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밖 십자가에서 완성되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막15;24-32)
1.십자가 형은 로마제국과 유대 종교권력이 공모한 정치형이다.
https://youtu.be/mW4uGgLxuCc
오늘 종려주일 주님이 예루살렘에서 고난이 시작된 한주간의 수난과 고난과 십자가에 매달린 사건 입니다, 이 고난 주간을 지내면서 우리가 풀러야할 몇가지 오해와 꼭 기억해야 할 몇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 중 첫번째 오해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나의 개인 구원을 위한 대속 사건으로 축소한 오해 입니다
사영리,삼박자구원, ‘EXPLO’74’대회
사영리와 삼박자축복 교리는 ‘EXPLO’74’대회를 시발로
오늘날까지 한국 기독교 교회 밑바탕에 깔려 있는 정신이
됩니다. 당시 교회의 흐름은 1.‘EXPLO’74’란 1974년 8월 13일부터
(사영리)로 잘 알려진 CCC (한국 대학생 선교회)운동과
2. 삼박자의 조용기목사 의 순복음운동과 민중신학을 바탕으로
한 3.기독교 사회참여 운동이 바로 그 세가지였습니다.
사영리란 성경66권에 나타난 구원의 원리를 네가지로 축약
시켜놓은 것입니다. 첫째 원리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둘째 원리는 사람은 죄로 인해 멸망하고 영원한 형벌에 놓여
있다. 세째 원리는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구원의 길이 열렸다. 네번째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원리입니다.
이 사영리가 만들어진 것은 1958년 미국 CCC 수련회에 강사로
초빙된 세일즈맨으로 거부가 된 사람이 “성공적인 세일즈맨이
되는 지름길은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짧고 알기쉬운
그러나 눈에 띄는 선전 문구를 사용해야 한다. 고객에게
똑같은 내용의 말을 하고, 그것을 잘 전할수록 성공적인 세일
즈맨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 말에 감명을 받은 빌 브라
이트 총재가 만든 것이 바로 사영리 전도지라는 것입니다.
사영리,번영신학 vs 4.3, 전태일,세월호,
성문밖 마을교회
1980년대 대학 캠퍼스에 앉아 있으면 주로 ccc와 같은 대학
선교회와 ubf와 같은 대학생 성서 읽기회 단체에서 이러한
선교 단체의 분들이 와서 전도를 합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전도하는 내용을 보면 주로 사영리로 하는 전도 입니다.
74년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이후 활동하는 청년 선교단체
전도 청년들인데 그분들의 사영리 전도를 듣고 있다면 이러한
사영리식 기독교 복음이해와 전도의 행태는 당시 광주에서
양민들이 학살당하고, 젊은 이들이 거리에서 최루탄을 맞고
감옥에 가고 죽어나가는 삶과 사회적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
어진 것 이었습니다,어떻게 이러한 신앙이 가능하였는가?
시대와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아무런 고민과 반성이 없는
오로지 개인의 구원에 몰두해 있는 신앙이었던 것 입니다.
교회가 이러한 사영리의 개인구원과 예수님과 성공하고
부자되는 이러한 번영신학에 몰두한 결과 오늘 한국 교회는
소금의 맛을 다 잃고 검찰과 언론과의 동맹체를 이루어 가짜
뉴스의 양산하는 사회적 공신력을 다 잃어 버린 소금처럼
되어 오늘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게 된것 입니다,
이제 우리 기독교는 우선 십자가 고난의 깊이를 이해하면서
바른 십자가 신앙과 신학을 정립해야 할줄로 믿습니다,
2, 우선 십자가 고난의 깊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제자들의 이탈, 배반 부인 도망등으로 인한 예수님의 심리적 고통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
고 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하는 로마병장에
의한 조롱과 모욕과 멸시를 통한 고난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로마의 채찍과 십자가의 고통을 분명히 기억해
야 할 것 입니다. 로마의 십자가 형에 앞서 반드시 채찍질 형을
하는 것은 아닌데 예수님은 십가자형 앞에 채찍질 형을 먼져 받
으십니다. 로마가 채찍형으로 쓴 채찍은 여러개의 가죽을 묶은 것
으로 가족 끝에 뻐조각과 납조각을 박아 이 채찍이 몸을 휘감으
면 실핏줄이 터지고 나중에 동맥이 파열되고 살점이 다 떨어진다
고 합니다. 채찍형 이후에 있는 십가가형은 에수님의 몸을 무게를
손과 발에 박은 못으로 지탱케하여 손과 발이 찢기고 한나절
하루와 같은 장시간 처절한 고통속에 죽어가게하는 처형 방법이
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가에 찾아간 여인들은 …
16장 8절에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여자들
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마가복음의 끝은 심한 공포감으로
무덤가에서 끝나고 있는 것입니다.
3.바른 십자가 신앙과 신학을 정립하기위해
성문 밖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구약의 속죄 제사 전통에 비추어
해석하고 있습니다. 구약 유대교의 전통에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짐승의 피를 속죄제물로 드리듯이 예수 역시 “당신의 피로 백성들의 죄를 하사여
주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했다”는 해석입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예수님의 십자가 해석은 이러한 대속적 십자가를
포함하면서도 넘어섭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이러한 유대교의 성전중심의 동물 희생제사의 대속적 죽음을
포함하면서도 그러한 대속적 십자가의 의미를 혁파하고 단한번에
십자가 제물과 부활로 대속적 동물희생 제사를 넘어서는데 그것이
바로 성문밖 예수의 십자가입니다.
* 세상은 성문 밖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동안 성문 안의 세계에
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하나님의 죄사함을 받고, 복을
기대하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고 있을 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성문 안의 세계가 하나님께 얼마나 가증한 곳 인지 보고 있습니다.
성문안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세력이 있는 곳이고 모인곳 입니다.
히브리서 13:13절을 보면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성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루살렘 성전은
권력을 강화하고, 부(富)를 축적하는데 집중하고 사명을 망각하고 있었습니
다. 그 결과 성전은 타락하였고, 로마에 의해 70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4.성숙한 신앙인은 유아적 대속론(개인구원)의 한계를 닫고
성문밖으로 나가 성문밖의 십자가를 지기 시작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가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는 교회가 교회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교회안에서 안주하며 자신들만을 위한 종교가 될 때 교회는 힘을 잃고 타락하지만
교회가 성전 밖으로 선교의 발걸음을 옮길 때 교회가 성장할 뿐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도 그분께 나아가서 그분이 겪으신 치욕을 함께 겪읍시다.”
(히13:13) 라는 말씀처럼 대속적 십자가를 넘어 우리의 삶을 부단히 “성문 밖”
으로 채찍질해 나가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몸의 실천을 통해서 체험하는
성문밖 신앙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제 성문안에서 성문밖으로 나와 나와 이 성문밖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나가야할 교회가 바로 성문밖 교회라 하신것 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숙한 신앙인은 유아적 대속론(개인구원)의 한계를 닫고
성문밖으로 나가 성문밖의 십자가를 지기 시작해야 합니다.
특별히 코로나 이후 기후변화 이후의 새로운 예수 신앙의 방향은 여전히
사영리 창조 타락 속죄 믿음에 입각해 인간의 행동을 율법으로 통제하고
길드리려는 내세 중심적 유아기적 신앙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이러한 단 한번의 대속과 함께 구약의 동물 희생자
가 폐지 됨과 동시에 성전의 휘장이 찢겨져 나가며 성문안과 밖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이제 성문밖으로 나가 성문밖에서 십자가를 지는 성문밖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러한 성문밖 신앙이 지금 코로나와 대선이후 절실 합니다.
5. 성문밖 십자가의 부활의 희망은 무엇인가?
만약 우리가 아직도 사영리 창조 타락 속죄 믿음에 입각하여 개인의 대속적 영혼구원과 마음의 평화 심지어 교회성장를 위한 성공과 번영의 신학만을 가르친다며 이는 지금 사회와 공동체와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를 은폐하고
사람들의 정신의 마비 시키는 아편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 입니다.
오늘 성문 안의 세계에서는 십자가의 삶이 불가능합니다. 오직 자기 행복과 자기 이름을 내세운 종교적 행위만이 넘쳐 날 뿐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처럼
성문밖으로 나가 세상의 모욕과 조롱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며 십자가에 매달릴때에
성문안 신앙과 성문밖 신앙이 마치 알곡과 가라지 처럼 갈라질 것 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가 성문밖에서 십자가에 매달릴때 우리는 성문 안의 세계를 기웃거리지 말아햐 합니다. 성문안은 종교적 만족을 누릴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의 생명
이 없는 곳입니다. 성문밖은 그리스도가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곳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성문밖의 생명과 부활의 신앙 체험이 필요합니다.
성문밖으로 나서기로한 우리는 더 이상 나 자신만 위한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 .(고후5:15) 죽은것 같지만 다시사는 부활의 신앙을 체험할 때 입니다
그래야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당하신 성문 밖의 세계의 부활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고, 십자가 이후 부활의 신 새벽에 참여 할수 있을 것 입니다. 아멘!!
다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 주님은 유대교의 성전중심의 동물 속죄 제사을 혁파하고 단한번에 십자가
제물로 드려짐으로서 더 이상 구약의 낡은 동물 희생제사를 드리지 않고
부활의 예배를 드림으로서 오늘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수 있습니다.
주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우리의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은 개인 구원적
대속 신앙을 넘어 서길 원합니다.
유아적 대속신앙을 넘어 이제는 성숙한 신앙인되어 내 죄가 예수님의 피로 속죄를
받았다는 개인의 대속 신앙을 넘어 이제 성문밖으로 나가 십자가를 지기를 원합니다.
주님! 오늘 우리는 깨닫습니다, 성문 안의 세계는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죽인 곳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나만 죄사함을 받고 깨끗해졌다, 나만 구원받았다 하는
이 성문 안의 세계가 하나님께 얼마나 가증한 곳인지 보고 깨달을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가 성문밖에서 십자가에 매달릴때 우리는 성문 안의 세계를 기웃거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성문안 신앙은 종교적 만족을 누릴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곳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시대에 성문밖으로 나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성문안에서의 개인의 대속과 구원을 넘어 이웃과 지역과 마을과
사회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시대구원과 사회구원과 생태구원으로 까지
우리의 신앙을 확장시키길 원합니다,
우리가 성문밖 십자가를 지면서 미움을 받고 조롱과 멸시를 당할지라도 우리 자신의 안정과 행복과 성장과 부가 사라질지라도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치욕을 짊어지고
성문 밖으로 나아가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기를 원하오니 부활의 성령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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