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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건너편으로 가는 마을공동체의 새로운 항해 !!" (막 7:24-30) =부천새롬교회 2025 4.6일 주일말씀 =

그와 함께 춤을...

by 아름다운 마을 2025. 4. 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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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건너편으로 가는 마을공동체의 새로운 항해 !!" ( 마가복음 7:24-30)

https://youtu.be/c8ZmBTRLy2w?si=-mJpadV3NWXN9fN8

 

예수님은 마을 선교를 하던 중 종종 갈릴리 호수길을 횡단하여 이방 땅으로 건너가는 횡단 여행을감행하셨습니다(막 4; 35-39). 갈릴리의호수 저편은 저 이방인이 살고있는 거라사, 그리고 두로,시돈 등 이방 땅으로 친숙한 유대인들이 사는 곳이 아닌바로 낯선 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제 그리로 가자고 재촉하고 계신 것이다. 이처럼 바다를 건너 이방 땅으로 넘어갈 때 거기에는 반드시 풍랑을 만날 것 입니다.성서는 그 풍랑이 배가 뒤집어질 정도라고 했습니다.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공포와 당황함을 주는 이러한 횡단 여행을 시도하셨을까?

가버나움과이방땅을 잇는 예수운동의 아름다운 협력자들(막5:25-41)

 

이방 항해 여행중 풍파를 맞이하는 예수 제자들의 모습

예수님과의 항해중 제자들은 풍파를 맞이하자 .우리의 죽게 된것을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4;38) 유령이다.(6;49) 떡이 없음이로다(8;16)하는 두려움과 공포를 표현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항해 여행중 예수님이 옆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공포에 찌들어 우리가 다 죽게되었다 유령이다 하고 공포심에 떨고 있으며 심지어 제자들은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라고 하기 까지 합니다.[8:16~17]

 

 

2025 4월 4일 대통령이 탄핵되었습니다.

2024 123일 선포된 계엄 이후  거의 3달 반만 입니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움직이는 지배 엘리트들의 무능함 비겁함 그리고 부패함의 끝을 보았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엘리트 지도자들과 극우화 되는 한국 기독교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한국 사회의 극우 지지자들은 대부분 고립되어 있고, 그 고립과 외로움이 "불평, "불만으로 연결되고 그것이 선동되면서 극우가 되는 것입니다.극우적 삶은 대부분 강자의 삶에 성찰이 없는 세뇌와 습관화에서 시작되고 이러한 성찰이 없는 세뇌와 습관화가 강자와 동일화 되고 신념화 되면서 약자들을 향한 폭력화가 정당화 되면서 극우 확신범이 된다고 합니다

이제 60일후새 대통령 선거가 있고, 우리 사회는 전혀 새로운 전환의 단계로 들어갈 것 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데카폴리스 이방 항해 이야기에 나오는 거라사청년과 하혈병걸린여인과 수루보이게여인 이야기를 말콤글래드웰은 티핑포인트의 설계자들이라는 책에서 한 사회가 임계점에 이르면 오버 스토리(overstory)라는 새로운 이야기와 슈퍼 전파자가등장한다는 이야기를 응용 해석하여 탄핵이후 전혀 새로운 전환의 단계로 들어가는 우리 사회 가운데 우리 교회와 마을이 감당해야할하나님 나라의은혜로운 슈퍼 전달자의 역할에 대해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져 보려 합니다.

 

1.거라사청년이야 말로 오늘날 극우와 같습니다                                                    .무덤에서 소리지르며 자신의 몸에 자해를 가하는 거라사 광인의 이야기는 불만 불평 으로인한 분노 그리고 선동에 휩싸여 쉽게 폭력화되는오늘의 극우 청년을 닮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을 어떻게 치유하십니끼?군대 귀신 레기온이라는 말을 정확히 쓰십니다.아무도 이청년의불평 불만 분노에 제대로 대답하며, 원인을 분석하고 제대로된 해답을 주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삶에 성찰이 없이 세뇌와 습관화 신념화되면 극우 확신범이 됩니다.

거라사청년의  폭력과 한국 2030 남성들의  극우화 현상은 성찰이 없는 세뇌와  스스로  강자 동일시 되면서 약자들을 차별 배제 협오하면서 시작된 것입니다.특히  한국 개신교가 극우의 얼굴이 되었다는 것은 개신교가 이러한 양극화되고 분노에 찬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실력이 없이 그져 마취제를 놓고 가쨔뉴스로 그들의 불폄불만 분노를 선동하고 증폭하는 기폭제의 역활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때에 예수님은 이 거라사 광인의 광증의 핵심원인으로 로마 식민시대의  군대 귀신으로 보고 그 군대귀신  레기온을 몰아낸 것입니다. 이처럼 문제의 핵심을 보고 치유할때 거라사 광인은 치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둘째 하혈병걸인 여인의 치유 이야기도 마찬 가지 입니다.

 14년간 질병이 걸렸는데 아무도 치유하지 못했을 때 이 여인은 예수를 발견하고 예수에게로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회당장의 딸을 고치러 가는 길 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방해가  있었지만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에수님은 이 여인의 새치기와 접촉이 유대 정결법을 어기는 것을 알았지만 그 접촉을 허락할 때 여인의 병은 낫습니다.        이 하혈병 걸린 여인의 치유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오늘 많은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은 그 삶속에서 늘 현타와 같은 삶의 충격과  그  충격으로 말이암아 실의에 빠져 살고자하는 의욕을 잃고, 도져히 벗어날수 없는 체념과 숙명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 숙명과 체념의 중독의 정체를 밝혀야 합니다. 하혈병 걸린 여인을 좌절과 절망에 빠뜨리는 핵심적 원인은 , 그것은 유대교의 정결법이라는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하고 혐오하는 악법이었습니다.여인이 피를 흘리는 것이 불경하다고 여겨 그 여인은 아무에게도 다가가기 못하고 사람과 접촉하는것 자체가 불법이 되는 상황에서 이 여인은 사회적으로 완전이 고립된 상황이었지만 이 여인은 에수님께로 나가고 그 옷깃을 만졌을때

다시 말해 이 정결법이라는 유대의 악법 고리를 넘어서고 그것에 대해 예수님이 수용하고 허락하실때 이 여인의 사회적 고립은 치유될수 있었던 것 입니다. 오늘날 이 여인과 같은 가난하고 병든자들의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강자동일시를 강요하며 그들의  불평 불만 분노를 오히려 선동하여 폭력화 하려는 극우적인 모든 시도들은 오늘날 종교들이 바로 예수님 당시의  유대 정결법과 같은 낡은 율법화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오늘 하별병 걸린 여인처럼 이 낡은 신앙의 언어와 체계를 넘어 새로운 예수신앙으로 나와 합니다, 신앙따로 삶이 따로노는 문자 근본주의 이분법적 낡은 신앙에서 예수 신앙으로 나와야 합니다.

세 번째 수루보니개 여인은 이방인입니다. 유대 지역 사람이 아니고 유대 마을 사람이 아닙니다.이 유대교 너머에 이방 여인이 왔을때 예수님도 쉽게 그 여인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당신 제자들은 생명의 빵인 예수님이 옆에 계시고 있는데도 빵이 없다고 수근대고 있었던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여인은 그 부스러기라도 주시면 내 아이가 낫겠다고 이야기 합니다.우리는 이 수루보니게여인에게서 2030의 여성들의 모습을 발견합니다.왜 오늘날 2030 여성들에게서  극우화된2030 남성들과 왜 정반대의 모습이 왜 나옵니까?

이 이야기는 우리의 신앙의 이야기와 함께 마을의 이야기에도 적용이 됩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닫힌 운동이 아니라 열린 운동입이다. 수루보니게 여인과 같은, 이방인들도 참여할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마을도 닫힌 공간이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마을이라는 것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닙니다.마을이란 열린 공간이고, 소통의 공간이고 생명의 공간이고 하나의 생태계이고, 소통망이고 생명망 입니다.

 1.마을은 단지 거주하는 것 이상 입니다. 마을을 둘러싼 관계망과 소통만 생명망 전체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왜 귀농하는 사람들이 농촌에 정착을 하지 못합니까? 농촌의 패쇄성과 자폐성 때문입니다. 이 마을에 오래 살았다고 자꾸 기득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온갖 기득권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2.교회와 마을이란 공동체란 열린 공간이고, 소통의 공간이고 생명의 공간이고 하나의 생태계이고, 소통망이고생명망으로 마을과 교회와 가정과 도시 그 사이공간과 경계선을 넘나 들며 사람들이 오가며 새로운 생각과 흐름이 소통망으로 생명망으로 쨔져가는일종의 마당극 형식의 운동이 일어나는 곳이 되어야 하는 것 입니다.

 

3.이러한 마을의 경계선과 변방과 사이공간에서 마을에서 쫓겨나 마당극을 펼쳐본 일이 없는 바리사이와 서기관들은 늘 우리동네 마을 사랍들이아니 잖아, 저들은 마을에서 쫓겨난 창녀와 세리들 이잖다!! 하며 마을의 새로운 호흡과 움직임과 역동성의 호흡을 끊어 보려고 노력하지만 새로운 성령의 바람과 생명의 바람은 오히려 도도히 흐를수뿐이 없는 것입니다. 데카폴리는 항해 도중 만난 거라사 청년, 하혈병 걸린 여인 , 수루보니게 여인이 예수운동의 지역 협력자로 참여할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의 마을 운동이 이웃과 지역사회와 마을에 활짝 열려 누구라도 그 마당에 참여할수 있었던 , 마을의 마당극 이었기 때문 입니다.  그럼으로  예수 운동은 마을 마당극인 것 입니다.

다같이 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인도 : 예수님은 끊임없이 헤롯이나 바리새인처럼 강자가 되려는 유혹에 시달리는 제자들의 상황을 아시고 밖으로 새로운 땅으로 모험을 떠나는 일을 끊임없이 일으키셔서, 공동체가 정체되거나 부패되지 않도록 제자공동체를 역동화 시키셨습니다.

회중: 또한 거라사광인, 하혈병여인, 수루보니게여인 처럼 외부인들과도적극적 소통의 문을 열어 내부인과 외부인을 적극소통시키면서밖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영입환대하셔서 새로운 에너지를 순환시키셨던 것입니다.

인도 : : 우리는 예수와 함께 길을 떠나고 항해의 훈련을 마다하지 않는 제자 공동체들은 늘 낯선 곳으로 여행길을 떠나는 자기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을 끊임없이 되풀이 하여 탄핵

이후 하나님 나라의 슈퍼 전도자들이 되길 원합니다.

다같이 :믿음의 힘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우리가 짊어져야할우리의 십자가를 담대히 지는,하나님 나라의 슈퍼전도자가 되길 원하오니우리와 함께 하시고,우리에게 힘을 주시옵소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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