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7장 1.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2.나의 환난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으며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3.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셀라)
오늘 시편 77편의 시인은 위기 상황에 처하여 하나님께 구원을 간절히 요청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간청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응답이 없자 시인은 근심하고 불안해하며. 절망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3.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하는 이 탄식의 경험은 바로 우리가 신과 관계를 맺는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갈급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응답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주님은 늘 사랑의 주님이었으며 늘 인도하시고 응답해 주시던 주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침묵하시는 것입니다. 시인이 당혹스러운 것은 현재 하나님의 무응답이 과거의 하나님의 자비와 너무나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그래서 마음으로부터 염려와 불안이 엄습해 옵니다.
마음에서 회의와 고통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에 이어 네플릭스 1위가 지옥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라고 합니다., 오늘 위드코리아 시대 다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 속에는 지옥이라는 드라마 제목처럼 무수한 파국과 종말의 이미지를 일상적으로 체험합니다,
여기서 잠깐 1.2차세계 대전이라는 재난기로 돌아가 봅시다, 당시 1.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전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인류의 기술이 발전되고 생산력이 발전되니까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유토피아가 올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19세기의 유럽의 기술과 과학과 생산력의 발전은 결국 나치를 탄생시켰고 이처럼 기술이 생산물이 사회적 발전할수록 사람들의 ‘걱정’은 늘어나고 하느님은 세상에서 점점 더 자취를 감추었고, 유럽의 교회는 늙고 병들어 갔으며, 많은 신자가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것이 19세기 유럽의 지성들과 기독인들이 갈급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또 부르짖은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술이 발전하고 생산력이 발전하니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삶이 일직선으로 늘 좋은일 또 발전적으로 전개될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세계역사는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습니니다, 1,2차대전이 일어나고 나치가 세상을 권력을 잡게 됩니다. 일류 역사에 파국이 일어난 것입니다 ,
이때 나치에 쫓기던 유대인 철학자 벤야민은 이 절망과 파국
가운데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시간을 발견하게됩니다.
베야민은 나치에 쫓기면서 다가오는 전쟁을 바라보면서 이 재난과 파국을 어떻게 바라 볼것인가? 깊은 탄식을 합니다,
그리고 죽기 7개월전 이러한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의 구원 즉 메시아는 미래에 강림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파국적이 이 시간에만 발견할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오늘 시편의 시인처럼 이 재난과 파국과 파괴 속에서 탄식하다기 기억을 가다듬어 과거의 우리의 고난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다시 기억하면서 그 기억의 능력으로서 오늘의 우리의 고난을 바라보며 우리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섬광처럼 충만한 시간으로 지금 우리의 삶으로 개입해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메시아의 충만한 시간을 발견할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메시아의 구원을 경험하려면 그 구원을 미래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고난과 재난을 함께 하신 과거의 재난의 그 잿더미 속에 함께 하신 섬광과 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억해 내는 기억의 힘과 능력에 메시아적 구원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11.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여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 12.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13.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큰 신이 누구오니이까 14.주는 기사를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15.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구속하셨나이다(셀라)
이러한 베야민의 1,2차 세계대전과 나치즘의 체험속에서 나온 증언의 눈으로 오늘 시편 77편 10절 이후를 읽으면 거기에는 분명한 반전 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재난에 빠지면 또 재난 가운데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면 탄식하게 됩니다, 시편 150편은 탄식시 감사의 시 찬양의 시로 구성되었은데 그중 제일 많은 것이 바로 탄식시입니다, 그런데 이 탄식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탄식이 우리를 창조적으로 만듭니다.다시 말해 탄식에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탄식은 우리의 기억을 일깨워 고난을 기억하게 하고 공동체적 기억을 불러 일으키고 공동체 예배를 가능케 합니다.
1. 탄식은 우리의 기억을 일깨워 고난을 기억하게 하고 그 고난속에 깃들어진 섬광과 같은 신의 창조작업을 기억하게 하여 우리를 일깨웁니다.
2. 그리고 특별히 탄식은 개인에게 공동체적 기억을 불러 일으킨다. 이 공동체적 기억은 개인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개인을 공동체로 나가게 하며 탄식을 찬양으로 뒤집음으로 공동체적 예배를 가능케 합니다.
오늘 77편 시편의 본문에서 10절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10절 이전에 시인은 나로 내 개인의 일로 일관 합니다.그러나 탄식과정에서 시인은 다시 하나님의 기억하게 하고 특히 주님의 오른 손, 즉 변함없으신 주님을 다시 바라보고 다시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12.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15.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구속하셨나이다
12절 말씀처럼 탄식은 우리의 기억력을 일깨우며 나 개인만을
생각하던 상황에서 우리로 깊이 생각하고 되새김질하며 하나님
을 다시 기억하게 하고 다시 공동체를 기억하게 합니다.
.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과
공동체와 가족의 기억입니다, 이것이 바로 탄식을 통해 회복된 기억의 힘입니다,
문명전환 좌담회 생태강사로 오신 유미호 선생님이 기후문제를 개인단위로 치유하던 시기는 지나갔고 이제 기후문제는 공동체적 단위로 대응해야 하는 시대에 도래했다고 하십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를 개인으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신앙을 갖게되는 순간은 전부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탄식할때 입니다. 교우 여러분 탄식하는 행위이다, 새신자로 전도된 분들에
게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가를 물었을 때 전부 인생의 위기와 고난과 절망이 왔기때문이라고 합니다 고난과 탄식이 없이 순탄하고 평이한 삶의 지속은 우리로 하여금 성장하지 못하게 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못하게 합니다.
신앙이란 탄식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탄식을 통해 우리의 고난을 기억하시고 우리 고난의 역사를 현재로 승화 시켜서 성좌라는 희망의 별자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그런데 이 희망의 성좌 즉 별자리를 만들어 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고난에 대한 기억의 힘과 능력 입니다, 우리가 재난에 떨어지게 되면 우리는 절망하게 됩니다.심지어 하나님의 부재를 느낍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공동체에 대한 모든 기억을 망각하기 때문 입니다. 이렇게되면 우리는 어떤것도 의지하여 일어날수 없는 망각의 좀비들이 되고 마는 것 입니다.
지난주 성서 학당에서 함께 읽은 히브리서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 입니다. "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10:25)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환난이 오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기억 예수님에 대한 기억을 잃고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의 습관처럼 변한다는 것 입니다. 새롬 교회 교우여러분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에 대한 공동체의 기억 가족의 기억이 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환난과 재난기에 예배의 기억 헌신과 봉사의 기억 찬양등 기억을 불러낼 것이라 없을때 우리가 고립과 절망에서 붙잡고 일어설 그무엇이 없어 결국은 고립상태로 머물게 됩니다그러나 불러낼 공동체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그 공동체의 기억을 붙잡고 고립에서 절망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찬양할수 있는 것입니다.우리가 매주 드리는 예배때 시편을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시편이 바로 이 공동체의 기억을 불러내어 우리가 혼자 있지 않고 좌절과 절망가운데 있지 않고 하나님과 교우들과 예수님과 이웃들과 함께 있다하는 공동체의 기억을 불러내어 그것으로부터 부활의 예배를 시작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저희들은 우리의 탄식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그 순간은 하나님이 그 공동체에 출애굽의 구원과 같은 역사가 일어키시는 순간인 것을 믿습니다.
주님! 지금 우리의 일상은 사실 재난 파국 가운데 탄식의 연속 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의 탄식을 듣으신다는 믿음으로 우리의 신앙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탄식에서 찬양 으로 옮겨 감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 새롬 공동체는 파국속에서 탄식함을 통해 우리의 재난과 파국의 상황을 기억하고 해석하여 그 탄식을 공동체적 찬양으로 바꾸는 메시아적 구원의 시간을 경험하길 원합니다.
주님! 우리의 탄식과 찬양과 기도를 통한 기억의 힘만이 바로 우리의 현재의 매 순간과 우리의 현재의 삶을 살아있도록 만든다는 믿음으로 우리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는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오늘도 주님 앞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기를 원합니다.
주님!! 재난과 환난과 절망가운데 우리가 혼자 있지않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교우들과 이웃들과 함께하며 주님과 함께한 공동체의 기억을 불러내며 함께 드리는 이 예배야 말로 구원의 날을 가까이 앞당기는 예배의 시작이고 구원의 시작이 될줄 믿으며 이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