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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마을 이야기에서 고난(항해)의 서사로!! (막4;35-39)=3월3일 부천 주일 새롬 교회 말씀 =

그와 함께 춤을...

by 아름다운 마을 2024. 3. 1.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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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qTaMLUjMG8?si=Vy-XXsmK3B46QsXj

 

신나는 마을 이야기에서 고난(항해)의 서사로!! (4;35-39)

=33일 부천 주일 새롬 교회 말씀 =

 

저 건너편으로 건너가자!”며 예수님의 이방선교의 항해가 시작된다.

예수님은 마을에서 쫓겨나신후갈릴리 호수길을 횡단하여 이방 땅으로 건너가는 횡단 여행을 감행하셨다(4;35-39.마을에서 쫓겨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저 건너편으로 건너가자!”며 예수님의 이방선교의 항해가 시작된다.예수님과의항해중제자들은 풍파를 맞이하자

.우리가 다 죽게 되었다! •❷ 유령이다. 빵이 없다고 두려움과 공포를 표현한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항해하면서 낯선 항해를 통해 우리가 경험한 공포와 두려움을 이야기 해 보자!

바리새와 헤롯의 누룩에 오염되어가는 제자들과

항해중 만난 지역 협력자들

 

1. “고립된 무덤가 광인에서 테카폴리스의전도자로!”

예수님은 거라사에서 무덤들 사이에 고립되어 사는 광인처럼 격리되어 있는 사람을 고쳐주시자, 거라사 광인이 "예수님! 저도 이제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싶어요!"라고 간청 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이 따라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이처럼 예수님이 "네 사명은 하나님께서 네게 행하신 큰일을 말하는 것이다!" 하실 때 그 거라사의 광인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데가볼리 전 지역에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전도자가 된다. 거라사 이야기는 • 고립에서 연대를 통해 복음전파자(제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2. 예수의 옷깃과 접촉하는데 성공한 하혈병걸린 여인

이 여인의 하혈병의 피가 마르는 치유는 (그녀가 그의 옷을) 만졌다라는이 마지막 동사에 이르러서야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다시 말해 이 접촉만짐이야말로 기적의 시작이며 치유의 결정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치유 기적이야기들 중 절대다수는 신체적 접촉(=만짐)을 통해서 발생한다.예수님이 이 여인을 고치려면 이 여인과 신체적 접촉을 해야하고만짐을 허락해야 하는데, 그것을 허락하다 보면 예수님은 정결례를 어기는 범법자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십자가의 고난이 시작되는 것이다.

 

3 빵 부스러기로 데카폴리스 선교를연 수로보니게여인

이 여인만이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알고, 개라는 모욕을 받으면서 까지 그 생명의 떡의 부스러기라도 달라하여, 그 생명의 떡 부스러기로 자신의 자녀를 고친 여인이고, 이 여인만이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알아차린 귀가 열렸고, 입이 열린 여인 이었다.이제 에수님이생명의 떡임을 고백하면서 바다위를 뱅뱅 맴돌며 전진하지 못하고 있던 이 이방띵항해의 길을 활짝 열고, 유대땅을넘어 이방땅으로복음의 교두보를 연결시키고 확장시키는, 에수님의생명의 떡 운동의 아름다운 동역자가 된 여성인 것이다.

 

 

최근 시대예보라는 책에서 오늘의 시대가 핵가정에 이어 지금 핵 개인이 등장하고 있다는 시대예보가 있습니다. 그런데 핵개인이되려면 두 가지가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는 자립, 둘째는 고유성입니다 핵개인은 삶의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자기 만의 고유한 세계를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핵개인들은 짧고 자극적인 이야기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중독 상태에 빠지기 쉬워 자립과 고유성을 추구하는 핵개인으로 우뚝 서길 원하지만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지 못하는 파편적 개인이 되어의미 없이 이슈에서 이슈로 이동하며 상품의 소비자로 전락하거나 번개탄처럼 점화력과 휘발성이 강한 가짜뉴스에 가짜뉴스에휘둘리는 서사의 위기빠지기 쉽다는 것 입니다.

 

 

핵개인시대의 서사의 위기와 서사의 허무성 - (한병철)

 

핵개인시대의 서사의 위기는 삶과 이야기가 산산이 와해된다는 데서 발발한다고 합니다, 내면의 공허가 셀카중독으로 이어져, 핵개인시대에는 이야기(스토리텔링)은 넘쳐도 자기 이야기가 실종되어 있다고 합니다. 나에게는 안정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의미 제공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제대로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게시하고 공유하고 링크를 걸지만 그것은 텅 빈 자기의 복제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을공동체와 같은 함께 나눌 공동체가 없는 과도한 셀카적개인 노출은 텅빈 공허한 허무한 소통에 길을 내주고, 이러한 핵개인들의 자기애적(나르시즘)인 짧고 자극적인 이야기의 반복적으로 노출은 결국 공허한 허무를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자립과 고유성을 추구하는 핵개인으로 우뚝 서길 원하지만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지 못하고 상품의 소비자로 전락하거나 번개탄처럼 점화력과 휘발성이 강한 가짜뉴스에 휘둘리거나, 결국은 파편적 개인이 되어 미 없이 이슈에서 이슈로 이동하며 이야기 가짜뉴스에 휘둘리는 서사의 위기빠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전후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살피면서 얻은 서사의 의미

저도 이명박 전후의 부자되세요와 코로나 재난 전후로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점들은 처음에는 공동체와 같이 모든 것을 함께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1.말섞기싫어 2.나랑 안맞는것 같아 하는 허무주의적 의사소통을 자주 듣습니다. 3. 남녀평등의 좋은 서사인 페미니즘이 정치권에 들어가면서 부터 젊은 여성 정치인들의 일방적 폭력적 일베식 소통으로 스스로 페미니즘 서사 붕괴가 4 결국 소통 자체를 붕괴 시키고 있는데 이는 서구 선진담론의 사사가 자기애(나르시즘)에 기초한 허무주의를 넘어서지 못한데 기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당극을 연구하시는 조동일 교수님으로 서구 제국의 영문학의 대표 서사가 바로 노인과 바다의 항애 이야기와 백경 모비딕의 항해 이야기인데 이 제국의 문화가 차별적 개인주의를 극복하지 못하여 인생의 긍국적 가치를 창조하지 못하고 결국 허무주의적 자실로 끝을 맺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마당극에 나타나는 차별이 아니라 대등 그리고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 입각한 대동적 신명이 지금 한류의 물결로 일어나고 있고, 이러한 신명의 공동체적 마당에 결국 제국의 허무주의를 극복할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사순절과 부활절이라는 고난의 서사를 거치면서 나와 공동체의 정체성과 가치를 드러내는 형용사 (작지만 영향력 있는 교회생태계에 대한 상상력) 가 있는가?

따라서 단순히 조직과 집단과 다른 고유한 서사가 있는 개인과교회 공동체와 마을이 되려면 그 공동체가 어떻한공동체의 가치를 알아차리고 그 가치(그리스도 공동체에서는 십자가와 부활 같은) 궁극에 가치에 도전하여 생고생(십자가)을 져야 합니다. 이러한 공동체 고유의 가치를 실현시키고자 얼마나 치열하게 생고생을 했는지에 따라 서사의 힘이 달라집니다.

나의 형용사, 가치, 브랜드 형성의 과정

1.내가 하고 싶은 것 고유가치를 가지고 살아왔는가?

2.“저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는 내가 겪는 내 인생의 역경과 고난 가운데 나의 정체성과 고유가치가 하나의 형용사로 요약되고 있는가?

3.사순절과 부활절을 묵상하면서 앞으로 전개될 나와 우리교회의

4.서사는 무엇이 되어야 하고 어디서 부터다시 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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