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 이어서 출애굽기란 바로 애굽이라는 제국에서 탈출하는 약속의 백성의 여정을 그린 책입니다,
이 탈출을 주도한 모세는 이 출애굽의 이유를 파라오에게 사흘길 쯤 광야로나가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허락하소서!(출3:15-18)라고 하고 그들이 시내산 도달했을 때 하나님이 그곳에서 주신 율법이 바로 십계명인데 그 십계명의 핵심이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해방운동의 핵심이 사실 파라오의 강제 노예 노동 체제에 대항하여 안식을 쟁취하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모세가 출애굽한 파라오의 제국 체제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지난주 가인의 도성과 노아의 홍수로 심판받고 유황불로 심판받는
소돔과 고모라가 거대화된 바로 폭력과 살해에 기초한 도시 제국이
보다 더 거대하게 제국화된 약탈과 폭력과 강제노동에 기초한
애굽 제국인 것입니다,
이 애굽의 피라미드 체제의 핵심은 바로 “파라오의 공사 감독들은 짚을 주지도 아니하며 `너희는 어찌하여 어제도 오늘도 흙벽돌을 그전처럼 제 수량을 만들어 내지 못하느냐?' 하고 매를들며 다그쳤”(출5:14)다는 강제노예 노동이고
이 끝임없는 생산성의 확대와 노동의 강요로 끊임없는 피라밋과 같은 거대건물을 세우는 강제노에 노동에 기초한 체국의 체제가 바로 애굽체제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령자 모세의 핵심적 사명은 이 강제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이 생산량과 성과주의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공포와 경쟁에서 해방입니다, 그것은 바로 안식의 초대입니다,
만약 인류에게 안식일의 계명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왕족이나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은 일년 내내 하루도 쉬지 못한채 일터로 나가야 했을 것입니다 안식일 계명은 모든 근동계급사회의 기반을 해체 시키는 게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파라오와 야훼하나님의 결정적 차이가 바로 이것입니다,
끝임없는 생산과 성과를 요구하느냐 안식을 허락하느냐의 차이인 것입니다,
우선은 오늘의 일터의 현장을 이러한 성서적인 눈과 신앙으로 읽어봅시다,
설문조사 결과 우리가 일주일에 5일동안 근무하는 우리의 일터의 현장는
1. 치열한 경쟁 (성과주의)과 2, 돈벌이 이외에는 다른 가치가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는 의미상실 3, 인간관계 즉 갑질과 진상의 정글이 되어버렸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지금 우리의 일터가 바로 바로의 파라오의 강제 노동과 같은 현실입니다, 우리의 일터 쉽게 지치고 무의미 해지고 잔인한 정글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학교 시절부터 끊임없는 성과와 공부를 강요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불안과 경쟁과 공포가 내면화 되어 있고 안식없이 살아왔고 그래서 삶이 행복 하지 않습니다, 일중독 노력 중독 성과 중독에 길들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제국 애굽의 가치와 같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직장은 우리에게 충분한 가치와 정서와 기쁨과 같은 충분한 만족감을 주고 있는가? 최근에는 가나안 성도라고 교회에서 탈출하는 교인들도 많다고 합니다, 200만명이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오늘 학교와 직장과 심지어 교회도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 비밀을 알기위해 우리는 오늘 우리가 살고있는 산업화 문명의 핵심은 무엇인가을 알아야 합니다?
산업화 문명의 핵심은 대량생산 대량 소비 대량페기입니다, 대량생산이란
그 성과를 달성하기위해 어마 어마한 노동을 착취합니다, 세계 최장시간의
노동과 가장 빠른 속도로 성과 달성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산업화 문명은 무한성장이란 구호 아래서 중단없는 생산과 쉼없는 전진을 추구 하는 사회여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땅이나 짐숭조차 쉴수 없게 되었다, 양게장에는 밤새 불을 켜놓아 닭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알을 낳아야 하고 비닐 하우스에는 밤새 전등을 켜놓아 야채들은 쉼없이 성장해야 합니다,이처럼 이 인류 역사상 인간의 노동을 가장 극심하게 수탈한 제도가 바로 산업화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제 이 산업화 문명이 인간을 수탈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연을 수탈하여 이제 지구가 더 이상 견딜수 없는 기후위기와 생명 멸종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며서 대량소비와 대량폐기로 지구촌을 온통 쓰레기통으로 만들어 생명이 결딜수 없은 정도까지 자연과 환경이 수탈되어 지금 멸종기에 들어섰다는 것 입니다,
우리도 목회하면서 번영신학을 숭배하며 성장 성공을 역설하던 사람들이
가정 먼져 너머지고 무너지는 것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성공 성장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살아 남아 있어도 지나치게 경쟁과 성장과 성공을 숭상하다가
가장 먼져 탈진하여 자신뿐 아니라 그들의 가정과 교회마져도 붕괴시키는 정신적 정서적 큰 외상과 휴유증을 가진 사람들이되고만 것을 목격한 적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이러한 대량생산 소비 폐기의 산업문명을 찬양하는 신학이 있는데
이러한 신학을 번영신학이라고 하는데 한국 교회는
이러한 번영신학과 교회성장신학에 중독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한 이러한 번영신학과 성장신학이 숭배하는 신의 특징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자기계발적 긍정의 담론이 실패를 참지 못하는 것처럼이
자본화된 신자유주의의 신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거기에서 탈락한
자는 채찍으로 때리면서 축복을 철회할 것이라고 공포감을 주는
신자유주의에 포획된 신 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공과 성장을 숭배하는 성직주의는 늘 목회자와 교인들이
스스로를 성공과 성장의 잣대로 검열하게 할뿐만 아니라 자신을 욱박지르고 검열하고
들들볶는 불행하고 피곤한 교회들을 양산하게 한다고 합니다, (한병철의 피로사회)
이제 우리는 이러한 낡은 교회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목회자와 교인들이
행복한 교회를 새롭게 상상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 이 인간의 생산성과 노동과 자연착취를
금지시키고 안식하고 쉬게 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탈성장 탈 산업하면서 안식하고 쉬지 않으면
우리만 쉬는것이 아니라 이웃과 자연도 쉬게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멸종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을 지키는 안식일이 얼마나 귀한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된다든 것은 이 맘몬적 물질 세상이
제기하는 물질적 가치관에 대항하여 우리들 가운데 경제적 가치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는 사실들을 몸으로 증언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에 백성으로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고 안식인
하루전에는 평일의 두배의 만나를 주셔서 안식에는 거두려 나가지 않고 먹고 살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출 16:4-36)
우리는 이처럼 우리에게 안식을 주는 은혜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우 여러분 우리가 왜 안식을 계명을 지키고 쉴수가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는 더욱더 안식의 하나님을 잘 믿고 복된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이 복된 이유는 안식일이 우리의 노동의 대가나 노동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쟁취한 것이 아니라 거져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총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안식일의 선물과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물과 은헤를 체험이 충족되지 못하면 우리는 반드시 일중독, 성중독, 석유와 탄소중독,육식중독. 발전과 성장 중독, 적대와 협오 중독에 빠져 반드시 가정적 교회적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게됩니다,
이제 온갖 중독에 쪄든 우리들이 어떻게 안식을 지킬것인가?
신명기 5장14일에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나라 라는 말씀이 있듯이 성서는 안식일이 주인들만 아니라 종들에게 심지어는 땅과 가축에게도 확대되어 한다고 말씀 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이러한 강제 노동에서 탈출 하는 것을 넘으셔서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적극적인 안식일 인식으로 인간의 전 사회적 해방을 주창하신분 분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날 가난한자 눈먼자 포로된자 억놀린자를 해방하러 오셨다고 하시고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말씀하시면서 노동을 넘어 가난함 포로됨 억눌림등의 전인격적으로 생명을 살리고 구원하는 날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안식일 인식을 위해 독일신학자 도로테죌레의 이야기를 경청할 만 합니다,
‘안식일’이란 다른 일상적인 날들에는 하지 않았던 근원적인
물음들과 조우하는 날이다. 일상적으로는 하지 않았던 사유를 하는 날일 때
비로소 그 ‘거룩성’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커다란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 ‘내가 함께 살아가는 타자는 누구인가,’
또는 ‘내가 믿는다고 고백하는 신/예수란 누구인가?’와 같은 근원적 물음과
조우하는 날 일 때, 비로소 ‘주일 성수’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던 사유 방식, 행동 방식 즉
돈과 일의 욕망 즉 돈중독, 일중독,육식중독. 발전과성장 중독, 적대와 협오 중독에서의
연장이 주일과 안식일이 되는것이 아니라,
그 주중의 날들에 마주하지 못했던 물음과 마주하고, 사유를 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낡은 세계관에 탈출하는 저항의 상상력을 키우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향한 출발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는것 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약속의 땅으로의 출애굽을 다짐하면서 출애굽기의 만나와 메추라기나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을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다시말해 출애굽기의 안식의 하나님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늘에서 공급하신 은혜의 사건을 오늘 광야의 상황에 서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하늘의 음식이 제공된다는 의미로 이 시대의 기본소득과 연결할수 있어야 하겠습니다,녹색 전환과 기본소득을 상상하라!!
또한 이제 우리의 일과 노동이 강제가 아니라 쉽과 의미와 가치가 있는 안식일과 연결할 때 우리의 일과 노동이 가지와 의미와 즐거움을 회복할수 있다는 안식일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으로 나만 잘살고 나만 안식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공정하게 나누고 안식을 누릴뿐 아니라 기후붕괴의 위기속에서 자연과도 함께 안식을 누리는 녹색 안식일이 더욱 이땅에 확산되도록 힘쓰는 안식일 준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녹색 안식일을 위해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서 출애굽이 일어나야 합니다, 내가 먹는 먹을거리, 내가 이용하는 교통수단, 내가 쓰는 전기, 내가 하는 일 등 이 모든 것이 환경을 덜 파괴하고 더 공정한 방식으로 녹색 가치관으로 출애굽되어야하고 이러한 녹색 행복으로의 출애굽은 하나님이 광야에서도 믿음의 백성을 먹이셨다는 만난와 메추라기 사건 즉 기본임금으로 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불안과 경쟁과 무의미의 낡은 산업 문명을 넘어 출애굽기의 만나와 메추라기와 안식일을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실천하기 시작할때 낡은 산업제국 문명에서 태양과 바람, 생명과 평화와 공생과협동에 기반을둔 새로운 녹색 하나님나라 문명으로 출애굽할수 있을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