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BS광장 <새로30여년 전, 도시 변두리에 교회를 개척하고, 부천 지역에서 처음으로 공부방을 연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가 맞벌이 부부를 위해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년들에게는 밥을 먹이고 지역민들을 위해 협동조합을 운영하기도 하는데요 37년이 지나자, 이 교회는 지역민들이 함께 꿈꾸는 공동체이자 소중한 일원이 되었고, 마을 목회의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CBS광장이 마련하고 있는 기획<새로운 선교의 길을 찾다> 세번째 순서로, 지역 주민들과 함께 꿈꾸는 교회를 이뤄가고 있는 부천 새롬교회 이원돈 목사와 이야기 나눕니다>
=녹음 일시: 7월6일(목)오후3시- 3시40분
녹음 뒤 방송 편성 일시: 7월9일(주일)오전8시- 8시40분
녹음 장소:서울시 양천구 목동CBS 3층C스튜디오=
CBS광장이 마련하고 있는 <새로운 선교의 길을 찾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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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번째로 지역 사회에서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마을 교회의 사례를 부천 새롬교회 이원돈 목사님 모시고 살펴봅니다.
부천 약대동에서 마을 목회를 하는 이원돈 목사입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타, 마을 도서관 마을학교등으로 마을의 학습 복지 문화 생태계 형성을 통해 약대동 마을에 공동체를 세우는대 주력했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약대마을의 돌봄마당, 문화마당, 생태마당을 통해 마을의 마당 교회를 추구하는 교회입니다
2.목사님은 많은 지역 가운데, 어떻게 해서 부천시 약대동에서 목회를 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왜 부천 약대동인가? 80년대 당시 부천 약대동 상황과 새롬교회 개척 당시 지역의 경제적, 인구학적, 문화적 상황과 목회 배경)
원래 새롬교회는 1979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해직된 전북대 철학과 교수 출신이신 남정길목사님이 세우신 지식인 교회이었습니다, 남목사님이 교회를 세우신후 전북대로 복직하신후 당시 지식인 교회 새롬교회의 청년들이 우리가 새롬교회에서 배운 예수신앙을 실천하기 위해 서민지역으로 내려가 다시 교회를 세우자고 서민지역을 답사하던 중 당시 기독학생(kscf)지역사회 개발단(학사단)이 기록한 약대동 빈민지역활동 보고서를 보고
제가 부천 약대동에 찾아갔을 때 첫눈에 이곳이 바로 부천의 갈릴리임을 깨닫고 교회
이전 개척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약대동은 마찌꼬바라는 소기업과 서민들과 그 자녀들이 사는 마누라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하는 서민지역이었습니다,
3.최근 한국 교회에서도 선교적 교회, 마을 목회라는 개념이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요, 목사님은 1980년대 후반, 교회 개척 초기부터 선교적 교회, 마을 목회에 대한 비젼을 품고 시작하신거라고 볼수 있겠네요? (갈릴리 선교의 꿈 )
이 돌봄마을 운동이 생명과 돌봄의 생태망과 마을마당으로 새롭게 전개되는 시기라고 볼수 있겠습니다,
4.어렵게 생활하는 노동자들이 많은 지역이었다고 하는데요 부천에서는 처음으로 공부방을 열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공부방을 시작하게 된 이유라면? ( 맞벌이 부부, 어려운 마을 주민들을 보듬기 위한 교회의 역할로 어린이 사역을 시작한 배경)
처음 약대동에 들어가서 10년 지역과 아동의 시기에 마을 부모님들이 전부 일하러
나가셔야 하기에 지역의 방치된 어린이들과 사귀면서 지역을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어린이집에서 종일탁아를 시작하였고, 아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지역공부방이 생겼는데 주로 숙제와 식사제공이있습니다,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 숙제지도와 간식 및 식사제공 이것이 아엠에프때 급식소가 되고 이어서 지역아동센타로 발전하여
imf 이후 전국적인 한국 사회의 최대의 복지전달체게 되었습니다.
5.공부방은 현재 지역 아동센터로 변모해서 여전히 운영중인데요
40년가까이 운영되온 공부방(지역아동센터)을 통한 지역주민과의 연결!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하세요?
청소년들이 마을에서 쭉 자라고 이 지역아동센타 아이들이 마을 도서관과 연결되어 꼽사리 영화제에 참여도 하고, 가족 도서관 20주년에는 축하 공연도 하고 최근에는 도서관과 지역아동센타가 공동사업으로 마을 기록 프로젝트로 하는 것을 보고 너무 뿌듯합니다, 가을 마을 심방때 교회 권사님과 지역아동센타 원장님과 선생님들과 아동센타 가정 방문 심방을 했는데 부모님 한분이 청소년 자녀를 저희 교회 청소년부 에 보내 주셔서 지금 이 아이들은 꼽이 심야 식당에서 또래 집단끼리 모여서 봉사도 하고 식사도 같이 합니다.
6. IMF 경제 위기 시기를 거치면서 실직자가 늘고,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이 해체되는 사례가 늘었고, 이때는 가족 공동체 사역을 하셨다구요? (교회가 아닌 주민센터에 마련된 <신나는 가족 도서관>과 가족 공동체 목회)
약대동의 아엠에프 재난기에 출발한 선교 프로그램 앞에는 전부 가족이라는 이름을 갖게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엠에프 시기에 서민 가정들이 붕괴되어 교회와 마을이 붕괴된 가족의 아이들의 가족을 지원하여야 하겠다 하여, 새롬 가정지원센타와 약대신나는 가족도서관을 세우게 됩니다,
7.청소년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꼽이 청소년 식당도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어떤 건가요? (꼽이 청소년 식당 운영 동기, 이용현황과 운영 방법 등)
꼼이 심야식당은 주로 “학교밖 청소년”들과 함께 식사하는 저녁 식사 모임입니다.처음에는 약대동 지역의 (약대중앙,약대감리,새롬) 3교회가 에큐메니컬하게 연대하여 부천 실내체육 관에서 하다가, 코로나 이후 새롬교회 세대공감으로 공간을 이동하여 꼽이 심야식당이 되어 코로나 이후 약대동 청소년 문화 사역의 거점 공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8.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이 교인들일텐데요 청소년들에게 밥을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대화도 이뤄지고 그러면서 예수님을 알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습니까?
약대동 아이들이 교회가 운영하는 심야식당과 영화제와 마을 기록 프로젝트등 교회밖 선교 프로그램에 참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와 마을의 접촉점과 경계선에서 청소년들과 교회가 만나는 마당이 형성되고 , 그 마당에 교회의 절기 축제에 교회가 마을과 함께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 문화와 마을문화가 어울려져 가고 있습니다. 저는 코로나 이후 시대에 우리 아이들에게 갈릴리 마을의 축제적 생명 운동이었던 예수 공동체와 예수님의 마을 생명 운동의 역동성과 축제성과 생명 공동체 정신이 청소년들에게 소개 되었으면 합니다. 최근 저녁에 꼽이 심야식당에 들렀다가, 심야 식당에 늘 참여하는 우리 지역아동센타 출신의 찐팬 청소년과 컵라면을 사러 같이 동네 슈퍼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 새롬 지역아동센타 출신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느낀 점은, 이 친구가 새롬 지역아동센타 에서 출발하여 꼽사리 영화제 그리고 꼽이 심야식당과 신나는 가족도서관까지 약대동의 모든 이야기를 꿰 뚫고있는 약대동의 찐 이야기 꾼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친구야 말로 어린 시절부터 약대동을 온몸으로 체험한 약대동 마을의 스타일이고, 스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까지는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영화제나 심야식당이나 마을학교 여행이나 마을 동아리 모임을 통해 주고 소통하고 있고, 마을 아이들이 교회 밖에서 심야 식당과 영화제 마을 기록 프로젝트에서 잘 어울리고 있기에, 앞으로도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 성탄절과 같은 교회 절기때에는 교회안으로 들어와서 갈릴리 마을의 축제적 생명 운동이었던 예수 공동체와 예수님의 마을 운동의 그 신나는 삶의 맛과 같은 약대동 마을과 교회를 경험하고 참여하고 있어서 여름마을 학교와 영화제나 청소년 수련회나 여행등의 만남을 통해 약대동 마을의 청년 예수들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아이들을 억지로 교회로 데리고 오기보다는 이러한 교회와 마을의 문화가 만나는 경계선과 접촉점이 확장되어야 가능하기에 지금 약대동 마을 마당에서 열심히 함께 만나고 있습니다.
9.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에도 참여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어떻게 참여하고 있나요 (현황 소개, 협동 조합 활동의 의미)
약대동 마을의 역사에서 2012년 세계 협동조햡의 해가 있던 다음해인 2013년이 중요합니다, 이때 꼽사리 영화제와 달토 협동조합 떡 카페가 동시에 출발되었습니다, 협동조합을 통해서는 많은 마을 일꾼들이 탄생을 하였고, 영화제를 통해서는 마을 이야기 즉 마을의 스토리 텔링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화제는 11회까지 지금도 지속되고 있지만 달토는 코로나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되었지만 ,그때 달토에서 "달송"이라는 마을음학회를 하던 문화예술인들이 문예학당을 만들어서 코로나 이후에는 약대동 문예학당으로 다시 모이셔서 지금은 약대동 마을의 중요한 문화 일꾼들로 마을 문화를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10.교회를 개척하고, 공부방을 하고, 여러가지 활동을 할때 처음부터 주민들의 마음이 열리지는 않았을것 같구요 어려움도 많았을것 같은데요?
약대동에서 10년이 지나 서로 사귀고 친해지고 그래서 마을생활과 공동체 생활을 같이 해보자하고 제안해 보면, 함께 마을 생활을 하시던 분들이, 목사님 저 다음달에 이사해요 하는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약대동 분들은 저와 꿈이 다른 것 이었습니다.저야 선교를 위해 서민지역인 약대동을 일부러 찾아온 것이지만 약대동 분들의
꿈은 초기에는 자녀교육의 필요성에 의해 공동체에 참여하지만,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으면 마을을 떠나 더 좋은 마을로 가는는 것입니다. 서민지역이니 어떤분들은 상황이 더 어려워서 마을을 떠나는 분들도 있지만, 이곳에서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타,도서관을 통해 아이들을 잘 키우고 좀더 생활이 나아지면 좀더 좋은 곳으로 이사가는 것이 당연한 욕망일수 있다고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마을에 뿌리를 내리려면 단순히 교회와 가정만 바꾸어서는 안되고 마을 자체를 살만한 마을로 바꾸어 나가야 겠구나 하면서 마을 만들기를 시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국 최고의 이사율을 자랑하는 부천에서는 지금도 약대동을 떠나고 들어오는 일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이 개발이 되니 이 서민지역에서도 살기 힘들어 떠나는 분도 계시지만, 마을이 필요할때는 마을에 있지만 다른 필요가 생기면 가차없이 떠나기도 합니다, 욕망에 흔들리지 않는 신앙적 가치와 믿음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코로나를 격으면서 깨달은 것인데 코로나 기간중 떠나는 분들도 있지민 지키는 분들도 게시고 심지어 새로이 들어오시는 분들도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분들은 더 단단해 진 부분도 있습니다. 코로나를 지나면서 중요해진 부분은 마을에 교회와 마을을 잇는
마당이 생겨 이제는 마을 잔치를 주로 이 마당에서 치루게 됩니다.
처음에는 교우들이 마을 분들을 초청해서 식사를 많이 하게되었고, 이번 부활절에 어르신 야외예배를 준비했는데 처음에는 식사만 같이하고 야유회를 가려고 했는데 어르신들이 아예 부활절 예배때부터 참여하셔서 이제 한달에 한번은 함께 예배 드리고 식사도 하는 새로운 마당 이 생겼습니다, 코로나기에 함께 마을 마당을 만들어 밥상도 나누고, 노래교실 한글교실 건강교실등 돌봄마당이 만들어낸 소통의 힘이 어르신들은 예배에도 참여케하는 이러한 마당 전도를 가능케 했다고 생각합니다.
12.요즘 마을 목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그런데, “교회가 마을의 중심이 아니라 일원이 되어야 한다. 는 지적이 있습니다. 지역에 접근하는 교회의 시각에 대한 동의하시는지?
1. 코로나 이후 마을 목회와 선교가 코로나 이후 목회의 대안이다.
코로나 이후 교계 뉴스를 보면 , “마을 목회가 한국교회 추락한 이미지 마을 목회가 바꿔 놓고 있다”“코로나 이후 마을 목회와 선교가 코로나 이후 목회의 대안이 될 뿐만 아니라 (노영상 교수)(정재영교수)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와 함께 코로나 이후 탈 성장 시대의 마을 목회 전략으로서는
1.마을목회는 교회건물 안에 '닫힌 목회'로부터 지역사회에 플랫폼(마당)이 되어 지역주민들과 어울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한국일 교수)
2. 이번 대전 ncc 마을목회 세미나의 주제가 “마을을 살리는 교회, 교회를 살리는 마을”이었습니다. 팬데믹이후 한국교회는 교인 수와 재정이 약 30% 감소하는 추세 속에서 교회와 지역마을과의 새로운 상호 돌봄적 상생의 네트워크가 코로나 이후 교회와 마을의 생존의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14.최근 여러 조사를 보면 한국 교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갈수록 낮아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교회 성장도 정체되고 있거나 하향 추세이구요.목사님은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는 뭐라고 보시는지 궁금한데요?
예전엔 교회와 기독교의 이름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는데 이젠 교회나 기독교란 이름만 들어도 부정적으로 반응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이 어려워진 이 시기에 마을목회는 거의 유일한 돌파구라는 생각이 든다”(조성돈 교수)라는 뉴스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역사회를 섬기는 마을목회가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꿔놓고 있고, 추락하고 있는 교회 이미지가 복음 전파의 길까지 막고 있는 요즘, 마을목회가 위기를 타개할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 기후 돌봄과 마을돌봄은 생명 생태 시대를 여는 두 기둥 입니다!!
이를위해교회는 마을과 함께 생명돌봄센타가 되어 주거 먹거리 의료 일자리 에너지가
순환되는 마을의 마당 즉 플랫폼네트웍이되어 기후를 돌보고, 마을을 돌보는 생명과 돌봄이 풍성한 마을의 마당(플랫폼) 되지 않으면 이 추락세를 막을 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청년과 중년 들은 영끌 부동산 투기와 빚투 주식 투자에 몰입하다가 부동산이 폭락하며 길을 잃어 버리고 있습니다. 공동체가 붕괴된 오늘 이 시대의 청년들이 고립되어 있을뿐 아니라 나홀로 세대도 400만이라 하는 이 생명돌봄의 위기의 시대에 280조를 퍼 부었는대도 출산율이 0.75 입니다,
2. 문화인류학자 조한헤정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본래 인간은 자궁에서 있다가, 환대해 주는 가족과 마을이라는 '사회적 자궁'으로 나오는 존재였는데 이제 그 자궁이 사라진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저출생의 문제를 풀려면 우리 사회에 새롭게 생명을 잉태하고 품을 지역과 마을 단위의 사회적 자궁이 필요하고 그 사회적 자궁이 바로 돌봄 마을과 돌봄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3.이러한 긴급한 상황속에서 본격적인 마을 생명 돌봄 목회를 위해서는 우리 마을을 학습 문화 돌봄 생태계를 생명의 돌봄망으로 잇는 것일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 저성장,저출생,탈종교의 시대의 대안은 물질이 풍요로운 시대를 넘어 생명과 돌봄이 풍요로운
교회와 마을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저성장,저출생,탈종교의 근본 대안으로 지역과 마을 곳곳에 "돌봄교회와 돌봄마을“이라는 생명의 품"(사회적 자궁)을 형성하여 생명 잉태와 출산과양육의 상상력을 높일때인 것입니다.
16.최근, 탈성장 주의, 작은 교회를 지향하자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전도를 많이 해서 예수님을 알리고 교회를 성장시키자는 기존의 기독교 가치관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요 성장과 성숙의 균형, 어떻게 잡아가야 할까요? (작지만 가치있는 마을 교회의 강점과 가능성 )
가나안 성도 탈성장 주의의 등장이유는 산업물질 문명의 대량생산 대량소기 대량 폐기 사회의 붕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시말해 산업화의 대량 생산 소비 폐기가 인간과 자연을 극한으로 수탈하여 인간과 자연이 붕괴지경에 등장한 것이 바로 코로나 재난입니다, 이 코로나 재난중에 우리는 세계 최대의 자살공화국이 되었고 280조로도 출산율 0.75를 높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이것은 대량생산 소비 페기하느라 우리가 너무 피곤 소진 탈진되어 어떠한 방법으로도 가족과 공동체 피로감과 회피감을 극복할수 없는 지경이 되어 가나안 탈 공동체 탈교회 현상에 이른 것이다,
그러기에 해법은 다시 교회로 끌어 모으고 생산력을 높이자는 교회 성장운동이나 경제 성장운동식 물질의 생산력을 높이는 산업물질 문명의 방식이 아니라, 생명을 풍요롭게하고 돌봄을 풍요롭게하는 생명 생태적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 본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후 위기와 돌봄 위기의 시대의 교회와 마을이 나갈길은 ..
코로나 이후 우리 지구과 마을과 교회가 지속
가능하려면 물질적 풍요를 넘어 생명과 돌봄
이 풍요로운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1.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돌봄이 풍요로와야 하고,
2. 사람과 자연은 서로 공생하는
생태 문화가 풍요로와야 하고,
3. 교회와 마을을 지역과 마을과
지구촌을 생명이 풍요로운
마을 돌봄망과 생태망과 생명망을 짜는
교회와 마을과 지구촌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 cbs 방송에 나온 부분은 시간관계상 많은 부분이 편집되었고, 추후 원고에는 들어가지 못한 부분을 추가 수정한 부분이 있어 이 원고와 다른 부분이 있음을 알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