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오늘부터 대림절을 지난 성탄의 아침까지 창세기 출애굽기 예언서를 지나 아기 예수의 탄생까지 아기 에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의 말씀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첫이야기는 바로 창세기입니다, 오늘 이제 생태문명으로 문명 전환기에 창세기는 참으로 중요한 책이 되었습니다, 이 창세기는 바로 생태문명의 보고 인데 그동안 우리 인류는 이 창세기를 잘못읽어서 사실 이 창세기가 생태계 파괴의 주범의 역활을 해 왔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1:28)
그동안 서구 기독교인들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다스리라 정복하라는 말씀을 자연수탈과 식민지 정복의 근거로 활용해 왔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바로 창조과학과 같은 성서 문자주의 근본주의입니다, 영육 이원론과 함께 창조과학과 같은 창조론은 창조냐 과학이냐라는 이분법으로 성서를 읽고 문자 근본주의 신앙 영혼 이분법으로 기독교인들이 진보적 과학적 사고를 불가능하게 하고 바로 과학을 대표하는 진화론을 부인하는 근거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생태시대 전환기에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선 성서는 과학책이 아닙니다, 창세기는 인류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밝히기 위해 쓰여진 책이 아닙니다, 성서는 위기에 빠진 혹은 이행기 전환기에 빠진 공동체의 신앙고백의 책입니다,
지난주 수요일 11월 약대동 성서학당 모임은 2021년의 성서학당 방향성에 대해 논의를 하였습니다. 20021년 성서학당의 방향성에 대한 의논 1 지금처럼 성서통독으로 2 문명 전환기에 생태적 성서 읽기로 3 믿음 은혜 감사등 주제별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최종적으로 분기별로는 성서학당때 구역장님들도 초청하여 생태적 성서읽기를 하고 그달 구역애배는 이러한 생태적 성서읽기로 전 교인이 구역예배를 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생태적 성서 읽기란 무엇입니까?
1. 첫째는 인문학적 성서 읽기입니다,
창세기는 고대 근동의 지배자들의 창조신앙에 대항하기 위해 신앙고백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당시 고대근동의 지배적인 창조신화인 ‘에누마 엘리쉬’에서 묘사하고 있는 인간 창조의 목적은 신들의 안식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인간은 신들의 쉼을 위해 일하는 노동인력, 노동하는 존재로서 지어졌고 안식은 신들과 왕과 그의 신하 같은 특수 신분을 위한 날이었다. 절대 다수가 그들의 쉼을 위해 일을 하는 날이 안식일 이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간 창조와 안식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여호와를 쉬게 하기 위한 노동하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안식을 같이 누리는
존재로서 소개됩니다, 그러기에 창세기는 7일동안 노동시간을 나누고 하루는 안식하고 자연에서도 안식과 쉽을 주는 안식과 쉼과 해방의 존재로서 창조된 천지 창조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
2. 두 번째는 영육 이원론 극복적 성서 읽기
우리은 우선 창세기 1장에서 7번 반복되는 구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3-5)
가 뜻하는 바를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생태문제에 관심을 가지려면, 최초 이단이었던 '영지주의(그로시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주후 1~4세기에 번성한 영지주의자들은 플라톤 사상에 심취해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영육이원론을 신봉했습니다. 그들은 영혼만 고결하고 몸은 불결할 뿐 아니라 자연도 열등한 것으로 보아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아 이러한 영육 이원론은 오늘 자연과 생태계를 정복의 대상으로 보아 무한 생산 착취의 도구로 삼아 오늘 지구촌의 생태계의 위기의 주범이 된 신앙적 기초를 제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판 영지주의(그로시즘)적 성서 읽기가 바로 창조과학과 같은 성서 문자주의 근본주의입니다, 영육 이원론과 함께창조과학과 같은 창조론은 창조냐 과학이냐라는 이분법으로 성서를 읽고 문자 근본주의 신앙 영혼 이분법으로 기독교인들이 진보적 과학적 사고를 불가능하게 하고 바로 다윈의 진화설을 부인하고 영혼이라는 좁은 태두리로 우리의 삶과 지성을 절단 위축 축소하고있다는것입니다
1.교우 여러분 최근 10월 14일에 천마산에 있는 사찰 수진사에 불이 났습니다. 방화범은 40대 여성으로 근처 기도원소속으로 불이 나는 순간 할렐루야를 외쳤다. 방화범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2. 지금 패색이 짙어가고 있지만 과거 미국은 어쩌다가 도널드 트럼프같은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택하였을까?
성경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창조를 설명하려는 창조론자들과 같은 문자적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주관적 신념으로 과학을 대체하려 하며 과학과 객관적인 사실은 기각해버립니다,
“미국인들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말이나 사탄과 천국의 존재 등을 선진국
중 어떤 나라보다 진심으로 더 많이 믿는 나라다. 또한 3분의 1이 넘는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가 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믿는다고 합니다,
이들은 나는 믿는다, 고로 나는 옳다: 신교도들이나 총기에 열광하는 주관적인 의견과 감정 앞에 믿음과 맹신과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 되고 있는데
이것이 이른 바 "트럼프 현상"인데 이 트럼프 현상이 근본주의적 종교와 연결되어 있고 이병에 걸리면 자신의 주관적 신념으로 과학을 대체할뿐 아니라
이러한 맹신으로 모든일을 트럼프처럼 우리고 일방적으로 주장할뿐 아니라 트럼프처럼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진리에 절대로 승복하지 않는 괴물들이 된다는 것입니다.창조과학이나 문자적 근본주의의 위험이 바로 이것 입니다
3. 세 번째는 대럄생산 소비폐기 극복한 자연과 생태계와 공존하는
탈 산업적 탈 성장주의적 성서 읽기입니다,
"저 너무 힘들어요!" 하는 택배 노동자의 죽음뿐 아니라 지금 '1%' 새벽배송으로 사람은 폐기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벽배송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를 물어다 주는 멍멍이'를 24시간 운영합니다. '멍멍이'가 주는 데이터는 △몇 시에 어떤 제품을 할인할 것인지, △물류센터 필요인원이 몇 명인지, △배송기사를 어디에 배치해야 하는지, △최적화 배송경로에 대한 결정을 한다고 합니다.
지금 근대 산업 물질 문명은 "악마의 멧돌"처럼 쉬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피곤치도 않고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 페기 함으로서 자연을 수탈하고 공장신 축산으로 동물들을 학대할뿐 아니라 지금 이 산업 물질문명의 속도는 택배와 같은 육체 노동자 뿐 아니라 비 육체 직장인들을 피곤과 탈진과 조울증에 시달리게하는 감정 정서 노동으로 수탈하면서 인공지능을 통해 사람의 일자리를 없애고 오로기 기계와 인공지능을 결합한 로봇을 통한 무한한 이윤추구 욕망에 사로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코로나 재난기간에 분명히 깨달은 것은 이제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미 성장이 불가능한 상황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기후위기와 바이러스와 같은 지구 종말의 위기에서 살아 남으려면 이제야 말로 성장 대신에 서로 환대하고 돌보는 공동체의 자발성과 자치와 연대정신으로 먹고 살고 이를위해 공정무역에서 육식을 위해 지구촌 허파를 파괴하는 행위를 창세기로 고발하며 새로운 생태 문명을 위해 로컬 푸드, 공정무역,기후 행동의 근거가 되는 새로운 생태적 성서 읽기를 시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제국과 국가와 자본과 과학기술 중심이 아닌 갈릴리 가버나움과 같은 지역 마을의 소농 소 공동체 중심적 성서 읽기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처럼 문명전환기의 우리의 신앙도 근본적 문자주의 창조신앙과 이성적 진보신앙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바울의 회중이 바울의 좋은 소식과 로마황제의 뉴스사이에서 흔들렸듯이, 로마의 빵과 서커스 문화와 바울의 은헤와 환대 문화사이에서 흔들렸듯이 아직도 문자근본주의 성서관과 생태 문명적 성서 읽기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 한국안에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생태 사상이 있는데
첫째는 1894년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 해월의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지려면
거기에 우주 일체가 참여해야 한다는 이천식천 사상이 있었고
두 번째는 1989년에 원주에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중심으로 "밥 한 그릇이 곧 우주"라는 한살림 선언이 선포로 이어 집니다,
세 번째는 1991년 김종철 선생님이 녹색평론을 창간하셔서 산업물질 문명에서
생태문명의 전환시기의 마을과 소농과 소공동체적 생태사상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러한 생태사상은 국가나 자본이나 과학으로 세상을 구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농 소공동체와 지역과 마을이 세상을 구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서적으로는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창세기와 시편 예언서와 특히 1세기 로마 제국시대의 예수님의 가버나움 마을 공동체와 바울이 유럽의 도시 지역 곳곳에 세운 남과 여, 유대인과 이방인, 주인과 노예를 아우르는 평등과 환대 공동체인 초대교회 에클레시아가 바로 대표적인 생태 공동체 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창세기의 생태사상은 경천 경인 경물과 같은 우주적 이야기 뿐만아니라 우리 인생의 가족과 부부와 교회 생활에도 적용됩니다,
어떤 65년 이상을 함께 산 부부 할머니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할머니 어떻게 65년간을 해로 하실수 있으셨어요!”
그때 할머님 하시는 말씀 “우린 뭔가 망가지면 고쳐쓰던 시대에 태어 났어요,,버리진 않았지요 부족하면 고치고 수리하고 재생해서 끝까지 함께 살았지”
기도문 :주님 이제 이 문명이행기에 우리로 과학과 이성을 무시하는 문자 근본적인 신앙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몸을 천시하고 영만을 숭배하는 영육 이원론적 신앙과 성서읽기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물질의 대량생산 소비 폐기를 승배하는 맘몬 신앙을 극복하고 제국과 국가와 자본 중심이 아닌 지역 마을의 소 공동체 중심적으로 성서를 읽으며 인간과 자연과 우주가 서로 돌보고 공존하는 생태중심의 신앙을 세우고 키울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