윌리엄 맥닐(Willian H. McNeill, 1917~)은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허정 옮김)』에서 질병에 따른 중대한 사

www.koreanhistory.org

 

이 전염병이라는 위기의 순간이 바로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와 동학의 엄청난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 전염병이 도는 이 위기의 시기야 말로 우리의 신앙이 공포에 싸인 불신의 신앙인지 생명을 전하는 생명의 신앙인지가 가름되는 시기입니다.

 

교우여러분 우리는 믿음이 없은 사람들처럼 막연한 공포에 시달리기

보다는 수르보니게 여인처럼 예수님의 식탁에서 흘리는 부스러기로라도

생명을 구할수 있다는 믿음으로 지역과 마을로 나가

이 예수님의 생명의 떡을 먹이는 새롬 교회 교우들이 다 되시길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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