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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의 소통혁명의 매체 예수그리스도

디지탈 노마드

by 아름다운 마을 2010. 5. 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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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의 소통혁명의 매체 예수그리스도

(고린도전서 9:19-27)

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오늘 본문을 오늘 이시대에 어떻게 읽을까?

저는 오늘 본문에서 당시 로마사회에서 소통혁명을 주도한 사도 바울을 봅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당시 로마사회의 고린도에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유대인과 헬라인사이에

소통혁명에 온힘을 기울이며 분투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누구인가? 오늘날 친미반공의 수구보수 사람들 처럼 기득권적 율법의 테두리에 살며 마음에 안드는 사람은 율법을 모르는 사람으로 배제하는 수구 꼴통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헬라인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로마의 식민지하에서 로마의 시민이되고 세속적 출세 성공을 추구하는 세속적 성공의 욕망이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이 유대인과 로마인 사이에서 사도 바울은 이들을 어떻게 소통하였는가

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을 대할때는 그들과 소통을 위해 바울은 율법아래 있는 사람이 아닌 율법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지만 율법아래 있는 사람처럼 소통햇고, 율법을 모르는 헬라인을 대할때는 바울은 그리스도의 율법아래 있는 자이지만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율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야말로 이 유대인과 헬라인이라는 두 대륙의 두 세게관을 소통시킬수 있는 새로운 혁명적 소통의 매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에서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와 부활의 지혜를 전면에 내세우며 새로운 소통을 시도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이러한 소통혁명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둘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로마시대가 오늘의 시대와 흡사한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오늘날도 전 세계가 도시화의 길을 걷고 있는것 처럼 당시 로마제국도 도시중심의 문화 이었습니다,

둘째, 당시 로마주변의 사회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지속되어 소비문화가 발전했습니다. 오늘날은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 한 아메리카의 평화(Pax Americana)가 이루어 졌듯이 바울당시 로마제국은 힘을 바탕으로 한 로마의 평화(Pax Romana)에 비하여 이루어지는 시기이었습니다.

셋째, 오늘날이 미국문화와 영어가 지배하는 세상이듯이 로마 당시에는 헬라어와 스토아 철학이 지배하였습니다. 이처럼 로마라는 강대국의 문화와 언어가 세상을 지배하던 사회였습니다.

넷째, 당시도 오늘날 처럼 국제 여행과 문화교류가 활발했습니다.

지금의 세계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지구촌이라 할 만큼 소통혁명의 시대이듯 바울의 시대도 로마를 중심으로 국제교류가 활발한 시대인데 사도바울은 당시 시대의 소통의 새로운 매체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소통혁명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

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나는 율법을 아는 유대인에게는 율법이 있는것 처럼 율법을 모르는 헬라인에게는 율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소통하며 그리스도안에서 얻은

나의 자유를 마치 종처럼 헌신하며 소통에 헌신을 다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기독시민운동의 실무자 수련회에 우연히 참석하게 되고 깜짝 놀랐습니다,

강사진이 전부 소셜네트웍을 하는 강사로 바꾸이었다는 것입니다,

집중적으로 조명된것은 소셜웹과 소셜네트웍 서비스 이었는데 미래시대는

이제 한개인이 사회적 네트웍을 통해 사회적 미디어를 만들고 사회적 소통을 할수 있는 어마 어마한 힘을 가질수 있는 시대에 이르렸기에 이러한 새로운 도구를 의미있게 사용할수 있다면 한개인의 창조성이 시민사회를 크게 바꿀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제 ngo의 조직이 아니라 ngn의 네트웍과 플랫홈이 중요한 시대라는 것이다,

주로 구글 트위터 소셜웝을 다루는 젊은이들 이야기이지만 이 사회적 네트웍과 소통혁명을 다루지 않고서는 아무런 말도 할수 없겠구나하는 소통혁명을 현장을 온몸으로 느낄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우리사회에서 재미있는 논쟁이 하나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왜 우리나라가 아이폰을 만들지 못하는가입니다,

왜 삼성은 애플이 만드는 아이폰을 만들지 못하는 가 입니다,

우리가 이런 거 왜 못 만드냐'는 질문은 사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

왜 애플같은 회사가 일본에서는 태어날 수 없었느냐는 것이다.

그 쟁쟁했던 소니, 도코모, 토요타의 일본에 왜 아이폰을 만들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삼성은 아이폼을 못만들어내는가?

흥미롭게도,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주목할만한 답변마저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나왔습니다.

2008년 2월 25일자 <뉴스위크>가 '애플이 일제가 아닌 이유'를 설득력 있게 분석한 것이다. 크리스찬 캐릴 기자는 "창의력의 빈곤은 일본의 독특한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수직통합된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위계적 경제환경에서는 융통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지난 1월,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아이패드'를 선보인 날이었다.

그는 애플 사의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대형 스크린으로 표지판 사진을 보여주었다.

교차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내판이었지만, '길 이름'이 독특했다.

서로 엇갈린 두 개의 표지판에는 '인문학(Liberal Arts)'과 '기술(Technology)'이라고 쓰여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의미를 설명했다.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입니다. 애플은 언제나 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 존재해 왔지요."


결국 미국의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만든것은 창의력이고 이 창의력을 키울려면 인문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지역과 규모를 막론하고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대학의 공통점이 있다.

하나 같이 뛰어난 인문학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우 여러분 소통혁명의 소셜 웹 시대에 사회의 주도권은 조직에서 개인으로 넘어옵니다,

지금은 대량생산 ,대량소비하는 산업화 시대의 대기업의 조직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이제 사람들은 유튜브·페이스북·트위터와 개인 블로그 등을 돌아다니며, 각자의 생각과 감성을 ;참여; 자율; 개방의 정신으로 자유롭게 표출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합니다.


이제 트위터를 가진 개인이 방송국보다 더 빠르게 현장을 취재하는 개인이 기자이고 언론이고 방송국인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최근 4대강 문제를 가지고 강은 살아있다는 책을 쓰신 최병성 목사님이라은 분은 영향력 있는 시민 운동을 위해 블로그를 사용하십니다.

교회도 없고 교인도 없는 최 목사가 쓴 기사를 보는 사람은 평균 1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지금 블러그를 통해 훌륭한 예배를 드리고  목회를 하고 계신것 입니다,

이런 개방형 집단의 힘은 결국 개개인의 힘에서 나오게 되며, 각 개인이 역량을 강화하고 창의적인 혁신을 많이 일으키는 집단이 훨씬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 미래의 문제는 결국 개인의 상상력과 창조성을 어떻게 끌어내느냐에 달린것 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대담한 상상력이다.

스티브잡스는 이 시대의 청소년들에게 대담한 상상력을 가지라고 주문한다.

특히 창의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인문학적인 광범위한 지식과 감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 창조성과 상상력이 바로 인문학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최근 현상이 두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산업화 사회가 지고 새로운 사회가 도래하는데 두가지 측면에서 도래하는것 같습니다,

하나는 소셜내트웍을 중심으로하는 소통혁명이 일어나고 있고

다른 하나는 돌봄노동을 중심으로하는 마을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이 둘이 만나면서 우리는 새로운 기대를 가져 봅니다,

인터넷은 수만년동안 인류가 지녔던 네트워크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휭적인 교류를 하게 되었고 그동안 인류사에 없었던 새로운 경향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나와 공동체 그리고 지역과 세계가 횡적 소통혁명을 통해 새롭게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리눅스, 위키피디아, 플리커, 앱스토어, 트위터, 페이스북의 성공에서 보듯,

뉴미디어 시대의 소통혁명 시대에서는 독점과 경쟁보다는 공유/ 개방/나눔/배려가 새로운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산업화시대는 무한경쟁의 시대였다면 소통혁명과 마을혁명이 만나면서 이제는 지역과 세계 그리고 개인과 사회를 서로 긴밀히 연결하는 무한 협력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협력에 기반한 미래의 공동체 경제를 신사회주의(New Socialism)s;라 부른다고 합니다..


소셜네트웍는 개인과 공동체의 무한협력의 시대를 가능케 하고 있는것 입니다.

에베소 2장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사도바울이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유대인과 헬라인을 유대들에게는 율법이 있는 사람처럼 헬라인들에게는 율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며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십자가로 원수된 것을 소멸하게하시고 화평케 하셨다는 새로운 우주적 소통혁명으로 소통을 시켜내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제 새로운 소통혁명시대에 세상을 소통케하는 소통혁명이 도구가 되어 담대히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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