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유대교는 율법을 잘지키기만하면 모범생이고 훌륭한 사람이 되었는데 이 부자청년이 바로 당대 유대교의 모범생이고 거기다가 부자이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유대사회의 기준으로는 모든 법을 잘 지키고 부자까지된 완벽한 모범생이니 그 부자 청년을 당연해 자신은 구원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에 제가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고 나 같은 사람은 구원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투로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에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말씀 하십니다, 이에 예수는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고 한다. 그런 뒤에나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이에 그 청년은 실망하고 떠납니다.이 부자 청년은 진정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 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공생애기간 내내 서기관과 바리새파가규정해 놓은 규례와 정결례를의도적으로 끊임없이 위반한 사람입니다.• 예수님당시 세세하게 규정해 놓은 ‘규례와 정결례’를위반하면 부정한 사람이 되고, 그와 접촉한 사람도 부정해집니다. 때문에, 규례와 정결례를지키는 일은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규례와 정결례’의 내용을 결정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거룩함과 의의 상징’이 되었고 새로운 종교 권력으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런 행태는 절정에 달해 있었고, 예수님은 공생애기간 내내 서기관과 바리새파가규정해 놓은 규례와 정결례를의도적으로 끊임없이 위반합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이처럼 정결례를비판하셨을까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외출했다가 들어오면 손을 반드시 씻어야 합니다. 피 묻은 음식을 먹거나 만져서는 절대 안됩•니다. 따라서 월경 중의 여인은가족을 피해 있어야 합니•다. 피부병, 혈관 질환, 문둥병, 소경, 앉은뱅이, 신체 장애를•가진 사람은 무조건 부정한 사람이어서 접촉해서는 안되•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다가오면 자신들과 접촉 못하도록 멀리서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쳐야 합니다. 세리, 산파, 장례사, 창녀도 부정한 사람입니다. 이들과 함께 밥을 먹어선 안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보러 이러한 바리새와 서리관보다 더 의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서기관과 바리새파의의가 ‘껍데기 의’였기때문입니다. 자 그러면 이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님과 만난 사람들을 통해 이 율법을 지키는 •것과 어기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부자청년과 바리새는 실패하는가?
그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이 하혈병걸린 여인과 이 향유병들고 나온 여인과 부자청년을 비교하면 부자청년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이 왜 예수를 따르는데 실패하는 가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성서을읽고 신앙을 가지면서 가장 큰 윤리적 변화는 밖에 보는것중심으로 도덕과 윤리의 잣대를 대지 않는 다는 것 입니다.믿음의 조상 야곱은 겉으로 보면 장자권을탈취한 속이는 자요 야비한 자이지만 그는 믿음의 조상중한 사람이 됩니다. 이는 성서는 겉으로 외식하는 위치나 지위보다 생존과 생명을 더 중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적 기준을 가지지 못한 바리새인들은 늘 사람의 다양한 피부색과 외모와 체취와 냄세(기생충)하품 재체기등 생리적 현상들을 지저분하고 더럽다고 여기고 이러한 한것을잘 지키느냐 못지키느냐에 생명을 겁니다.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과 어울린다고 시비를걸고, 안식일날 예수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먹는 다고 시비를 저는 심리를 만들어내고 결국은 안식일을 지키는 39가지 세칙을 만들어 사람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바리새의심리인 것입니다. 여기서 이 하혈병걸린 여인과 이 향유병들고 나온 여인과 부자청년을 비교하면 부자청년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가 왜 예수를 따르는데 실패하는 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4.19 전후 이러한 소시민주의를 비판한 김수영 시인의 “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주 인년한테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 한번 정정당당하게 /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갗라는 생각을 한다.
소시민은 항상 작은 일에 분개한다. 주차를 잘 못했•다고 시비를 하고, 요즘 아이들이 버릇없다고 투덜대고, 직장 상사가, 아랫사람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고 미워한다. 남의 자식이 공부를 더 잘하는 것이 배 •아프고, 돈이 더 많은 것에 불쾌감을 갖는다.작은 일에만 분개하다가 나이가 들고 세상에서 한 걸음 떨어지는 노년기를 맞는다.
부자청년의 소시민 의식이 부자 청년의 제자의 길 방해
영화 기생충을 보면 주인집 사람이 하층계급을 보면서 그들에게
지하철과 반지하 냄세가 난다고 합니다.이처럼 소시민 바리새인들은 늘 사람의 다양한 피부색과 외모 와 체취와 냄세(기생충)로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합니다, 이러한 바리새에대해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서 그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힌다”(막 7장 15~16절)라고 이야기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부자청년의 소시민의식은 부자청년이 예수님께로 나가는 생명의 길을 방해 합니다, 부자들의 소시민성은 그 까탈스러운 취향으로 성서의 복음의 진리를 자잘한 계층의 취향과 도덕으로 전락시킵니다. (예를들면청년기때 어느 선생님이 청소년기의 짜장면에 대해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청소년기때청소년들이 짜장면을먹을때입에 침이 고여 침을 흘리며 먹는 짜장면그것이 청소년의 생명이다. 마찬가지로 진리에 목마른 사람은 마치 청소년이 짜장면을보고 입에 침이 고여 침을 흘리며 짜장면을 먹듯이 그들은 복음의 생명과 진리를 이야기 하는데 자꾸 침이 튀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적 소시민들은 늘 김치 국물이 흐른다. 자짱면이 입술에 묻었다하고 율법적 교양적 잣대를 들이대며, 시비하고, 차별하고 편가르고 혐오해서, 결국 생명의 흐름을 자르고 생명의 역동성을 막고 생명을 죽이는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리새적소시민성이 결국 부자청년이 모든 율법을 다 지켰지만 그의 율법지킴은 결국 생명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죽이는 길이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그 길을 막은 것 입니다.
왜 부자청년은 실패하는가?가? 우리는 여기서 이 하혈병걸린 여인과
부자청년을 비교하면 부자청년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가 왜 예수를 따르는데 실패하는 가를 볼수있습니다. ,
지금 하혈병걸린 이 가난하고 오염된 여인은 유대교의 이른바 ‘성결법전’(Holiness Code)•에 의하면 여성이 생리 중인 것을 “불결한 상태’라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앉았던 자리, 입었던 옷, 그녀의 몸과 닿았던 것이 모두 불결하다고 한다.마치 코로나에 감염되었을 법한 불결한 외양의 사람이 거리를 함부로 돌아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이 율법에 의하면 하혈병걸린 여인이 예수께 •도달하는 동안 많은 사람 과 접촉할 수밖에 없었고 그 수많은 사람들과 예수를 종교적 차원에서 오염시켰고 특별히 유대 정결례에대한 절대적인 도전이었던 것입니다 이 하혈병걸린 여인의 이러한 예수에게로의 접근은 당시 율법적 윤리의 시각에서 보면 ”새치기“요 일종의폭력이요 불법이었던 것이라 에수님이 누가 내 몸에 손을 대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공포와두려움을느낀 것입니다.
유대교 율법 즉 정결례를 벗어 버리고 예수께 도달하기 까지!!
그런데 이 여인의 하혈병의피가 마르는 치유는 …(그녀가 그의 옷을) 만졌다.만졌다’라는 이 마지막 동사에 이르러서야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이 접촉과 ‘만짐’이야말로 기적의 시작이며 치유의 결정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치유 기적이야기들 중 절대다수는 신체적 접촉(=만짐)을 통해서 발생한다.그런데 그 만짐은 예수님 편에서 병자를 만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하혈병 본문은 이 성스러운 기적이 여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고, 예수님이 이 여인을 고치려면 이 여인과 신체적 접촉을 해야하고 만짐을 허락해야 하는데 그것을 허락하다 보면 예수님은 정결례을 어겨야 하는 상황에 예수님이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전혀 다른 자세를 취합니다. 모든 종교 지도자들은 늘 경계 담벼락을 만드는 boundary maker 되어수많은 유법을만들어 경계선을 지키는 역할을 하여 회당 밖 병자들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 정죄하고 공동체에서 추방합니다. 바로 부자 청년이 율법을 다 지켰다는 것이 바로 이 경계선 만들기에 충실한 사람들이고 모든 경건한 신앙의 출발점은 이 부자 청년처럼
경계선을 만들고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밀어내고 경계선을 만드는데 충실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갖기 시작하면 이 바운더리메이커 즉 경계선 지킴이 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경계를 넘어서는 (boundary breaker) 예수님은 십자가를 질수뿐이 없다.
하지만 예수님은 boundary breaker로서 경계선을 부수고 넘고 가로지르고 행단하시면서 행동하시는 이것이 예수님과 신앙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예수님이 경계를 부수어 타인과 접촉을 시도하는 그 순간 •바로 예수의 치유가 시작되고 동시에 바로 예수님의 수난이 시작 되는 것 입니다 영어에서 고난이라는 말 즉 compassion 우리말로 •자비, 사랑, 긍휼, 동정, 불쌍히 여김등으로은 번역되는데 중요한 것은 열정”이란 뜻도 있지만 “고난” 또는 “수난” 이란 뜻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 여인을 고치기위해 여인의 만짐을 허락하다가 이 만짐과 접촉을 받아 들임으로서 바로 정결법을 어기고‘예수님이 compassion이라는 수난에 이르고 이 하혈병 걸린 여인의 수난에 함께 동참함으로서 그녀를 고치고 유대 율법의 낡은 구조악을 고친다는 것입니다.이처럼 하혈병여인의“개인의 질병 치료’는 (안식일 /율법 / 성전)이라는 유대 사회구조에 정면으로 저항하면서 십자가를 지면서 거기서 신음하는 이들의 고통을 치유하기 시작하는 십자가의 치유(죄사함)의 능력이 여기서 이 만짐과 접촉으로 인한 정결례를 위반하며 함께 비를 맞는 이 compassion 즉 십자가로 부터시작되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거절되었고, 바티메오는 제자가 된 이유?
바티메오가예수에게 다가간 모습을 50절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제 옷을 벗어 던지고’예수에게 다가왔다고. 거렁뱅이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 입니다. 그에게 가진 것이 있다면 누더기같은옷 한 벌뿐이다. 그런데 그가 그것을 벗어던지면서까지예수를 따랐다. 즉 그도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 것이다.여기서 바티메오는‘따르다’와 ‘모든 것을 버리다’가 결합되어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지고 접촉하고 붙드는데 성공한 것이다.부자 청년은 결국 십자가를 십자가를 만지고 접촉하고 붙드는 compassion 즉 수난에 동참하는데 실패했지만 거지소경 바티메오는십자가의 수난에 동참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영적으로 눈을 뜨려면 바디매오처럼 그 길에서 예수를 따라 나설때비로서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린다는 것입니다.십자가를 지는 사람만이 영적인 눈이 열려 길을 찿을수있는 것입니다.예수께서 그에게 말하셨습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막10;52)
다시말해그는 보게(다시 보게) 되었고, 그리고 그는 그 길에서 그를 따랐다는 것 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영적으로 눈을 뜬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깨달을수있는데 그것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른 사람만이 영적인 눈을 뜰수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영적으로 눈을 뜨려면 바디매오처럼그 길에서 예수를 따라 나설때비로서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린다는 것 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만이 영적인 눈이 열려 구원의 길을 찿을수있는 것입니다.
결론: 재난이후 바리새적신경증 환자들이 다 되어
신앙이 유약해 지는 지금 우리는 십자가의 신앙으로
우리 공동체 신앙의 기초체력과 근육을 키울때이다.
1. 성서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사기꾼과 같은 야곱이 신앙의 조상이 되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하혈병걸린 여인의 새치기와 오염이 용납되며 늦게온 사람에게도 처음 온 사람과 똑같은 임금이 지급되고 광야에서 부르짖는 이스라엘, 내눈을뜨게 해달라는 바디메오 부르짖음을 시끄럽다 하지 않고 우리의 어떠한 피부색, 냄세, 생리 현상들의 약함에 의해 차별받지않습니다
2. 우리의 신앙이 이처럼 소아에서 대아 신앙으로 성장되면 젖병과
기져기 찬 어린아이들을 넘어선 신앙의 기초체력과 근육이 생기기
시작 합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3 이처럼 우리가 생명을 치유하고 고치려면 냄세나고, 볼품없는 사람들과도 신체적 접촉을 해야하고 그 만짐을 허락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허락하다 보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정결례을 어겨야 하는 고난(compassion)의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4. 이때우리가 바디메오처럼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데 성공한다면 바디메오처럼 영적인 눈을 뜰것이요 부자청년도 얻지 못한 그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5.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이제 우리는 성숙한 신앙은 서로에게
너무 많은 율법과 옵션을 요구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가 타인과 만나고 접촉할 때 까다롭고 신경증적인 조건과
옵션을 폐기하고, 타인에게 멍에를 지게 하지 않고, 오직
은혜와 덕으로 모든사람을 대하는 우리가 됩시다.
다같이: 어떠한 교양과 율법과 어떠한 외면 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생명입니다. 일체의 바리새적 외식을 벗어버리고, 오직 가난한자, 소외된자, 약한자의 생명과 배고픔에 집중하고, 오직 말씀과 생명과 돌봄에 집중하는 사순절과 부활의 아침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