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두주전부터 바울 서신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빌립보 서신으로 말씀을 나누었고 두 번째 시간에는 데살로니카 서신을 다루었습니다, 이 두 교회가 마케도니아 지역 교회들로 칭찬을 받은 교회라면 오늘 우리의 본문 고린도 교회는 초대교회중 가장 많은 문제를 일으켰을뿐 아니라 분열을 일르킨 교회이었습니다.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바울은 왜 고린도교인들을 영적 유아라 진단합니까? 고린도 교회의 처음 분열의 시작은 바울과 아볼라의 설교를 중심으로 고린도교회가 나는 바울파다 아볼라 파다 베드로파다 그리스로 파다 하고 분열되기 시작이 합니다 이러한 분열에 대해 바울은 1장 22절에서 “ 유대인은 표적을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찾으나”라고 이야기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그 습성과 방향을 고린도교회에 들어와 있는 유대인들의 하나님은 배타적 하나님 나만 우리민족만 우리가족만 돌보고 위해있는 이기적 선민의식을 가진 하나님을 의미 합니다.
또 고린도교회의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에서 헬라인은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자유 추구하고 성향 때문에 자신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자기 주장을 하기위해 말씀을 듣는 극심한 교만이 그 원인이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자기 중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고린도 교인을 새롭고 낮선 것을 거부하고 단단한 음식을 먹기를 거부하고 익숙한 젖만을 먹기 원하는 유아적인 신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의 젖먹는 신앙을 넘어서 부단히 성숙한 것 딱딱한 것을 먹이려 하나 고린도 교회교인들은 새로운 것 낯선것 자신과 다른 것을 듣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그래서 바울은 3장2절에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말합니다.
즉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은 아직 미신 주술 유아에 빠진 유아적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유아적 신앙은 오늘 한국교회에도 적용됩니다, 기독교란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는 이타적 종교인데, 오늘 우리 한국기독교는 원래 이웃사랑이라는 이타적 종교를 세상에서 제일 폐쇄적이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종교로 강화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앞장서서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고 차별금지법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처럼 우리 한국교회도 공적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은 우리 가족만 돌보고 나와 우리 가족만을 위해있는 하나님으로 생각하여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하나님으로 만들고 있고, 또 모든 것에 자유는 주장하지만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이기적이고 교만한 사적인 하나님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3 .그래서 고린도 교회의 이러한 교만한 유대교적 율법적 거만함과 헬라적 세상지혜의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자유주의적 교만함과 맞서서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서신을 통해 로마의 브로커 제도와 부자에 의존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고린도 교회 남성들의 성적방종과 여성의 무질서한 방언으로 자행하는 종교적 광신에 대해 서신을 통해 권면을 하기 시작하자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부자교인들의 저항과 극심한 모욕에 직면하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의 부자교인들은 바울을 향해 1. 바울의 편지는 힘히있어 보이지만 2. 직접 보면 그의 용모는 이렇다 할것이 없고 말재주도 시원 찬다고 했다, 3. 무엇보다 바울은 베드로처럼 예수를 직접 따라다닌 사도가 아니다 4. 또 그는 우리의 후원을 거부하고 있다는 온갖 가짜뉴스로 바울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모욕과 수난을 겪는 과정에서 바울은 로마의 권세자들과 유대의 권세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1:22-23)라는 종교적 거만함 물든 유대인들은 꺼리고, 세상지혜에 물든 헬라인들은 미련한것이라고 우습게 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신앙을 전면에 들고 나오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지난 7월 성서학당때 누가복음의 예수님의 수난이야기를 이 재난 기간 동안 다시 읽으면서 느꼈을 십자가의 예수님을 다시 느껴 보았습니다. 그날 읽은 22장은 그 출발부터가 1. 예수를 잡아 죽일 음모 2. 배반 체포 부인 3. 세상 법정에 서는 장면 다시 읽으면서 김귀숙 권사님은 이 재난가운데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내가 과연 이 십자가를 질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지만 예수님이 예수를 잡아 죽일 음모 2. 배반 체포 부인 3. 세상 법정에 서는 모습을 누가 복음을 통해 다시 읽으면서 다시 힘을 내 보신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교우여러분 오늘 이 코로나중 너머지고 다치고 무너진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소상공민 코로나 사태로 인해 동네 치킨집, 떢볶이 집 등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작은 여행사, 관광버스 등에 기대고 사시던 분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그나마 일용직 자리도 없어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 재난가운데 모두가 에수님의 마지막 순간처럼 십자가를 짊어지고 이 재난의 한가운데를 넘어가고 있는 것 입니다
얼마전 한국일 교수님 은퇴 모임에 갔었은데 한교수님의 은퇴강연의 제목이 바로 연약함의 선교입니다, 한교수님은 보통 종교는 대표적으로 유대교, 이슬람은 강한 힘의 종교를 추구 하거나 헬라철학과 같이 지혜를 추구 한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힘의 종교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기독교는 거리낌과 미련함과 걸림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적 거만함 물든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껴렸고, 세상지혜에 물든 헬라인들은 미련한것이라고 우습게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 코로나 재난을 만나기전에 추구한 신앙이 바로 유대교와 헬라의 지헤와 같은 강한 힘의 종교이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한국 기독인들은 이러한 성공과 번영에 취한 힘센 하나님에 익숙하여왔는데 정작 이러한 재난기에 늘 성공과 번영을 이야기하는 이러한 힘센 종교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계시는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재난가운데 우리가 찾아야 할 하나님은 그동안 우리 한국 교회가 추구해 왔던 성공과 번영의 힘센 하나님이 아니라 성육신 사건에 나타난 자기비움과 낮춤의 하나님이고, 세상의 짐을 짊어지는 연약한 수난의 하나님입니다.
그날 한국일 교수님이 은퇴 강연에서 가장 강조한 말씀은 오늘 우리가 이 코로나 재난을 이겨내려면 주님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 깨달아야 하고 우리가 이 십자가의 은헤를 깨달을수록 동시에 우리의 연약성에 대한 더욱 깊은 인식을 갖어야 한다는 말씀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오히려 십자가의 사랑으로 연약함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고전 13장) 힘센 하나님이 아니라 이 연약한 하나님이야 말로 진정 우리을 도울수 있고 이 재난기에 선교을 가능케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연약함에 기초한 선교야 말로 세상과 타인의 짐을 즐겨 짊어지기 시작하고 주변과 변방에서 약한자와 함께 사역을 시작하게 하고 약한자들과 상호배움, 상호도움, 함께 축제를 나누며 실제적으로는 지역 주민들을 다 품고, 그들의 요구를 거절없이 받아들이는 적극적 환대로서 출발하지만 일방적으로 주는 환대가 아니라 환대를 받는 환대의 역전으로 까지 나갈수 있다는 놀라운 은혜의 말씀을 들을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난주 담낭의 돌을 제거하러 거의 20년만에 병원에 입원을 해보니 저의 연약함과 함께 제가그동안 진 십자가는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선 제 옆에 침대에는 암선고를 받으신 남성분이 계셨고 저도 오랜만에 병원에와서 세계적인 영성신학자 마르바 던의< 위로>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 그녀는 지난 15년 동안 팔과 다리에 수많은 가벼운 수술을 했고, 눈은 레이저치료를 수백 번 받았다.여덟 번의 대수술을 받았는데, 그중에는 장중첩증으로 인한 장 절제와 자궁 적출, 여러 조각으로 부서진 발뼈를 맞추는 수술, 암 수술 두 번이 포함된다. 망막출혈이 있은 후 눈 수술을 세 번 받았다. 그녀의 신장은 25%밖에 기능하지 못한다. 장의 신경들이 죽었기 때문에 늘 네 종류의 약을 섞어서 복용해야만 장이 겨우 기능한다. 다리는 불구이고, 뼈는 퇴행하고 무릎 아래로는 신경이 죽었기 때문에 걷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다. 암 수술을 받을 때 신경이 손상되었고, 또 관절염이 있기 때문에 늘 고통스럽다.(14쪽)한 가지 병을 앓는 일도 버거운데, 이게 다 무엇이란 말인가. 어디서 끊어야 할지 곤란하게 만드는 그의 '고통 목록'은 이후로도 한참 이어진다. 그에게 찾아온 것은 몸의 고통만이 아니었다. 전남편은 그를 버리고, 그들이 가르치던 청년 그룹 멤버와 결혼했다. 이 정도면 신앙에 깊은 회의를 갖거나 하나님을 저주할 법도 한데 마르바 던은 달랐다. 감당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의 고통 앞에서 그는 울부짖으며 되묻는 작업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성경을 붙잡은 것이다. 계속해서 시편에 집중했다. 그가 던진 "주님 언제까지입니까?"라는 물음은 고통스러운 실존을 마주한 연약한 시편 기자들의 울부짖음 이었던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담석증 돌을 제거하기위해 비록 순천향 병원에 이틀동안의 잠시있었지만 카톡과 페이스 북에서 들여오는 약대동에서 소식을 들으며 저도 빌립보서 1장 12절 말씀처럼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하는 바울이 빌립보 서 말씀처럼 지금 제가 병원에 갇혀 있지만 지금 약대동의 복음은 계속 진보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지난 금요일까지 순천향 병원에 갇혀 아무것도 할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저는 이렇게 연약한 가운데 있는 저에게 카톡으로 페이스 북으로 하나님께서 약대동에서 일으키는 성령의 역사를 누구보다 분명이 보여주시고 느낄수 있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지난 한주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를 가지고 설료를 준비하면서도 바울이 강할 때 선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약함과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이 선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수 있었고 우리 약대동 선교 현장에서도 우리에게 모든 것이 다 충족되고 넉넉해서 선교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약하고 부족할 때 그 약하고 부족함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저는 이번주 고린도 교회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고린도 교회의 문제 앞에서 쩔쩔매는 연약한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볼수 있었고, 동시에 이 코로나 재난가운데 우리와 함께 온갖 문제 앞에서 쩔쩔 매시는 연약한 하나님이야 말로 진정 오늘 재난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임을 깨달을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시는"( 고전1:27-28) 성령의 선교의 역사를 분명히 볼수 있었습니다.
이 재난의 시기와 기간 우리도 바울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택하셔서 고린도 전서 13장의 믿음 과 소망 사랑의 능력을 만들어 가시는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전하고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함께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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