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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정탐과 광야 신앙의 중심 (민13:26-33)

그와 함께 춤을...

by 아름다운 마을 2020. 12. 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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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기예수를 기다리는 대림절 두 번째 초가 밝혀지는 대림절 두 번째 주일 우리 모두는 민수기처럼 광야에 서 있습니다,

지난주에 민수기라는 성서의 주제가 “광야에서!”인 것처럼 민수기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후 가나안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간의 불평 불만을 터드린 이야기에 대한 신앙적 해석의 책인데 오늘 우리가 서있는 자리는 민수기 13장 26절부터 시작되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탐하는 장면입니다,

 

이 정탐이야기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지난번 이야기 나누었던 민수기 11장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불만을 터트리던 장소를 확인하면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1, 우리는 정복할수 없다, 거기에는 거인족이 살고 우리가 보기에도 우리는 메뚜기와 같았다, (가나안을 정탐한 낡은 세대의 보고)

 

2.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하나님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정복할수 있다, (가나안은 정탐한 신세대 여호수와 갈렙의 보고 : 민 13:30) 

 

이 가나한 정탐사건은 출애굽 내내 다시 애굽의 고기가마로 돌아가자고

반 출애굽 환 애굽 불평불만했던 낡은 세대가 누구인가 하는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낸 사건

 * 노예의식이 있는 자들은 일단 자기 평가가 낮고, 자기 평가가 낮은 사람은 타인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평가가 낮고 인색하다.

그들은 결국 가나안 정복을 앞에두고 불평불만하다가 몰살당하고 새로운 자의식으로 무장한 새로운 여호수아와 갈렙세대만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입성을 하게 된다

www.youtube.com/watch?v=9J9a0jmXsog&t=1718s

3. 미리암 아론에 이어 고라의 반역

성궤 운반 족속인 고라는 왜 반란했는가?

 

 

4. 고라는 제사장직을 탐냈고, 모세의 출애굽운동을 모세 개인의 정치적 야심을 위한 해방프로젝트로 폄하하여 모세를 향해  정치투쟁을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함께  동조한 240명과 함께 땅에 묻히게 됩니다

 

5. 결론적으로 광야의 움직이고 이동하시는 야웨 하나님과 광야 내내 불평하고 불만하는 이스라엘의 갈등의 핵심적인 내용은 무엇입니까ᄁᆞ

 

핵심적인 내용은 애굽이라는 제국의 지역신으로 돌아가려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광야에서 움직이며 이동하는 야웨 하나님과의 갈등인 것입니다,

 

첫째로 애굽의 제국의 신은 고정된 성전 제도 중심의 안정적 공간의 신이었다면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움직이는 광야의 야훼신은 기본적으로 움직이며 이동하는 신이었습니다,

 

둘째로 애굽의 제국의 신은 풍요와 다산이라는 자연의 순환과 주술에 의존하는 신이었다면 광야의 야훼 하나님은 시간적 역사를 추구하하는 신으로 정의와 평화와 인권을 추구하는 신이었습니다,

 

셋째로 애굽의 제국의 신은 크고 거대한 공간과 제도와 건물을 숭상했다면

야웨하나님은 그러한 곳에 머무는 분이 아니라 광야을 움직이시며 장막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말씀하시며 가나안이라는 희망으로 우리를 인도 하시는 분 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애굽의 제국의 신은 제도와 성전 건물안으로 페쇄된 관료화된 죽음의 종교가되었고 야훼종교는 성전과 건물을 넘어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움직이는 오늘 말로 변역하면 성전건물과 관료화된 정적 죽음의종교를 넘어서 이웃과 지역과 마을로나가는 생명종교의 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불평 불만과 야훼하나님의 심판 사이의 갈등의 핵심적 신학구조를 요약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광야을 이동하시는 하나님을 광야에서의 끊임없는 불평과 불만으로 다시 애굽의 풍요와 다산과 성전과 제도라는 관료적 죽음의 정적 종교로 묶어두려고 광야 내내 꾾임없는 불평 불만으로 반출애굽 운동과 환 애굽운동을 벌였지만 끝내 제국과 성전을 거부하시고 광야를 횡단 하시며 광야에서 애굽제국의 노예 관료화된 정적종교의 세대를 청산하시고 여호수아와 갈렙이라는 신 세대를 주심으로 가나안 입성을 이루시는 광야의 야훼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는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으로 출애굽에서의 광야의 행군과 예배의 의미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수 있을 것입니다,

 

1. 수평적 차원

 

: 광야에서의 행군과 출애굽으 하나님의 신앙훈련으로 의미하지 않고 단순히 인간적 즐거움 친교 교제로 이해하여 물이 부족하다, 고기가 먹고 싶다등 인간적 충족으로 이야기 하며 불평불만 터트리다가 결국 광야에서 모두 몰살당합니다.

 

2. 신학적 수직적 의미
말씀과 신앙 의미: 구름기둥과 불기둥
= 광야의 행진과 성막 = =광야의 행진과성막 = 말씀과 신앙 의미:

 

 

 

구름기둥과 불기둥

광야에서 출애굽하라는 광야로 나서라는 요단강을 건너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듣고 싶지 않고 따르고 싶지 않은

귀찮고 낯선 새로운 음성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40년 내내 불평 불만을 합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말씀(성막)을 중심에 놓고 광야의 행진을 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성막(말씀) 중심으로 말씀 하시는 말씀을 따르지 않고서는 가나안에 도달할수 없는 것입니다.

 

3.신앙과 예배의 타자성 : 이웃과 대사회적 의미 (전태일 50주년)

한 손엔 성경, 다른 손엔 근로기준법 들었던 전태일 열사

 

당시 평화시장, 동화시장, 통일상가의 월남한 신앙인 업주들은 교회에서는 헌금도 잘하고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일요일에도 일을 시키면서

철야작업을 위해 타이밍이라는 각성제까지 먹인 업주들의

이중적인 신앙행태를 청년 기독인 전태일은 온 몸으로  경험한 것이다.

 


"23살의 젊은 몸을 자기의 주위에서 시달림을 당하고 천대를 받는

이웃을 위하여 자기가 할수 있는 일을 다 하다가

최후에 아무것도 할 길이 없을 때, 자기의 몸을 불살라가면서

호소를 하고 죽어간 그가 죄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사람들은 죄인이라고 딱지를 붙여놓고
교회 문을 잠그고 들어가버린 그들이 죄인입니까?

어느 쪽이 죄인입니까?““

도대체 우리들은 뭐라고 대답을 할 생각을 가지고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것인가?" (전태일 열사 분신직후 강원용 목사 설교 중)

 

오늘 대림절 두번째 주 말씀의 결론 

 

첫째로 우리는 이 코로나기의 광야에서의 행군과

출애굽을 하나님의 신앙훈련임을 깨닫고 물이

부족하다, 고기가 먹고 싶다는 수평적 인간적

불평불만을 자제하고 넘어 서야 합니다.

둘째로 광야에서 우리를 만나와 메추라기로 성막

과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수직적 말씀 즉 우리가 듣고 싶지

않고 따르고 싶지 않은 귀찮고 낯선 새로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신앙이 크고 거대한 공간

과 제도와 건물을 숭상하는 제국의 풍요와 다산

의 낡은 신앙이 아닌 50년전 전태일과 같은

이웃과 타자와 지역과 마을을향해 나가는 광야에

서 움직이시는 야훼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는

대림절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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