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제임스 조이스라는 작가가 자신의 고향 아일랜드의 수도 사람들의 삶을 그린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책을 쓰는데그 책에서 그는 당시 영국의 식민지를 경험한 아일랜드 사람들의 마비된 일상을 세밀히 그려냅니다,
식민지라는 재난 경험이 더블린 사람들을 살아 있지만 마비 시키고 있다는 것이 더블린 사람들의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공동체나 코로나와 같은 재난 상황있는 사람들은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처럼 공포와 냉소로 마비되기가 쉽습니다,
보통 재난을 당한 사람들은 우선 추락, 붕괴, 화재 등의
1차 트라우마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끔찍한
2차 3차 트라우마가 더 무섭습니다,
그것은 그러한 재난 상황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지 않는 이웃, 재난보다 더 무서운 "이웃의 냉소와 냉대"입니다.
심지어 세월호와 같이 자식을 잃고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향해
각종 유언비어를 지어내고 비난 혐오하고 왕따시키는
사람들을 겪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가장 무서운 것은 ‘집단적 냉소’ 와 왕따와같은 문화로서
이러한 집단적 냉소의 문화는 처음에는 ‘이제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문제는 그만 생각하고 싶다’하는데서 출발하지만 “너때문이야라는 집단적 협오와 나만 살겠다는 악마적이고 이기적인 집단적 방어기제”로발전하면서 죽음의 권세와 사망의 권세가 우리 공동체를 지배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7.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이러한 가운데 오늘 요한 복음 16장7절에 이르러 예수님은 오늘 수난을 앞에두고 마지막 고별 연설에서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 이후 죽음의 권세와 공포가운데 있을 요한 공동체에게 보혜사 성령을 약속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안과 밖의 사망권세의 늪에 빠져 허덕이는 요한공동체에
파라클레이토스라는 보헤사 성령을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 입니다,
“보혜사”란 “파라클레토스”라는 헬라어로서 “파라”(옆에)와 “클레오”(부르다)의 합성어로서, 원래 일반적으로 재판상황의 피고측 "변호자"를 의미했던라는 말이었습니다,
4.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1. 즉 이 보혜사 성령은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공포가운데 재판을
당할 때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지 못하는 공포가운데 그들을 변호해지고 위로해 주는 변호의 영이었는데 그들의 박해 상황과 동행하면서 처음에는 피고측 변호자 보호 동행하는 수동적 역할에서 시작하지만 33절에 이르면
33.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는 지금 나를 심판하는 세상을 사실 내가 이겼다고 하는 세상을 심판하는 검사, 위로자, 권면자등 그 역할이 전복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파라클레토스 보헤사 성령은 박해 가운데서 선교의 성공을 가져다주는 힘을 줄뿐만 이아니라 (15,26)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는 이 박해 상황에서 내가 승리하였다는 놀라운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성령인 것 입니다,
지난 수요일 화상 성서아카데미 시간에 김귀숙 권사님이 영상 성서모임 처음에는 망설어 졌지만 용기를 내어 들어와 보니 반갑습니다 하고 말씀과 생활나눔 시간을 열어 주셨습니다,
두 번째로 최권사님은 친정어머님 장례식후 쉬지 못하고 코로나 때라
중무장을 하고 어느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데
그 어머님이 공항장애를 앓고 게셨는데 최권사님을 자신의 어머님 보다 더 의지하고 위로를 받고 계시는 것을 느끼면서 하나님이 이 가정에 나를 보내주셨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생활 나눔을 해 주셨습니다,
최권사님 말씀후 김현자 권사님 오늘 점심에는 꿈터에서 어르신들 두분과 식사를 하게되었는데 그 어르신 두분이 최권사님이 마을 심방때 너무 잘 돌보아 주셔서 그리워 하시면서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셨고 또 이번에 새롬 가정지원쎈타 대표가 되셨다고 제직회때 보고가 있었던 김권사님이 신중년 카톡방에 올리신 글을 보면 지금 가정 지원센타에 많은 응원과 지원이 쇄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부활이란 단순히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사로를 베다니와 같은 죽음의 권세가 지배햐는 무덤과 같은 현실에서 일으키신 것 같이, 지금 이세상을 지배하는 죽음과 사망의 권세에 맞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때 지난 성서아카데미에서 세 권사님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오늘 우리 약대동에서 무관심 냉담과 불신과 왕따라는 죽음의 문화와 사망의 권세에 맞서위로와 변호와 돌봄의 보혜사 성령의 부활의 권능이 우리 약대동 마을에 임하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가 요한 복음 16장의 파라클레이토스 즉 보헤사 성령의 말씀을 함께 읽으며 우리에게 맡겨진 작은 자들을 심방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돌보고 보살피어 이 사망권세와 재난가운데서 우리를 일어키시는 보헤사 성령의 역할을 감당하는 약대동 새롬교회의 부활절이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