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질병과 박해와 교회 걱정의 삼중고를 겪으면서 옥중에서 쓴 빌립보서의 다른 이름은 ‘기쁨의 편지’이다!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빌1;15-17)이말의뜻은 무었입니까? 이말의뜻을 이해하려면 1) 안디옥밥상사건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왔을때바울이 선배 베드로와 바나바를꾸짖는 사건이 나타납니다.2)그리고 1차 전도여행때 젊은 동행자 마가 때문에 바나바와 헤어지게 됩니다, 이 헤어진 이유는 1차 전도여행 내내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주장하는“예수 그리스도안에는 이방인과 유대인 남자 여자 노예와 주인이 모두 평등하다는(갈3,28) 바울의 주장에 예루살렘을 표하는 야고보와 베드로와 안디옥의대표하는 바나바가 굉장히 불편해 하였다는 것이 바로 마가의 이탈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안디옥으로부터독립한 선교사 바울 1차 세계전도여행때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갔고, (4) 바울은 실라를데리고 더베와 루스드라로 갔다.(15,37~39) 바나바와 바울 선교팀은 키프로스를 떠나 페르가에 당도했고, 거기서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갔다.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나누지 않으며 심지어 남자와 여자, 자유인과 노예의 이분법도 부정했다.(갈3,28) 혈통도,성별도,신분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이것은 당시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던 유대 율법 중심주의적 원리주의자들에게는 하느님과 민족을 배신하는 치명적인 신앙의 왜곡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낡은 유대적 잔재를 용납하지 않았다.사도행전은 1차전도여행내내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루스드라에서 바울을 돌로 쳐서 바울이 피투성이다 되어 성밖으로 끌려져 나오는 장면등 수많은 돌팔매를 부활신앙으로 이겨내면서 그 십자가와 부활의 피값으로 갈라디아 교회를 개척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면서 예수의 몸에 창과 못자국이 생생했던것처럼 바울의 몸에는 십자가의 흔적을 분명히 합니다(갈 6:17).이러한 바울의 고난은 예루살렘과 안디옥으로부터의 모든 지원이 끊기고 유대인으로 부터는 심각한 박해를 받아지만 역으로 이러한 신앙때문에 바울은 베드로와 바르나바와 대등한 이방인을 향한 독립 사역자의 위상을 확보하게 됩니다.
바울의 선교는 이렇게 늘 논쟁적이었고 극한 갈등을 유발했으며 도시를 소란스럽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갈라디아 선교는 이렇게 바울 특유의 선교가 구체화되는 과정이었다 이처럼 1차 세계전도 여행중 아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아달리아등으로 이어지는 갈라디아 행보 내내 이런 일은 반복되었다. 이스라엘계 이민자 사회에는 어디나 바울의 주장을 극렬 비판하는 자들이 있었고, 그들의 기소로 도시 당국자들도 바울을 위험분자로 간주하여 탄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바울의 선교는 이렇게 늘 논쟁적이었고 극한 갈등을 유발했으며 도시를 소란스럽게 했다. 갈라티아선교는 이렇게 바울 특유의 선교가 구체화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선교가 소아시아 에서는 아직 꽃을 피우지는 못했다.그것은 에게해를 건너, 발칸과 그리스로 가는 새로운, 모험적인 행보를 거치면서 발화하시 시작하는데 바울이 젊은 디모데 실라를데리고 유럽땅으로뛰어들면서 빌립보가 그 출발점이 된것입니다.
베드로와 바르나바와대등한 이방인을 향한 독립 사역자의 위상을 확보한 바울의 신앙고백.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1:12〉
이처럼 바울은 전도내내 교회밖의 외적과도 싸워야 했지만 교회안의 대적자들 즉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하는 이러한 사람들과 싸워야 했던 것 입니다.이것은 복음을 전한다는 의미의 선교가 원래의 것을 그대로 보존하여 전한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환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표현인 것이다
바울이 수많은 환난가운데 예루살렘과 안디옥과 대등한 이방사역의 개척한 것과 같은 사례과 지금 한국교회에서는 마을 목회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정교회마을연구소와 총회교회연구소, 한국얌스세 기관이 함께 참여하여, 29명의 공동저자(목회자 12, 평신도 2, 신학자 15)들이 함께 저술하였습니다. 제목은 "마을목회 유형별 사례와 신학적 성찰"입니다. 전국의 교회 사례로, 농촌교회와 도시교회 사례를 소개 한 이 책의 특징은 12교회(농촌교회 6, 도시교회 6)와)룰 선정하여 목회자가 서술하고, 신학자들이 각 교회에 관하여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의미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저술하였습니다. 선정된 교회는 잘알려진크고 유명한 교회가 아닙니다. 농촌과 도시에서 20-30년간 하나님의 보내심을 따라 지역 안에서 인내하며 헌신적으로 섬겨온 무명의 교회와 목사님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지역사회안에서 인정과 신뢰를 받으며, 교회가 있기 때문에 지역이 행복하다는 평가를 받는 교회입니다". (한국일 장신대선교학은퇴교수)
이 책은 영국 Regnum 출판사에 의해 7월경 도시교회편을 먼저 번역하여 출판하며 올해말농촌교회도 번역하여 출판예정에 있습니다. 영어로 번역된 책은 전 세계에 흩어진 선교사님들이 한국교회를 소개할 때 좋은 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세계교회에 소개되는 한국교회가 양 극단적 형태의 교회-초대형교회와 아주 작은 교회-로만 소개되는 것에 불만이 컸습니다.그러나 이제 작지만 복음에 순수한 열정을 가진 헌신적인 목회자와 성도들이 있는 중 소형교회들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장신대 박보경교수)
그렇다면 믿음은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요술 방망이와도같은 것일까? “돈 나와라, 뚝딱!”하면 돈이 나오게 하고 “쌀 나와라, 뚝딱!”하면 쌀이 나오게 하는 그런 요술 방망이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믿음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즉각적으로, 자동적으로, 또는 손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믿음은 그것이 없을 때보다 더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들로써 그리스도인들을 시험한다. 믿음을 갖게 됨으로써 우리의 삶에 어려움이 부닥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믿음은 본질적으로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성장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십자가의 수난을 •동반하는 것이다.(호신대강성열 교수)
바울의 영성은 ‘고통의 영성’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고통 속의 기쁨과 감사의•영성’이다. 바울의 고통은 무엇이었을까? 육체적 질병, 종교적·정치적 박해, 그리고 교회로 인한 걱정이었다. 특히 그를 괴롭혔던 것은 교회의 문제들이었다.바울은 한 편지에서 “이런 일들을 제쳐놓고라도나는 매일같이 여러 교회들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고후 11:28) 라고 고백한다. 이는 그가 세운 교회들이 하나같이 갈등과 분열과 거짓 가르침으로 인해 소란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바울의 적대자들은 바울을 기도하는 사람,고난중에감사하는 사람으로 성장시켰고,최종적으로는 예루살렘과 안디옥을뛰어넘은 이방선교 전체의 선교사로 우뚝세워졌습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질병과 박해와 교회 걱정의 삼중고를 겪으면서 옥중에서 쓴 빌립보서의 다른 이름은 ‘기쁨의 편지’입니다! 바울이 유대 회당과 로마 집정관의 박해도 받았지만 오늘 본문의 불순한 의도로 복음 전파에 열심인 그리스도인들처럼 교회 안에도 거짓 교사들과 같은 바울의 적대자들도 많았습니다. 성서학자 E.P. 샌더스는. 바울이 가장 사랑했던 교회가 바울을 가장 고통스럽게 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만성적 질병에 시달리면서, 종교적, 정치적 박해를 받아 옥에 갇혀 있으면서, 자신이 사랑했던 교회의 분열 소식을 들으면서,“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빌 4:6)라고 말합니다.교회가 신뢰를 받기 어렵고, 더 나아가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시대에 이번 유형별 마을목회에 선정된 교회들은 잘알려진크고 유명한 교회가 아니라 전국에 흩어져 수십년을 꾸준히 성실하게 교회와 지역사회, 세상을 섬겨왔으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온 작은 교회들의 이야기라는 말씀처럼 바울의 기쁨은 아무 어려움과 환난이 없는 늘 평안한 가운데서 기뻐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이라는 믿음으로 어떠한 처지 속에서도 그를 고통 속에 홀로 던져놓지않고 함께 하시고 능력주시는 하나님과 복음의 진보를 굳건히 믿었기 때문입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