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사에 축사에 격려사까지 요란한 행사치고 지루하지 않은 행사가 없다. 알맹이 없는 회의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포럼이나 세미나, 각종 설명회도 대부분 끝나고 나서 뒷맛이 개운치 못할 때가 많다. 특히 무슨 ‘학회’하면 일단 따분할 것 같은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개봉관도 박람회장도 아닌 일반 콘퍼런스(학회) 행사장에 먼저 들어가기 위해 시작 전부터 수백 명이 줄을 서고, 매 세션마다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연사의 강연이 끝나면 벅찬 감동에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치는 콘퍼런스가 있을까.
미국 전 부통령 앨 고어나 영화배우 윌 스미스 같은 유명인사가 옆자리에 앉아 똑같은 청중의 자격으로 함께 경청하고 있다면 어떨까. 바로 지금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TED’라는 콘퍼런스가 그것이다. TED는 1984년 정보기술(IT) 전문가 리처드 솔 위먼 등이 창설한 콘퍼런스로 Technology(기술), Entertainment(엔터테인먼트), Design(디자인)의 머리글자를 땄다. 전 세계 진보적 지성인들이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 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모임이다.
초기에는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일반학회의 형태로 운영되다가 2001년 새플링 재단의 억만장자 크리스 앤더슨에게 인수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게 됐다. 이른바 `Ideas Worth Spreading(확산할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이란 슬로건 아래 콘퍼런스의 모든 콘텐츠를 완전 개방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그 결과, 현재 TED토크는 13개 언어로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번역되고, 85개국에서 1500만명이 보았으며, 총 1억 번의 시청이 일어났다고 한다.
세상에 확산시킬 가치가 있는 창조적 아이디어에 목마라 있던 TED 연사들과 참석자들이 하나가 되는 감동의 순간, 소위 ‘TED모멘트(Momentsㆍ테드의 순간)’가 일어나게 된다. 이런 울림은 바로 “지성은 생각으로서만이 아닌 행동으로서 세상을 움직인다.”고 하는 믿음으로 발전되어 TED 토크를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TED는 이제 심리학, 철학, 과학, 음악, 미술, 운동, 종교, 교육까지 모든 분야를 넘나들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사람들이 TED에 열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뭐니 뭐니 해도 세계 핵심 지성인들이 벌이는 ‘세계지식인의 유희’이며 ‘창조의 불꽃놀이’이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빌 그레이엄 목사 등이 강연을 하기도 했고,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가 TED를 통해 처음 대중에게 알려지기도 했다. 올해 역시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인 빌 게이츠, 영화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 영국 보수당 당수 데이비드 캐머런,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거미 전문가 셰릴 하야시, 요리사 댄 바버까지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사 50여명이 강연을 했다.
‘TED콘퍼런스 2010’의 큐레이터인 크리스 앤더슨은 개막선언에서 “삶이란 자신보다 중요하고 거대한 아이디어에 대해 고민할 때 가치가 있다.”로 서두를 꺼냈다.
TED에 빠지게 되는 매력중의 하나는 `18분의 매직’이라고 부르는 강연 시간의 제한이다.
연설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역으로 카운트다운 되는 시간을 보며 연사는 단 18분 안에 모든 것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에 어떤 연설보다도 긴장된 가운데 감동과 충격적인 ‘창조적 드라마’를 연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TED는 사람들로 하여금 `실천하는 지성’이 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는 것이다.
올해 콘퍼런스 주제는 ‘세상에 지금 필요한 것(What the World Needs Now)’은 무엇인가다.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TED의 슬로건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Ideas Worth Spreading(확산할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는 무엇이든 좋다. 할 수만 있다면 세계빙상경기의 역사를 새롭게 써가고 있는 한국선수들에게 ‘0.1초’를 줄이는 TED를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