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
성서에서 요시야왕만큼 완벽한 칭송을 받는 인물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전무후무한 개혁을 했기 때문입니다.요시야왕이 개혁을 단행한 이유는, 왕실 엘리트와 종교 지도자들만 부패했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신앙을 타락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면서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여호와는 남유다를 심판하기 위해서 일어나실 것인데 그들에 대한 처벌은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스바냐는 선포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원전 639년부터 기원전 609년까지 유다를 통치한 요시야왕은 기원전 621년에 개혁을 단행합니다(왕하 22~23장, 대하 34~35장). 그는 즉위 18년에(왕하 22:3)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게 하는데 이때에 대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왕하 22:8)."
요시아 개혁의 실마리 기억을 제공해 준 법전은, 앞서 말한 것처럼, 농민 대중의 재산 보호에 중요한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요시아 개혁의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대지주들에 의해 몰수당한 땅을 개혁 사업을 통해 회복하게 되는 상황을 암시합니다.
아마도 요시아 개혁의 주체 세력은 이 개혁운동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미래에는 땅을 돌려받게 될 것이라고 농민 대중에게 선포하였을 것입니다. 과거에 선조들에 관한 역사적 기억이 요시아 당시의 농민 대중에게 ‘미래의 꿈’을 선사한 것 입니다
요시아 왕이 개혁은 산당을 제거하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5.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고을과 예루살렘 사면
산당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열두 궁성과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그리고 가장 먼져한 것이 바로 5절의 산당을 제거한 것입니다.
요시아 왕이 개혁은 산당을 제거하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요시아 개혁의 실제 진행은 ‘예루살렘 성전 정화, 지방의 성소 철폐, 법률서 공표, 의 순으로 전개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개혁의 특징은 히즈키야 개혁과 마찬가지로 귀족들을 견제하고 왕당파의 입지를 강화하며, 친아시리아 노선을 견제하고 종족주의를 천명하려는 것이고, 동시에 대지주의 횡포로부터 소농들의 사회적 권익을 보호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소농들을 위협하고 있는 몰락
을 억제하려 할뿐 아니라 최악의 상태에 떨어져 있는 과부, 고아, 이방인들에 대한 특별한 보호가 강조되고 있는 것 입니다.
요시아와 히스기야가 이 지방의 성소, 곧 산당을 철폐하고자 했던 것은 아하스의 정치, 곧 귀족 중심의 정치를 종식하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한데 이것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아하스 대에 형성된 기득권 세력이 친아시리아파였고, 아시리아의 개입에 의해 반아시리아를 표방한 히스기야가 무력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개혁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추진되지 않았다. 아니 실은 지방 곳곳에서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결론만 얘기하면 요시야 개혁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추진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실은 지방 곳곳에서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습니다. 그것도 정권이 그토록 옹호했던 백성 자신이 방해자가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백성의 죄로 인한 모세의 죽음을 얘기해야 했
던, 그토록 강력한 신의 의지를 담은 역사를 만들어 내야 했던 것은 개혁에 대한 백성의 방해가 그만큼 심각했다는 것을 뜻할 것입니다.
왜 요시아 왕은 산당을 제거 하면서 종교 개혁을 시작하였을 까요?
왜 백성은 자신을 옹호하고 지원하려는 왕을 반대하고 오히려 자신을 착취했던 특권적 지주 세력을 지지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백성은 왕의 메시지를 곧바로 들은 것이 아니라 왕의 적대자들 목소리를 통해서 왕의 소리를 들었던 탓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왕의 소리를 왜곡하여 전달한 매개체가 바로 '산당'이었습니다. 지방 산당의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바로 특권적 지주들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들이
었던 것이다. 즉 대중 정치의 장소인 산당이 수구 세력들에게 장악되어 있던 탓에 백성은 수구적 세력들에 의해 동원되어 정치에 관여했던 것이다
당시 여론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산당’이라고 묘사된 ‘성소’이었습니다.풍요제의를 드리고 온갖 사적 공적 재앙에서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신의 장소가 성소인데, 그곳이 이들 기득권층의 이해를 위해 종사하는 사제들에 의해 장악되어 이들이 대중을 포섭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아하스의 인신제사를 칭송하고 대중의 수탈을 정당화하는 장소가 바로 산당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국보세 반대 여론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6억원 아파트의 재산세는 100만원도 안된다. 보유세 실효세율은 영국·캐나다의 5분의 1 수준이다. OECD 국가 평균치보다 훨씬 낮습니다. 오늘 우리들 가운데 '종부세 폭탄론'을 선동하는 경제신문들의 총궐기의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고 하며 지난 22일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2%가 안되는 집 부자들에게 종합부동산세 고지서가 발급된다고 경제지들이 총궐기에 나섰다고 합니다.
1. 종부세는 1주택자는 공시가격 11억원,싯가로 대충 16억원 이상의 집을 가진 사람만 대상이 됩니다.
2. 싯가 20억짜리 한채를 가지고 있으면 연간 27만원, 25억원 집 한채면 종부세는 50만원 정도다.=> 참고로 3천3백만원짜리 그랜저 차 세금이 65만원입니다.
3. 국민 가운데 약 2% 부산은 1.37% 경남은 0.48%만 종부세 대상자다.=> 경남은 1주택 종부세 대상자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이처럼 국보세를 포기한다는 것은 부동산공화국 혁파와 기본소득이 함께 물건너가는 것이므로 나머지 98%의 국민들은 1%를 대변하는 자들의 협박에 굴하지 말아야 합니다!거짓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국보세 포기를 상상해서는 안됩니다.
한국사회의 개혁대상인 3가지 산당에 가장 으뜸인 것은 바로 검찰입니다
1. 검찰 : 거기에는 검찰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검찰이 검찰권
의 독립 수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만 자신들이 저지른 검찰권 남용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건을 조작해서 무고한 이를 간첩으로 내몰고 멀쩡한 사람에 게 죄를 뒤집어씌워 인생을 망치게 만들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욕망을 위해 약자들을 괴 롭혔던 강자들의 죄를 가려주고 치워주는 범죄 의 세탁부 또는 청소부가 되었던 한국 검찰의 역사를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검찰개혁은 검찰로 하여금 이와 같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워 지고 더 이상 타락한 거래에 휘말리지 않도록 진정한 독립을 도우려는 일입니다. 수사와 기소 에 관한 과도한 독점적 권한을 포기하지
않으려 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도 우리 눈에는 어리석게 만 보입니다. 통제되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검찰 자신을 위해서도 불행한 것입니다. 검찰 일부의 문제일 것입니다만 겉으로는 부패와 거 악을 척결하겠다고 해놓고 뒤에서는 현직과 전 관들이 서로의 이익을 챙겨주는 뒷거래는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타락상입니다. 그동안 공익 을 대변하기 위하여 일생을 헌신한 대다수 검사 들의 명예와 긍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검찰은 공직자비리 수사처 검경 수사권 분리 등의 개혁 조치를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두 번째 산당은 언론입니다, 언론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입만 열면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 과장 해서 기사를 쏟아내고 있으나 지금 우리는 건 너야 할 다리를 힘겹게 건너
고 있을 뿐 방향이 그릇되지 않았습니다. 공연히 불안을 부추기고 정부의 선의를 비트는 행실을 중단하기 바랍니 다. 진실을 격려하고 거짓을 꾸짖는 언론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른바 검언유착 검언일체의 지경에 이른 부끄러운 현실을 직면하기 바랍니다. 진실의 장수가 되어야 할 언론이 거짓의 하 수인 노릇이나 하는 현실을 우리는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1.광고성 기사: 돈을 받고 홍보 또는 광고를 기사처럼 쓴 기사. 독자들을 기망하는 사기와 다를 바 없음.
2. 기사형 광고: 돈 받고 게재하는 광고인데 기사처럼 보이게 위장한 광고. 독자들이 속지 않도록 지면에 광고 표시를 해야함.
3.'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복붙 기사:남이 쓴 기사를 사실 확인이나 검증도 없이 거의 그대로 베낀 기사. 대부분 선정적이고 자극
적인 제목으로 조회수 높이려는 믿거나 말거나 미끼용 기사이고 속으면 바보 됨. 이것이 언론입니다!!
우리 사회의 마지막 산당은 바로 일부 극우 개신교 세력들입니다.
1970년대 영동(강남권) 개발 과정에서 신흥부유층 이 관료, 법조계, 정치계, 학계, 언론계, 그리고 종교계를 아우르는 기득권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고, 군부와의 동맹체제를 구축하게 되면서 산업화 시대의 기득권 세력이 형성됩니다.
이후 민주화를 거치면서 전통적인 기득권 동맹이 와해되었다가 보수정권이 다시 집권하면서 , ‘검찰-대형로펌들과 수구적-정치계와 경제계’가 수구 동맹체로 연계되었는데 이때 장로 대통령을 만든다고 구실로 일부 대형교회 중심의 기독교 연합회를 중심으로 이러한 개신교의 극우주의적 욕구가 함께 부활하면서 이러한 극우적 욕망을
체험하고 확산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장(field) 즉 산당의 역할을 한것이 바로 극우적 한국 개신교 기독인 들이고 이러한 세력들이
코로나 전후로 한국 사회의 계속적인 가짜뉴스전파의 근원지의 역활을 하면서 한국 사회의 극우적 산당의 주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입니다.
대통령 선거 100일을 앞에두고 드리는 새롬 공동체의 기도!
1. 주님! 대통령선거가 100일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오늘 한국
사회는 한국 교회를 심히 걱정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극단주
의 정치세력과 결탁하여 가짜뉴스를 생산·유포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뿐 아니라 극우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를 찬양하며 극우적 신앙을 넘어 극우적 대중적 정치공간이 되어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2. 주님! 이 모든 문제는 한국 기독교의 근본주의 신앙때문이고 이 근본주의 신앙의 기초는 바로 성서 문자주의 신앙이고 이러한 근본적 문자주의 신앙은 성서의 모든 말씀을 개인과 가족의 성공과 부와 행복 성취의 요술 방망이와 마취제로 해석하고 있음을 깨닫고 회개 합니다.
주님! 이처럼 우리의 근본주의적 문자신앙이 우리의 신앙을 이웃과
사회공동체와 단절시키면서 우리 교회공동체 마져도 우리 자신의 부와 행복과 성공을 위해 이웃과 타자를 배제하는 산당과 장사꾼의 집과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만들어 가고 있음을 깨닫고 함께 회개 합니다.
3. 주님 요시아 개혁 당시 백성들과 소농들을 위한 요시아 개혁을 추구하였지만 당시 많은 백성들은 당시 산당에서 기득권자들이 선포하는 가짜뉴스를 믿고 오히려 백성들이 요시아 개혁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산당의 가짜뉴스들의 그들의 기복적인 개인의 부와 성공과 행복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임을 깨닫고 회개 합니다!!
4. 주님! 이제 100일 앞으로 다가오는 선거에서 우리 성도들이 사회개혁 종교개혁에 역행하는 산당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기위해. 우리의 신앙이 산당과 같이 고립된 폐쇄된 개인의 동굴에서 나와 이제 교회공동체와 마을을 섬길뿐 아니라 사회적 정의 평화 평등과 같은 사회적 공동체적 삶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성서를 새롭게 읽고, 공공적 신앙을 실천 할줄 아는 새롬 교회 교인들이 다 될수 있도록 우리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