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 1;22-29) 부천 새롬교회 11월 19일 말씀 (2023)

그와 함께 춤을...

by 아름다운 마을 2023. 11. 19. 20:58

본문

728x90
반응형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 1;22-29)

 

https://youtu.be/Ae08Z2-l5zI?si=I3RF2W8vccdcTQoa

 

바울은 그동안 율법과 할례로 자기의를 주장하는 유대적 신앙과 투쟁하여 율법에서 해방된 신앙을 세우자 이번에는 이기적 개인의 욕망을 로마제국의 자유문화로 포장한신앙의 도전에 직면 하게됩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내내 율법이라는 기득권의 낡은 담을 쌓고 율법을 모르고 할례를 받지 않는 이방인들의 참여를 할레와 율법이라는 낡은 담을 쌓고 막으려는 이 위선적인 유대인들에게 심한 시달림을 받아왔습니다, 이렇게 낡은 율법을 철페시키자 이번에는 고린도 지역에서 헬라인들의 엄청난 도전이 시작됩니다, 이제 율법에서 자유함을얻은 헬라인이 난동에 가까운 이기적 욕망의 난동으로 공동체가 무너질것같은 위기를 경험 합니다. 부자들은 성만찬을 사유화 했습니다.어떤 이들은 성령의 은사를 사유화 해서 방언의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적 이익을 유지하기 파벌을 만들었습니다.고린도 교회공동체의 부자들이 교회를 어지럽힌 사건을 한번 살펴 봅시다

1.교회안에서 자신의 부와 명예를 자랑하기위한 (성만찬 ,고소) 사건과

2.자신들의 자유(여성의 머리 풀어 헤치고 방언하고, 성령의 은사를 자랑)를 과시하면서 3. 교회를 바울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로 분열되어 싸우는 공동체를 난장판 으로만들고 있는 헬라인의 방종적 신앙을 목격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고린도 교회는 가난한자 소수의 부자들이 함께 모였는데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소수의 재력과 학식이 있는 부자들이고 이들이 공동체에 와서 로마제국의 자유로 포장된 이기적 개인의 욕망이라는 잘못된 자유의 개념을 가지고 횡포를 부린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파벌과 분파가 생긴다는 것은 그들이 공동체를 사유화 하고 하나님의 일이 아니나 하나님의 공동체에서 자신을 위한 사적인 욕망을 추구 하였다는 것입니다.이것은 헬라 제국의 힘의 문화가 그대로 유입되어 자신의 부와 명예와 권위,자유 분방함을 자랑하면서 교회를 바을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로 분열되어 싸우게 만들 때 바울은 이 사적욕망을 제어하기위해 예수의 십자가의 신앙으로 맞서게 됩니다.

고린도교회 식사문제에서 드러나는 힘있는 로마 제국의 가진자문화

 

1세기 지중해 지역에서는 다수가 아니라(not many) 소수(a few)는 돈을 가지고 있고 교육을 잘 받았으며 영향력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성도들 간에 발생하는 갈등 중 많은 경우가 예배 장소와 식사로 인한 갈등이었습니다 당시 로마문화에서는 가까운 소수의 친구들에게 좋은 쟁반이 제공되고,그에 비해 나머지 사람들의 식탁에는 값싸고 천한그릇들이 놓여집니다. 초청인은 조그만한와인 잔들에 세가지 다른 종류의 와인을 부어 맛봅니다. 그러나 손님들이 선택할 여지는 없다. 먼저 주인이 맛보고 다음은신분과 친분의 순서에 따라 그의 친구들이 맛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서도 이러한 로마 제국의 문화가 그대로 재연된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서 가난한 자가 도착하기 전에 부자들이 먼져 음식 나누어먹고 취해 있음으로 가난한자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로 인한 고린도 교회 공동체 내에는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식탁이라는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화충돌 :우상숭배에 바친 음식 사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어도 좋은가 하는 문제였습니다우상제물을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 이들은 자유의 원리를 내 세우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복음은 곧 자유를 의미하였기 때문에 우상제물에 관한 그들의 생각도 자유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반대로 우상제물을 먹는 것에 대해 매우 죄악시 하는 이들과 우상의 영향력을 두려워하여 금하여야 한다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윽고 고린도교회는에베소에 머물고있는 바울에게 이 문제를 문의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바울의 해답은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전 1;13)이었습니다. 이것이 헬라의 지혜와 그리스도인의 지혜가 다른 십자가의 지혜인 것입니다.

 

자유의 적은 나만을 위한 자유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자유의 개념은 개인이 자유롭게 돈을 벌고 지킬 권리가 침해받지않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이렇게 개인적 자유만을 드높히는사람들은 개인이 함께 연대하여 주권을 행사할 자유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개인적 자유만을 우선시 여기는 사람들은 함께 연대하여 주권을 행사할 자유를 자유의 적으로 여기고, 돈을 자유럽게 벌고 사유 재산을 지킬 개인 자유를 주장한다. 그러나 공적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자유의 적은 함께 연대하여 주권을 행사할 자유이고 .” 자유의 적은 나만을위한 자유’이.

5·18 민중항쟁 때 도청에 남은 이들에게서 실마리를 찾는다. 그들은 소총 한 자루, 세 발의 탄환으로 자신의 생명을, 그리고 도청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자유가 나만을 위한 자유라고 여겼다면 그들은 도청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자유가 너도 위하는 자유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들은 도청에 남았다. 전남대 박구용 교수는 이 자유를  헤겔의 말을 빌려 표현한다. “최고의 자유는 곧 나만을위한모든 것을 단념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래서 바울은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하며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하고 포기한 것 입니다.

코로나이후, 소그룹 활동, 성경공부,전도, 지역사회 봉사 모두 60% 안팎에 머물러 있고, 새 신자 등록은 50% 수준으로 코로나 사태 이후에 새 신자가 많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런데 가나안 성도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파악됐다.•그 수는 226만 명으로 추정된다 개신교 신자라고 말하는 사람들 10명 중에 3명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이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비율은 세 배 가량, 그 수는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기존에 생각하던 좋은 신앙, 독실한 신자에 대한 생각도 크게 바뀔 것이다.신앙인의 새로운 전형은 그것 건물중심의 죽은 신앙 에서 마을과 생태계(생명망) 중심의 살아있는 생명 신앙일 것이다.이에 따라 한 교회에 정착하지 않고 이 교회, 저 교회 떠돌아다니는 이른바 플로팅크리스천이새로운 신앙 형태로 이야기되고 있다. 주일 예배 외에 다른 활동에는 다.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봉사를 하거나 직분을 받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한다. 주일 예배조차도 온라인으로 드리는 경우가 많다.한국교회 리빌딩이라는 주제로 강의한 조성돈교수는 개인주의화된 성도들의 특징을 최근의 트렌드로 꼽았다. 가장 먼저는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이전과 같이 끈끈이 이어지던 공동체성은 없어졌다라며모임에 참석하고 시간과 물질도 아낌없이 교회를 드렸던 헌신의 동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라는것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교회에서 점심식사를 다시 재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61.7%만 점심 식사를 재개하는데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특히 교인이 적을수록 긍정적인 대답은 적었다.

오늘 바울의 가르침을 우리의 대면 비대면 예배의 문제에 적용해 봅시다!

우리가 코로나 재난기와 같은 모이는 것이 질병을 감염 시키는 악영향과 문제를 일으킬때 대면 예배만이 예배라고 고집하는 것은 분명히 율법적 주장임으로 분명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러한 때는 비대면예배도 예배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히 정당한 것 입니다.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전혀 반대입니다. 지금도 물론 비대면예배도 예배입니다, 그러나 지금은코로나 위기가 지나갔기에, 우리는 바울 사도의 이야기 처럼교회의 덕을 위해서는 우리의 자유룰 제한 할줄 알아야 합니다,비대면 예배도 예배이지만 이제 우리는 바울사도의 가르침처럼 교회의 덕을 위하여 대면이 중심이 되고 가끔 불가피하게 거리상이나 몸이 불편하거나 할때만 비대면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약한 지체를 시험에 들게 하지 않은 복음에 합당한 신앙적 태도일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고린도 교회의 일부 교인들이 우상숭배한 고기를 먹을 자유가 있다고 우기면서 공동체의 약한 지체의 양심에 해악을 끼치고 공동체의 덕이 되지 못하는 고린도 교회의 헬라인처럼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남용하는 것이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헬라인의 태도에 대해 바울의 대답은 나는 공동체안의 약한 지체를 위해 나의 자유를 포기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 신앙의 방식으로 바울을 고린도 교회의 분열을 치유한 것입니다,

바울은 힘없는 다수의 수호자요 대변인으로서, 세속적인

영향력과 힘으로 다수를 누르고 다수 위에 군림하여 그들을 좌지우지 하려는 힘있는 소수와 끊임없이 갈등하며 투쟁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소수의 부자들은 오직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세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횡포를 일삼았습니다. 이런 정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바울은 그들의 세속적인 행동과 태도를 책망하면서 젖 먹는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을 버리라고 경고하였다. (고전 3:1-3). 바울은 그들의 명예-치욕 가치관에 입각한 그들의 자유가 약한 자들을 실족시킬수있고 거침없는 행동이 약한 자들을 죄짓게 할수 있다고 책망하였고, 그들의 거침없는 권리행사와 자유분방한 태도에 바울은 제동을 걸었습니다.(고전 8:9-10). 지식은 교만하게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8;1-3)고 권면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엑수시아”(ἐξουσία, 권리 혹은 권위)라는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한 이유는 권세자들의 유혹을 넘어서기 위한 권리 포기 선언 이었다.!!

바울 시대의 헬라-로마 사회는 사회적 우월자와 열등자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졌고 이 상황에서 강한지들의 횡포를 막기위해 십자가의 지혜를 사용합니다. 그 핵심은 바울은 교회의 유익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엑수시아즉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고전 9:12, 15, 19-23; 10:23-24, 33). 더 나아가 바울은, 기꺼이 모든 교인들을 위해 스스로 종이 되겠다고 선포 합니다(고전 9:19).

이처럼 바울은, 고린도교회내의 힘 있는 소수가 세속적 권위와 영향력을 교회 내에서 행사하려는 것을 좌절시키려 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이 로마제국의 세속적 가치관과 구별된 그리스도적인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였던 것입니다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