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와 예수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바로 바울의 서신에 에 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닌 사람이 아니라 바울의 신앙의 핵심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신앙고백 중심으로 기록했고, 이러한 신앙고백위에 초대교회도 당시 이방지역이었던 유럽의 빌립보 데살로니카 고린도등에서 로마 황제신앙에 대해 대안으로 부활한 에수그리스도 중심으로 새로운 신앙공동체인 교회(에클레시아)를 설립하는데 주력한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서신이 탄생한지 20년후 마가 복음서라는 복음서가 최고로 탄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복음이다라는 기쁜 소식(유안겔리온)을 다시 전하는데 이러한 마가 복음의 탄생 이유는 무엇인가?가 오늘 새해의 다시 복음서로 출발하는 우리들의 질문일수 뿐이 없는 것입니다,
핵심적 이유는 십자가와 부활이전에 역사적 예수가 누구인가가 이제 초대교회의 문제가 된 것 입니다, 이렇게 신앙고백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인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어떠한 일을 했기에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되고 우리의 메시아가되었는가를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전달하기위해 마가라는 사람들이 갈릴리와 가버나움일대를 중심으로 그의 기적과 치유와 선교 이야기와 그 의 예루살렘에서의 고난과 성전숙청과 십자가형과 부활 사건을 총 수집하연 마가 복음서를 쓰게 된 것입니다,
바울의 신앙은 부활신앙과 신앙 고백에 기초한 신앙인데
여기에는 역사적 예수가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의 삶에 대한 모든 기록이 바울에는 빠져있고
오직 부활한 예수를 우리가 믿고 부활의 평등 에클레시아 공동체를 세우자는 운동인데 여기에는 정작 살아계신 예수님이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마가 복음이 탄생하는 것인데 마가는
그리하여 1-3장의 갈릴리의 선교현장과 바닷과 호수의 현장 이방 데칼폴리스의 현장과 에수님의 수난이야기를 일종의 드라마로 재현해 내는데 이것이 판소리 형식으로 초대교회의 마을과 마을 교회을 돌며 이러한 마가의 예수전이 공연흘 하였고 이것이 히트를 치자 유대인들을 위한 마태 복음이라는 증보판과 누가 복음이라는 로마제국으로 확산되는 시절의 세계화된 증보판이 등장하였다는 것입니다,
2. 광야의 세례요한의 세례운동과 광야의 청년예수
오늘 첫시간이 만큼 오늘은 그 이야기중 예수님이 광야로 나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수련을 받는 과정과 갈릴리라는 마을에 들어와서 때가 찾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나를 따르라 하고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까지의 의미를 살펴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요한 세례의 의미 이것은 바로 AD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의 붕괴이후에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이 불가능할때의 상황에서 광야에서 활동하는 세례요한의 세례운동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신앙생활의 중심은 성전이었는데 그 성전이 붕괴되었을 때 세레요한의 광야에서 세례를 줍니다, 이것은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에 대한 도전을 의미 합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성전에 나와서 제사장들로부터 죄사함을 받지 않고서는 우리의 죄가 용서 받을수 없다고 하여 성전에 제물을 가지고 나와서 성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만이 진정한 신앙인 인 것을 강조했는데 세례요한은 요단강물에서 세레를 받으면 우리의 죄가 사해진다는 혁명적 죄사함을 이야기 했고 그래서 예수를 중심을 수많은 젊은이들이 광야에 나가서 세례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중심이 성전중심에서 다시 출애굽기의 광야중심과 요한의 약대와 야생꿀 중심의 엘리야와 같은 예언자 중심의 신앙으로 변화됨을 의미하게 됩디다,
그리고 예수는 이 광야에서 40년가 3가지 유혹을 받으며수련을 하게되는데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의 행진할때 불폄불만을 터트려 결국 광야의 행진에서 실패하여 가나안땅을 바라보고도 그땅에 들어가는 것에 실패 전멸하고 오직 여호수아 갈렙으로 대표되는 신세대만이 가나안에 입성한것과는 반대로 예수님 이 광야의 유혹과 고난을 이겨내고 승리하게 됩니다,
3.세례➜광야 수행➜갈릴래아에서 나를 따르라!
그때 요단강가로 나간 젊은이들이 바로 에수와 안드레와 빌립 나다나엘 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의 대중 세례운동과 집권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이 문제가 되어 세례요한이 결국 권력자에 의해 잡혀 목숨을 잃게 되자 광야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나왔던 많은 젊은이들 중에 일부가 이제 요단강 광야중심을 거쳐 홀연 갈릴리라는 마을에 등장 합니다,
15.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여기서 그 공간과 장소가 성전도 아니고 광야도 아니고 바로 갈릴리 마을이었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갈릴리 마을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기 위해 갈릴리의 젊은 어부들을 부르시며 나를 따르라 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보통 길의 복음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지나친 길만을 살펴도 바로 성전에서 광야를 거쳐 마을로 내려오는 장면을 우리는 볼 수 있고 예수님은 바로 이 갈릴리 마을이 예수님은 이 하나님 나라 운동의 중심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 갈릴리 마을에서 제자들을 부르는 이 장면이 좀더 자세히 나온곳이 바로
요한 복음입니다,
어느날 가버나움 변방에 새로운 메시아 운동의 방향을 찾던 젊은이들중에 안드레가
형제들에게 내가 메시아를 찾았다하는 소리를 합니다,
그리고 빌립이 예수를 만나서 안드레에게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할때이러한
안드레와 빌립의 감탄사에 대해 나다나엘의 아주 시니컬한 반응을 합니다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온다는 말인가?
예수님은 당시 자신의 지역과 공동체에 대한 열등의식에 빠져있던
갈릴리 일대의 청년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복음을 믿어라라는 말씀을 외쳤고
•이에 청년들이 와서 보아라 라고 응답함으로서
당대 청년들에게 복음의 길을 제시 하셨던 것 입니다
4. 금관의예수 :예수를 성전에서 해방 시켜라!!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메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금관의 예수, 김민기 작곡
1973년도에 만든 이곡은 <금관의 예수>라는 김지하의 희곡에 맞춰서 김민기가 만든
노래입니다. 당시 유신독재 정권 아래서 이 연극은 전국 성당들을 돌면서 공연되었고, 당시 저항담론은 ‘민중론’이었는데, 여기서 나온 게 ‘민중신학’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금관의 예수>는 대충 이런 이야기입니다. 성당 마당에 아주 멋진 예수 동상이 있어요. 어느 추운 성탄절 밤에 거지 몇 명이 동상 앞에 앉아서 신세 한탄을 합니다. 그러자 거지 한명의 머리 위로 물방울 하나가 떨어집니다. 바로 금관을 쓴 예수님이 떨어뜨린 눈물이었죠. 예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힘만으로는 안 된다. 너희들이 나를 해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네가 내 머리에서 금관을 벗겨내는 순간 내 입이 열렸다. 네가 나를 해방시켰다. 내겐 금이 필요 없고 네겐 금이 필요하다. 금은 네가 가져가 네 벗들과 함께 나누어라.”
당당하고 늠름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금관을 쓰고 있는 예수님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하지만 금관을 벗겨 내는 순간 말을 하고 활동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리고 거지들은 예수의 금관을 벗겨냄으로써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한 순간의 기회를 얻었던 것이죠.
예수님은 금관이 벗겨짐으로써 구원을 얻고, 거지들은 예수의 금관을 가져감으로써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면 이 금관의 예수님은 1970-80년대 젊은 리를 무엇으로 부터 해방시켰고
무엇으로 부터 자유하게 하셨습니까?
첫째로 금관의 예수는 우리에게 돈에서 해방된 교회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둘째 성전에서만 죄를 사할수있다는 성전의
제사제도와 율법에서 해방되어라!고 말하였습니다.
셋째 건물 교회에서 해방되어라!
이제 교회는 건물안에 모이는 곳이 아니라 건물밖으로 광야로 나가서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수련을 하고 마을 한복판에 나타나 젊은 제자들을 부르며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신 것처럼 교회 건물을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