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요한복음에는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성서의 인물사가 가능한 복음서입니다,
지난주 요한의 제자들인 나다나엘 빌립 그리고 안드레에 대해연구 했습니다,
오늘 요한 복음의 첫 부분의 흐름을 좌우 하는 큰 인물 두명을 소개 합니다,
3장에는 높은 지위의 산헤드린 시의원이고 바리새인 남성 니고데모가 나오고
4장에는 부도덕하고 방종한 여인으로 오해 받고 있는 여성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2, <니고데모가 위험을 무릎쓰고 밤에 예수님을 찾은 이유>니고데모의 핵심은
이분의 탐구심입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정과 탐구심이 있어야 위험을
무릅쓰고 밤에 예수를 방문한 것입니다,
3. 반면 사마리아 여인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목마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쌔 .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요 4:3-4)
오늘 예수님은 불가피하게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저주받고 불결한 죄인인 이방인 취급을 하면서
이방인의 고을에도 사마리아 인의고을에도 돌어가지 말라 (마10:5)라고 가르치고
사마리아인들도 그에 맞서 예루살렘 사람들을 증오했고
유대인사람들이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사건은
예수의 제자들이 음식을 구하러 간사이 우물가에서 일어납니다,
피곤하고 목이 마른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요4:9)
사마리아 여인은 피로한 모습으로 물을 달라 요청하는 예수에게 순수히 물을 떠 주는 대신
당신은 유대 남자이면서어떻게 사마리아 여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묻습니다,
이 여인의 말은 이렇게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
특히 사마리아 여인들을 차별한 것에 대한 항거의 뜻이 담긴 말입니다,
우리의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오해 중 큰 것은 예수와 만난 이 사마리아 여인의 부도덕하고
방종한 여인으로만 보고 예수가 이 여인의 부도덕한과 방종에서 단순히 구원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와 사마리아 사람들과의 대화를 잘 살펴보면 사마리아 여인은 결코
자신의 개인적인 결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여인이 아닙니다,
이처럼 여성신학자 최영실교수님은 사마리아여인을 이야기할때 부도덕하고 방종한 여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는 사마리아와 유대민족의 분열과 분단을 고민하고 민족에대한 깊은 고민을 가지고
유대남자 예수에게 도전한 여인이라 이야기 하십니다,
1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이에 대해 예수는 네게 물을 달라고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며 네가
그에게 생수를 달라고 했을것이라고 응답합니다,
여기에 대해 여인은 다시 응전합니다, 당신이 우리조상 야곱보다 위대합니까,
이 여인은 당신이 참 위대한 분이어서 야곱보다 위대한 분이어서
그녀뿐 아니라 동족 사마리아 사람의의 고통과 억압을 풀어주면 목마름을
해결해 줄수 있는 자인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의 도전과 반응 앞에서 그 자신이 목마른 사람들에
영원히 목마르지 앟는 생수를 줄 구원자라는 사실을 증언입니다,
야곱의 우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 마를 것 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것이다 ,
이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의 대화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처럼 오직 자신의 개인적인 결혼문제에 관심을 가진 부도덕 하고 방종한 여인이 아니라 나를 넘어 자기 동족 사마리아 사람의의 고통과 억압을 풀어주면 목마름을 해결해 줄수 있는 메시아를 찾는 민족과 메시아를 논하는 수준에서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이 통한 것입니다,
이러한 여인의 요구와 대화는 예수살렘의 산헤드린 의원이요 바리새파인
니고데모와 비교가 됩니다, 니고데모는 용기있게 예수를 찾아 왔지만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시종일관 어찌하연 그런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질문을 하다가 그 상상력의 한계로 책망을 받고 맙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은 니고데모와 달리 즉각 예수에게 자기 동족
사마리아 사람의의 고통과 억압을 풀어주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그 생수를 달라고 과감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사마이의여인의 요청에 대해 아무것도 주지 않고
단지 너는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합니다,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하자
예수님이 너는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남자도 내 네 남편인 아니라고 하는
이 장면을 마치 예수님이 이 여인의 부도덕하고 방종한 여인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 남편이 5명이 있다는 것은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남자가 부인이 마음에
안들면 언제든 버릴수 있는 사회이기에 이 여인이 다섯 남자를 차지한 여인이 아니라
유대사회에서는 다섯남자에게 버림을 받은 것을 의미하는것이고
예수는 이러한 사마리아 여인을 부도덕하거나 방탕한 여인으로 규정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녀의 고단하고 힘든 현실에 공감 할 때에
비로서 이 사마리아 여인은 이 나사렛이라는 변방출신의 유대인에게
비로서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에게
내가 보니 당신은 예언자로 서이다 하고 고백합니다,
여성신학자 성공회대 최영실 교수실 교수는 이 부분이 예수가 그녀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이 사람이야말로 나사렛 출신이지만 진정 메시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정탐꾼을 알아본 라합과 보아스를 알아본 룻처럼)고 이야기 합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그 순간 그녀가 처음부터 관심했던 예루살렘과
그리심산에서의 예배 즉 유대와 사마리아의 분열과 갈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곳 야곱의 우물이 있는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당신들 유대인들은 진정 예배드릴곳은
예루살렘에 있다고 하고 서로 싸우니 무엇이 진실입니까?
하는 사마리아 여인의로서의 목마른 질문을 속시원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제 사마리아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닌 곳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한다, 즉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장소를 넘어서
예배를 드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때가 바로
지금 이때이다,
보라! 네가 이 우물가에서 당신이 그동안 목마르고 궁금하게 여긴
모든 민족의 갈등과 진정한 에배에 대한 모든
목마름의 문제를 풀고 생명수를 마시고 있지 않는가?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지금 너는 네앞에서 메시아를 만나고 있는것이고
지금 네가 마시는 물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 복음 4장 30절 사마리아 여인은 내가 메시아를 만난다.
그리고 물동이를 잊은제 마을로 들어가
사마리아 사람들에 와서 보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우리가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닙니까? 나다나엘이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것이 나오냐고 할때 빌립과 안드레가 와서 보라고 한것고 같이
사마리아 동네가서 이곳에 메시아를 만났다고한 와서 보라 씨즌2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음식을 구하러 마을로 갔던 제자들이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예수는 저자들에게 추수때가 이미 왔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너희가 수고 하지 않은 것을 거두게 했다,
수고는 남들이 했는데 너희는 수고도 하지 않고
추수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4;38
다시말해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를 찾아왔지만 예수가 메시아 인지는 고백하지 못하고
와서 보라는 소리가 없습니다,
제자들도 와서 보라는 소리가 없습니다, 와서 보라고 한 유일한 사람은
니고데모도 아니고 제자들도 아니고
너희들이 비천하다고 멸시하는 사마리아 여인이 유일하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약대동에 기자분과 선교회와 신학대학생들이 다녀갔습니다,
그리고 약대 신나는 가족 도서관 리모델링 재 개관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약대동에 이처럼 사람들이 찾아오고 도서관 재 개관식을 경험하며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예루살렘이다
그리심산이다 하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든 신령과 진졍으로 예배드리는 곳이다 하는 말씀과 니고데모와 제자들이 아니라
사마리아 여인만이 내가 예수를 만났다, 와서 보라한 사건을 기억하며
약대동에 찾아온분들과 만나고
약대도서관 재 개관식을 준비하면서 문득 바로 지금 이순간이 바로
지금이 이미 희어져 메시아의 추수때가 온것이고
지금이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와서 보아라!
이분이 메시아다 라고 마을로 뛰어들어야 할때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수 있었습니다,
https://cafe.naver.com/library7/20637
이처럼 이 사마리아 여인의 와서 보아라 내가가 메시아을 만났다 하는
이 사마리아 여인의 전도 사건으로 말미암아
4장 40-42절에 그동안 유대사람들의 멸시와 차별로 맘미암아
유대 사람들에 대한 깊은 증오감이 쌓여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유대 남자인 예수에게 자기들과 함께 거힐것을 요청하고
예수님은 이 요청을 받아들여 그동에서 이틀 동안이나 함께 거한
민족의 화홰와 통일의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가 누구인지를 올바로 꿰뚫어본 한 여인의 놀라운 인식과 증언으로 말미암아
증오와 살육으로 얼룩진 유대와 사마리의 증오 차별이 무너지고
유대인 남자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함께 거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증오와 분단의 벽이 문어져 저주의 땅 사마리아는 기쁨과 화해의 축복의 땅이 된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건은 전적으로 우리가 부도덕한 여인 경건치 못한 방탕한
여인으로 경멸했던 바로 이 사마리아 여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은 늘 유대 예루살렘이라는 중앙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분단의 이데올로기를 궁극적으로 깨뜨리고 저주 받은 땅
사마리아로부터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끌어 올린
야곱의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흐르고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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