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꿈을 꾸면..
마을을 만들다, 지역사회의 문을 두드리다 – 부천 새롬교회
아름다운 마을
2016. 2. 2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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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만들다, 지역사회의 문을 두드리다 2
글/ 김민경, 사진/ 최창식, 사진 제공/ 새롬교회
– 부천 새롬교회
‘마을공동체’라는 단어가 생소해졌다. 개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며 형성되는 ‘네트워크’라는 말은 익숙해도 상부상조하는 마을공동체 개념은 멀게만 느껴진다. ‘N포 세대’라는 표현이 공공연히 인용되고 ‘수저’ 논란이 큰 공감을 얻는 시대에, 현대인은 개인의 삶을 영위하기 바빠 타인의 형편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어 보인다. 이따금씩 돈을 기부하고 단기 봉사에 참여하더라도 삶을 나누며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은 드물다.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국 국민은 ‘시민’이 되고자 달려왔으나 ‘난민’이 되어가고 있으며, 이를 벗어날 유일한 길은 ‘주민’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 해법으로 ‘다시, 마을’을 제안한다.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마을이 학교다』 등의 책들을 펴낸 박원순 현 서울시장의 임기 동안 서울시에서는 마을공동체, 마을기업 등을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시도되었다. 그런데 이런 논의가 활발해지기 이전부터 30여년 간 묵묵히 한걸음씩 그 길을 걸어온 곳이 있다. 바로 부천 새롬교회다.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는 교회
부천 새롬교회는 경기도 부천시 약대동 마을공동체의 근간을 이루는 교회다. 교회를 짓기 전에 마을에 탁아소를 먼저 세웠고, 지역사회의 필요에 따라 공부방(새롬지역아동센터), 마을도서관, 가정지원센터, 어르신 문외 교육 및 반찬 배달, 사회적 기업, 마을 카페와 떡방앗간을 운영하는 협동조합 등을 하나씩 하나씩 추진해왔다. 주목할 만한 점은 교회 교인은 100명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은 숫자로 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주민들의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이원돈 목사는 말한다. 교회가 먼저 마을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에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어 교회를 주축으로 마을에 다양한 플랫폼을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새롬교회 사역의 시초는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이하 KSCF) ‘학사단’(학생사회개발단) 프로그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사단은 KSCF 학생들이 방학 중에 전국의 빈민지역, 공단지역, 농촌 등지에서 일손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새롬교회는 본래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에 위치해 있었으나, 학사단의 빈민활동보고서를 통해 부천시 약대동이 어렵다는 소식을 접하고 청년들의 의견을 모아 1986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1986-1990년] 지역과 아동: 가장 약한 자에게 내미는 손길
1980년대에는 약대동에는 작은 공장에 다니는 부부들이 많았다. 공장이 바삐 돌아가던 때라 부모들이 공단의 철야잔업으로 밤늦게까지 일을 하니 아이들이 집에서 방치되었다. 새롬교회는 기독여성인들의 도움을 받아 종일 아이들을 돌보는 탁아소를 운영했다. 3-4년이 지나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니 이번에는 방과 후 학원에 갈 수 없는 형편의 아이들이 생겼다. 아이들을 돌보고 끼니를 제공하기 위해 1990년 부천 최초의 공부방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지금의 새롬지역아동센터다. 그 뒤를 이어 교인 두 명이 사재에 있는 책들을 모아 ‘약대글방’이라는 이름의 마을도서관 을 시작했다.
[1990-2000년] 가족과 마을: 한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살아나야 한다
1997년에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가정들이 해체되었다. 새롬교회는 가정지원센터를 세워 가정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살아나야 한다고 판단하고, 주민자치센터와 협력해서 마을을 살리기 위한 일들을 시작했다. 식사가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반찬을 제공하고, 한글 및 문외교육을 실시했다.
[2005년 이후] 생명과 협동: 마을 만들기의 핵심, 사회적 경제
교회가 최근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협동조합’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대안경제모델로서 협동조합 붐이 일었다. 마을 사람들도 '수요 인문학 카페'에서 함께 독서하고 토론하면서 앞으로는 경쟁이 아닌 협동의 사회가 올 것이며,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경제를 추구해야 한다는 데 마음을 함께 했다. 청년들은 사회적 기업인 ‘아하 체험 마을’을 만들고, 교인 6명을 중심으로 카페와 떡방앗간을 운영하는 ‘달나라토끼' 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약대동 달토카페는 마을에서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학습•문화•복지 생태계
새롬교회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새롬교회는 약대동 빈민지역을 섬기면서 그곳에서 공동체를 세워가기를 바랐으나, 약대동 거주민들은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안정을 찾게 되면 줄줄이 약대동을 떠났고, 때로는 더 열악한 지역으로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는 마을 공동체가 세워지기 어려웠다. 마을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는 마을 안에 끈끈한 생태계가 형성되어야 했다. 교회는 이제 개인들의 필요를 넘어 ‘약대동 마을만들기’를 시작했다. 이원돈 목사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곧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라며, 구체적으로는 마을 안에 학습, 복지, 문화 생태계가 갖추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학습 생태계는 유아부터 중장년층까지를 아우르는 평생학습의 장이다.
약대동에서는 지역사회 시설들을 활용해 각종 평생학습 프로그램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약대 신나는 가족 도서관에서는 유아 미술 교실, 어린이 독서 동아리, 방학 중 부모님과 함께 하는 특강들이 열린다. 마을 안에만 머물지 않고 전국의 박물관, 전시실, 전통 마을 등도 탐방한다. 부천영상미디어센터에서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사진이나 영상 촬영법을 알려드리고, 상영회를 연다. 이주여성들을 위한 한글교실도 있고, 이주여성들과 마을주민들이 교류하면서 서로의 음식과 춤을 배우기도 한다. 이처럼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평생학습은 온 연령대와 인종을 포함하는 일종의 마을잔치가 된다.
문화 생태계는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부천은 매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열리는 영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부천 영화재단 상임이사가 ‘약대동은 마을 만들기가 잘 되니 꼽사리 영화제를 하는 게 어떤가’라고 제안한 아이디어를 사회적 기업 ‘아하 체험 마을’이 구체화했다. 칸 영화제가 열릴 때 인근 지역 프로방스에서 마을 영화제를 열듯이 BIFAN이 열릴 때 약대동 영화제를 개최한다. 1회 참여 관객이 1000명에 이르렀다. 꼽사리 영화제가 성공하자 마을을 상징하는 ‘꼽이’ 캐릭터가 탄생하고, ‘꼽이 방송국’도 생겨났다. 꼽이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지면서 마을 축제와 운동이 확장됐다.
복지 생태계는 마을 생태계의 기초가 된다. 이 목사는 복지 생태계의 대표적인 예로 사회적 경제 모델을 든다.
약대동에는 협동조합에 종사하는 지역 사람들이 열댓 명 정도 있고, 매주 탈학교 청소년을 대상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꼽이 심야식당’에도 한 청년이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는 식사를 제공하고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서로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를 살리는 복지 생태계는 협동심과 같은 무형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 또 다른 복지를 위한 발판이 되고 있다.
영적 돌봄망으로 그리는 생명망 목회
새롬교회가 하는 일은 복지기관의 역할과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교회로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차별화된 가치는 무엇일까. 이원돈 목사는 자신 있게 마을 생태계를 넘어서는 ‘영적 돌봄망’을 제시했다. 그 핵심 두 축으로는 ‘사회적 심방’과 ‘사회적 기도’를 들었다. 교회가 단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수동적으로 주민들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기관을 직접 찾아가서 그들의 필요를 세세하게 살피고 함께 기도한다. 영적 돌봄망을 위한 인력은 중보기도회, 심방팀, 교역자들, 그리고 선교 일꾼으로 나뉜다. 12명의 선교 일꾼들은 일 년 내내 지역사회를 돌보면서 개개인의 사정을 파악한다. 이들이 도움이 필요한 곳들을 선정해 명단을 제공하면 중보기도팀이 기도를 하고, 교역자들이 날짜를 배분한 뒤, 약 두 달 동안 심방팀이 명단에 제시된 곳들을 방문하면서 영적 돌봄망을 짠다. 방문 시에는 곳곳의 사정에 맞는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각 필요에 따라 물질적 지원, 정보 제공, 가정 상담, 관공서 연결 등 형태를 달리한다. 그러다가 진정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분들에게는 복음을 전하기도 한다. 이로써 3가지 생태계로 이루어진 안전망을 뚫고 추락하는 이들을 받치고 보살피기 위한 생명망을 마련하는 것이다.
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9.1명으로, OECD 국가 중 최고를 기록한다. 이원돈 목사는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고립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각종 수치와 사건들이 한국사회의 팍팍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 목사는 이럴 때일수록 교회가 지역사회를 향해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더 이상 교회 안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지역사회 전체를 목회하는 마음으로, 지역사회의 필요를 살피고 돕는 실천을 할 때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들이 마을 공동체, 그리고 생명을 주는 관계망을 통해 치유될 수 있음을 새롬교회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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