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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뇨?(렘 37:11-21) =약대동의 녹색과 평화의 생태계를 노래하자! =

그와 함께 춤을...

by 아름다운 마을 2019. 12. 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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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뇨?(37:11-21)

오늘 우리는 모세오경과 여호수아서에 이어서 이제 구약의 예언서 예레미야를 읽습니다,

우선 예레미야서를 읽기위해 예언서란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구약 성서는 3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율법서 토라 / 예언서 / 지혜서

구약 성서는 이처럼 3가지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토라의 메시지는 그래 나는 너의 하나님 이다, 그래 너희는 나의백성이다,

그래 나는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일단 구약에서 토라란 공동체의 삶의 중심점과 기억의 핵심으로서 우리의 모든 경험을 한데 묶어주는 중심점입니다, 이처럼 토라는 이스라엘의 공동체 의식을 규정하는 것으로서 연대감과 확실성 합의 통합을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2. 그러면 예언서는 무엇이고 預言者들이란 누구입니까?

토라 즉 율법의 공공성을 외친 사람들입니다,

특히 초기예언자인 엘리야 엘리사는 좀더 이 토라의 공공성을 이야기 했지만

또한 초기 예언은 기복적 샤마니즘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등 8세기 예언자들이

출현하면서 이러한 주술적 요소들은 강력히 배격되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전환의 이유는 왕권과 사법권이 부유한 사람들을 지지 하면서

거대한 지주와 채무 급증 등 서민 농민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사회가 양극화 되기 시작하자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등 8세기

예언자들은 자유농민의 몰락, 사회 지도자들의 타락을 목격하고 사법제도의

붕괴와 부정한 사치를 누리는 계층들을 이를 강력히 고발하기 시작합니다,

 

예언서에서 토라의 공의를 뜻하는 말의 히브리 원어로 찾아보면

מִשְׁפָּט(미슈파트)צְדָקָה(쩨다카)라는 단어입니다,

그중 מִשְׁפָּט(미슈파트)'재판', '다스림'이라는 뜻하고

צְדָקָה(쩨다카)''라는 뜻을 내포하고 오늘 우리

사회의 공수처와 같은 검찰개혁과 사법적 정의를 주장하는 사람들 입니다

 

토라의 공공성은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1:17)

성문에서 하나님의 (미슈파트)(쩨다카)를 세우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의 바로 성문앞 광장에서 예언자들의 외침으로 보다 확고한

예언 신앙의 위상을 확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8세기에 이후 바벨론 포로기에 후기 예언자들이 등장하는데

이 포로기가 바로 예언운동의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바벨론 포로기란 무엇인가?

예루살렘의 초토화, 성전의 파괴, 다윗 왕조의 패망과 바벨론 포로 생활,

이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정치적 위기상황을 넘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심각한 신앙의 위기로 존재 근거 자체가 흔들리는 엄청난 사건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왜 그의 백성이 멸망당하도록 내버려 두셨는가?

하나님은 사랑이 없으셔서 그들을 저버리신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구원할 능력이 없어 유다 왕국이 멸망한 것은

아닌가? 왕국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 생활이 죄에 대한 벌이라 한다면,

죄에 비해 벌이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포로와 귀향이란 문구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에겐 바벨론에로의 사로잡힘의 경험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뿐 아니라

특히 포로 공동체의 젊은이들을 그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9201542754142?did=NA&dtype=&dtypecode=&prnewsid=

 

떠돌이 운명 유대인, 땅을 잃고 방랑할 때 가장 아름다웠다

사막에서 낙타와 함께 쉬고 있는 어느 어린 베두인의 모습. 유대민족의 역사는 이런 방랑의 역사이기도 하다.성경의 유명한 인물 아브라함은 태생이 방랑자다. 가족을 이끌고 집을 떠난 아버지를 따라 방랑했으며, ..

www.hankookilbo.com

그리고 구약성서라는 것은 바벨론 포로기에 두고 그 상황 아래서 당시의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상실해 가존 포로민 젊은이들에게 애굽제국에서 탈출한 이야기 홍해바다를 건너서 광야 40년을 거쳐 여리고성을 무녀뜨리고 토지를 분배한 제국의 시대에서 그들과 맞서 해방공동체를 이룬 이스라엘의 신앙의 정체성을 세운 것이 바로 포로기이고

이 포로기에 형성된 신학이 신명기 사관이고 구약의 모세오경과

포로기의 역사가 바로 이 신명기 사관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포로기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두려웠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데 계속 위험이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고향인 베냐민으로 갔을 때에 성 문지기가 체포하여 관리들에게 넘겼습니다.

관리들은 바벨론 편이라고 말하면서 예레미야를 때리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지하 웅덩이로 된 옥에서 예레미야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이때 유대왕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도 모르게 몰래 그를 불러들였습니다.그리고 예레미야에게 묻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새로운 말씀은 없느냐?

이 상황은 어떠한 상황입니까?

1. 요셉에게 꿈을 물어온 파라오,,,2. 즉 다니엘에게 지혜를 찾는 느부갓네살 왕들

3 밤에 에수를 찾아오는 유대지식인 니고데모

왜 주류들이 밤에 몰래 변두리에 와서 하나님께 받은 새로운 말씀은 없느냐? 하고

지혜를 구합니까?

이제 시드기아 왕들을 중심으로한 주류의 지혜로는 이 난국을 돌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주류는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예언과 비젼을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

왕들의 임무는 앞으로 한없이 지금의 세계가 연속성을 유지 할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여전히 왕 중심의 합의에 집착하지만 또한 새로운 언어와 비젼과 약속의 언어 즉 예언이 필요한 것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예레미아 당시 시드기와 왕도 지금 우리처럼 시드기야 왕은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받은 새로운 말씀이 없느뇨?

예레미야는 대답했습니다. “, 말씀이 있었습니다.

왕께서 바벨론 왕에게 사로잡히실 것입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여전히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점령군 적들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이러한 예언자들의 특성은 이 에언자들고 하여금 왕과

다른 새로운 언어와 약속과 비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예언자의 말씀이 왕과 다른 이유는 에언자들은 왕과 관료들의

율법적 합리성을 단계적으로 저항하고 깨뜨리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이란 바로 주변적이고 변두리 공동체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관심을 갖

고 그것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모든 새로운 것은 중심에서 나오지 않고

늘 변두리 변방에서 창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옛질서를 넘어서는서 새로움을 마음껏 만드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것이 끝난다는 종말론적 하나님의 말씀이 왕에게 주어지지 않고 예언자에게 임합니다, 그리하여 낡은 모든 옛질서는 끝났다는 예언의 말씀은 이스라엘 청중으로부터 이전에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과 가능성을 제공해 주고 예언자들의 이러한 시적 상상력이 결국은 창조성을 가지고 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예언적 임무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알려진 세계가

사라지지고 첫째로,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는 것은

1.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주는 세계를 다시 그려주는 행위이며,

2. 그것을 통해 신앙을 재조직해 주는 행위이다.

우리가 왕과 서기관의 낡은 그림과 대본을 버리고 하나님의 새 그림과 새 대본을 실천하려면 먼져 이 포로기에 내가 새일을 행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계속 희망과 용기를 공급 받아야 합니다, 것은 하나님이 이제 새 말씀을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3. 그리고 바로 이 대림절이란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새로운 상상력과 새로운 약속 새로운 아기의 탄생과

메시아적 탄생의 씨앗들을 씨뿌리는 시기입니다,

지금 대림의 시기에는 산업문명과 물질을 넘어선 새로운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다음세대들에게 옜 진리의 진부함과 냉냉함을 넘어 예언의 환상과 상상력과 저항성을 가르쳐야 낡은 문명이 무너지고 새로운 하나님의 세상이 올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jTSqTEmVMU

 

우리는 2019년 그것을 제국의 낡은 세계로부터의 탈출과 안식

리고 홍해바다와 광야와 여리고 성으로의 행진이라는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로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2020 우리는 그 하나님의 새로운 문명을 약대동의 녹색과 평화의 생태계로 노래 하려 합니다,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약속으로 새하늘 새땅을 노래하는 아기예수를 기다리는

대림과 성탄의  계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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