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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성장,탈교회 기후위기 시대의 작은 교회, 마을 교회, 민중교회

마을이 꿈을 꾸면..

by 아름다운 마을 2024. 12. 1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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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민중신학과 민중교회의 파상성을 소환한다!(농촌과 목회 2024 겨울호)              =물신의 영성을 생명의 영성으로 뒤집는 생태 변방 정치신학의 주체로서 민중교회  =      이원돈 목사(부천 새롬교회) 

 

 

1. 코로나 재난과 탈성장,탈교회 기후위기 시대의

도전 가운데 서서  다시 돌아보는 민중교회 운동

최근 코로나 이후의 우리 사회와 교회의 흐름은, 고도 성장기가 저물고, 저출산 저성장 고령화 시대가 서로 맞물리며, 경제적 양극화가 가속화되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는 코로나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탈성장 탈교회 현상과 맞불리면서 교회와 목회 현장을 훨씬 더 당황스럽게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교회와 목회현장을 당황스럽게 만들어 가고 있는 코로나 재난 이후의 위기를 보다 섬세하게 다시 살피면서 이 탈성장 탈교회 시대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은 오늘 이 시대에 다시 소환되는 신학과 교회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민중교회와 민중신학이 아닐까 한다?.

오늘 코로나 재난기 이후를 겪으며 보이는 대형교회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광화문 광장으로 모으고 세력을 과시하는 것은 다시 고도 성장기의 교회성장과 교회 부흥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들 나름대로의 몸부림일 것이다. 오늘의 교회 위기의 모습은 대형교회를의 대형 세과시 집회에도 나타나지만, 동시에 수십년간 신앙 생활을 한 교회 안의 영적 지도자들과 신도들이 담대히 이웃과 지역의 십자가를 지기 보다는 교회 전체가 자기애(나르시즘)에 중독되어 젖병을 떼지 않은 것과 같은 유아적 신앙을 보이는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유아적 신앙의 모습은 교회로 하여금 더 이상 시대의 십자가를 질 능력을 상실하게 하기에 한국 교회가 소금과 빛을 잃고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집단으로 전락하게 하는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김홍중교수가 쓴 마음의 사회학이라는 시대의 마음을 읽는 책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에서 김홍중 교수는 소위 1987년 시기를 진정성이라는 마음의 시대로 읽고 있다, 여기서 진정성이란 자기성찰과 사회참여로 진정한 인간성에 도달하려는 거대한 시대적 각성과 움직임이 이 시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유럽의 68세대와는 다르게 이 진정성의 시대가 너무 짧았다, 한국 사회는 1987년 진정성의 시대에서 10년이 지나 1997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진정성의 시대에서 신자유주의적 생존 지상주의 시대로 들어간다. 이 시기의 한국 사회의 마음의 생태계는 이미 자기 성찰과 사회참여라는 진정성과는 급속히 멀어지면서 시대의 마음이 경쟁주의 능력주의 각자도생적 생존주의라는 신자유주의적 생태계로 광범위하게 침식 당하기 시작한다. 김홍중 교수는 오늘의 시대는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축적돼 온 산업화·민주화·세계화라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큰 꿈이 깨지면서 어떤 꿈 속에서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해답을 찾기 어려운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이 붕괴 체험을 '파상성' 이라고 하는데, 이는 상상이라는 말의 반대 개념이다. "파상이란, 나를 사로잡고 있던 꿈이 깨지면서 꿈에 뿌리내리고 있던 내 근거가 부정되는 체험을 말한다. 김홍중 교수는 이 파상이라는 깨지는 체험은 도덕적, 인지적, 종교적 힘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파상력의 긍정성이라고 한다. 고도성장기의 한국교회의 교회성장이라는 큰 꿈은 다 무너졌다, 그리고 민주화 세대들의 자기 성찰과 사회참여라는 진정성도 경쟁주의 능력주의 각자도생적 생존주의의 생태계로 광범위하게 침식 당하고 무너져 있다. 김 교수는 파상력은 꿈과 욕망의 구조, 그 구조를 뒷받침한 신념, 그 신념이 만들어 낸 체계의 질서를 깨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회를 지배하는 꿈들의 파상의 현장에 서라 하면서, 고통받는 사람과 공감(共感)이 아닌 통감(痛感)하라고 주문한다. 자신을 없애고 타자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 보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다시 민중신학과 민중교회의 경험을 통해 시대의 상상력을 넘는 파상성을 불러내야 할 시기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오늘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낡은 시대의 상상을 뛰어넘는 민중 신학과 민중교회의 파상력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동안 축적된 민중신학과 민중교회의 파상력은 부정적인 의미 보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작용할수 있을 것이다.

 

2, 코로나 재난 이후 다시 돌아보는 민중교회 운동의 의미와 영적 반성

민중신학이 없었다면 민중교회는 탄생되지 아니하였다. 70년대말, 80년대초 많은 진보적 기독청년학생들과 진보적 기독인들이 그야말로 한국 기독교를 택하여야 할 것인가, 버려야 할 것인가 할 정도로 기독교의 정체성을 붙잡고 극단적인 고민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기독교의 새로운 전망과 비전을 제시해준 것이 바로 민중신학이었다. 이러한 신학적 배경 속에서 성장한 진보적 젊은 목회자들이 80년대초, 한편으로는 광주의 아픔과 노동자 농민들의 부르짖음을 경험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공동체와 지역사회운동에 관한 사회적 욕구를 경험하면서 전국의 여러 민중현장(공단과 빈민지역과 농촌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함으로써 민중교회는 그 탄생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80년 중반, 공단과 빈민과 농촌 지역에서 민중교회가 맞은 첫번째 과제는 교회의 공동체적 기초를 놓는 동시에 노동운동과 지역운동과 농민운둥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일이었다. 또한, 당시 물밀듯 밀려오는 여러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나름대로 소화하며 기독교운동과 민교운동의 방향성을 잡아나가는 일이었다. 이때 민중신학 1세대의 민중에 대한 이해가 애매하고 막연하여 민중을 비집단화, 비조직화 시킨다는 지적이 있었고, 민중교회의 주체성을 위해 보다 민중의 실체가 객관적으로 밝혀져야 한다는 민중신학의 과학성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주로 민중신학 2세대에 의해 주도된 이 민중신학의 과학화의 전개는 기독교 주체성을 가지고 사회과학을 수용했다기 보다는 주로 사회과학적인 세계관을 민중신학에 적용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다시말해 사회과학적 세계관을 민중신학의 중심에 접목시킨 것이 아니라, 민중신학을 사회과학의 세계관에 접목시킨 인상을 버릴 수가 없었고, 그것마저도 너무 현학적이고 관념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 지역과 현장을 지키는 민증교회로부터 민중신학이 멀어진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87년 민주대항쟁과 노동자의 전국적 진출을 경험하고 노동운동을 필두로 각 부문운동이 독자적 위치와 대중성을 담보하기 시작하면서 민중교회운동도 기독운동, 특별히 교회운동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요청되기 시작했다. 특히 90년대 들어서는, 민교의 기독성(신앙)과 교회성이 다시 토론되기 시작하였는데 민중신학자들은 신학의 대중화문제, 즉 신앙과 교회의 문제를 신학적 주제로 담기 시작했고 민중교회에서도 부분적으로 교회론, 선교론, 목회론에 관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왜 민중목회현장에서 이러한 토론이 새삼 다시 일어나는가? 지난 민중교회의 역사(한민련의 창립을 기준)를 반성해 볼 때, 민교의 성장(.질적)이 정체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이 정체현상은 두가지로 요약되는데, 그 하나는 민교에 관한 구체적 희망과 애정과 사랑을 간직하고 민중교회를 키워갈 핵심교인이 잘 형성되지 않는다는 반성과 교회의 일꾼이 늘 부족한 상태라는 말이다. 그 동안 민교를 형성한 구성원들은 신앙적 자유주의에 물들어, 교회와 공동체를 활용과 이용의 대상, 혹은 친목과 운동의 공간으로 인식해온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여 필요에 따라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것을 여러번 반복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여기에 교회란 무엇인가? 신앙이란 무엇인가? 교회의 주인이 되고, 일꾼이 되고, 교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며 신앙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토론이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둘째로, 민중교회가 자기 재생산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민중선교 프로그램 중, 이제 다른 사회단체가 참여하기 시작한 프로그램들과 경쟁해야 하거나 재정적 영세성으로 말미암아 축소 지향적인 경향성을 띄는 프로그램이 나타나고 있는 것과 함께 교회의 신앙공동체의 자기 재생산과 성장이 정체되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민중교회는 지금 자기 양떼를 잉태하고 출산하여 양육할 능력이 없는 어려움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위글은 2000년대 초(2005) 민중교회 연합 자료집에 쓴 필자의 글이다. 위의 글에서 보이듯이 필자는 80-90년대 민중교회 운동을 할때는 민중신학이 너무 교회 중심적이지 않고, 이웃과 지역과 마을과 가난한자 고난당하는 자들과 같은 현장과 사건 중심적이라, 교회 공동체가 소홀히 되고, 교회의 중심이 세워지지 않고 모이지 않고 성장하지 않는다는 불평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민중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 코로나 재난 이후 탈근대 탈교회 탈성장 시대의 새로운 교회의 방향을 설정할 때, 이미 건몰과 교회중심의 시대가 가고 있는 탈교회 탈성장시대의 한 복판에 서서, 이제 우리가 민중신학과 민중교회 시대를 다시 돌아볼 때, 우리가 지난 세월 이러한 민중 신학과 교회의 세게관을 염두에 두고 목회를 하고 선교를 하고 훈련이 된 것이, 오늘 이 시기를 즉 탈근대 탈성장 탈교회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너무나 좋은 훈련과 경험을 했다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민중교회와 신학의 오늘의 의미와 가치는 다음장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 하기로 하고 우선은 민중교회가 태동되고 민주 대장정의 시기를 거친이후 이명박 박근헤 시대의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시대를 거친후, 코로나 재난에 이르기 까지의 민중교회의 영적 생태계를 잠깐 스케치 하면서 코로나 재난이후 우리가 새롭게 형성해야할 민중교회나 작은 교회 마을 교회의 영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가난한 동네에서 지난 30여년간 민중교회 운동 작은 교회운동 마을목회 운동을 두루 거치면서 경제적 사회적 위치가 상승한 교우들 중, 중산층 아파트에 입주하기 시작하고, 가난한 동네를 떠나면서, 공동체의식이 상실되어 신앙의 피곤함을 호소하는 교우들을 자주 목격하였다. 신앙의 피곤함을 호소하는 대부분의 교우들은 공동체 의식과 참여율이 저하되는 경향과 함께 초기의 서로 연대 협력하는 공동체 정신과 신앙 보다는 자기의 성을 쌓고 각자도생의 나르시즘 (자기애)에 물들어가는 경향을 많이 보이게 된다. 결국 민주화 시대를 이끈 386 세대들도 자신들의 자녀를 교육하는 교육관과 부동산에 대한 태도는, 결국 코로나 이후의 시대의 지옥과 같은 한국 사회를 탄생 시킨 주범이 되었다는 사실을 목격하면서, 이 재난시대 이후의 신앙에 김홍중 교수의 공감을 넘어서는 통감과 상상력을 넘는 파상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 재난 이후 교회와 마을안의 많은 사람들과 공동체가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이 깨져 있다. 재난이후 민중교회와 마을 교회에서 조차도 특별히 기존교회를 다니다가 민중교회의 가치에 동의하고 민중교회나 마을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교인들 중심으로 다시 세상적 가치나 기존의 보수적 신앙에 편승하여, 교회를 안식처와 피난처로만 이해하는 낡은 신앙으로 후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시 건물이라는 낡은 구원의 방주로 회귀하며 건물과 방주 이상의 이웃과 지역사회와 마을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지 못하고 후퇴하는 안타까운 신앙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와 더위과 태풍으로 많은 사람들이 탈진했고 에너지가 소진되었다. 코로나 이후 많은 교인들에게는 가족과 이웃과 교회와 함께 나눌 에너지가 소멸되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민중교회와 작은 교회와 마을교회 운동을 경험한 목회자로서 민중교회의 진행과정에서 미쳐 파악하지 못한 점이 바로 이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민중교회 겸험자중 이러한 신자유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민중교회적 세게관과 가치관에서 벗어나 세상적 가치관으로 전향을 했는데 민중교회는 이들이 한때 학생운동 사회운동을 거친 세대라 그 신념이 끝까지 갈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가치관에서 탈락을 시작했고 민중교회도 이렇다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여기에 민중교회의 영성에서 소중히 지켜야 할 즁요한 가치와 보완해야할 요소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 그 영적 전쟁이 가장 심했던 에베소에서 낡은 헬라문화와 새로운 그리스도 문명이 충돌을 했고 이러한 영적전쟁 상황에서 그 영적 전쟁을 위해 사도바울의 바로 전신갑주로 무장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공중권세란 무엇인가? 문명전환기에 사람들은 자꾸 흔들리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자기애 나르시즘에 빠지고 각자도생, 능력주의 탐욕을 정당화하는 영적 권세에 사로잡히기 쉽다. 이러한 공중권세가 공동체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공동체는 탐욕에 길들여진 냉소적 회의적 분위기에 횝싸일 뿐만 아니라 탐욕을 정당화하고, 탐욕에 저항하지 않는 분위기가 그 공동체를 장악하기 시작한다. 지금 코로나 재난이후 문명전환기에 있는 오늘 이시대, 우리야 말로 이러한 공중권세가 시키는대로 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탐욕에 길들여 지고, 탐욕에 저항을 포기한 탐욕이 정당화 되는 참으로 뻔뻔스러운 시대와 사회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민중교회에 전하는 초대교회의 메시지: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과 바울의 초대교회 에클레시아운동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운동과 바울의 초대교회 에클레시아 운동은 바로 로마 제국과 제사장으로 대변되는 중앙의 종교브로커들과 지역과 마을의 종교 브로커들인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한 성전 정화 청소 운동이었다. 에수님의 치유 이야기들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의 치유란 단순히 사람의 몸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악한 영인 공중권세에서 사람을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시대의 병든 사람들이 처한 사회적 공중권세의 맥락을 꿰뚫어 보셨다. 예수님은 이러한 시대의 공기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육적 정신적 치유가 불가능하신 것을 알고 계시기에 예수님은 병자는 물론 바리새주의와 같은 시대의 관습과 제도와 싸우신 것이다. 개인 치유나 구조악 치유를 넘어서 시대의 정신과 공기와 문화,구조화된 관습화된 제도와 의식등 시대의 공기를 지배하는 공중 권세와 싸우신 것이다.

코로나 재난기에 성서를 다시 읽으며 개인의 악, 구조의 악을 넘어선 공중권세를 잡은 악한 영과 싸우라 (6;12)라는 말씀이 가슴을 때렸다. 당대의 종교 브로커 체제에 대한 저항이 예수의 갈릴리 마을 운동에서는 헤롯과 바리새의 누룩을 조심하라는문구로 요약되지만, 사도바울의 로마의 식민 도시에서는 로마황제를 신격화하고 추종하는 로마의 후견인네트웍에 대한 저항이 바울의 교회에서도 똑 같이 일어나는 것을 볼수 있었다. 강한 군사력을 통해 지중해 세계를 정복한 로마제국의 통치방식은 로마 황제를 신격화 하기 위한 후견인이라는 브로커로 연결된 통치 체제였다. 로마 사회를 이끌었던 것은 후견인과 피후견인 정책, 패트론·클라이언트(Patron-ClaientSystem)관계였고. 최고의 패트론, 최고의 아버지는 곧 황제였다. 네로는 최고의 패트론으로서, 가족 국가(파밀리아·familia)를 이끄는 최고의 아버지라고 자기를 높였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 1:7, 8:15, 15:6을 통해 진정한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하고, 그 아버지의 맏아들은 예수님이시며(8:29), 우리는 모두 이 맏아들의 형제자매(1:13)라고 선언한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바울의 에클레시아 교회에 침투한 로마의 후견인 그룹에 대항하여 진정한 후견인은 로마의 황제와 로마의 후견인 그룹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하고, 그 아버지의 맏아들은 예수님이시며, 우리는 모두 이 맏아들의 형제자매라고 선언하며 로마의 후견문화에 대항하는 하나님 나라의 후견문화를 창조하면서 로마의 후견인 제도를 바울의 에클레시아로 거꾸로 뒤집는다.

당시 로마 사회는 후견인과 고객이라는 관계로 철저하게 엮여 있었는데, 여기서 부유한 후견인들이 상업 시민 종교조직에 재정적 후원을 제공함으로서 지역사회를 움직였다. 특히 고린도처럼 여러 언어를 쓰는 곳에서는 스스로 누군가의 후견인이되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높이려는  야심가들과 노예에서 해방된 신흥부자들이 많았는데,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후견인들과 노예에서 해방된 신흥부자들에게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곳 이었다. 고린도 교회의 갈등은 이러한 고린도 지역의 야심가들과 후견인들이나 신흥부자들이 교회에 들어와 로마식의 후견적 네트웍으로  식탁문제와 방언으로 공동체를 어지럽히기 사작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새로운 사도들이 교회에 도착하여 바울이 강조한 공동체의 연대를 훼손 시키고, 급기야는 이러한 후견인들이 교회를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바울이 쓴 고린도서에는 로마의 후견인 조직이 고린도 교회에 침투해서 교회의 공동체를 무너트린 것에 대한 치유가 시작된다, 힘센자, 부유한자들의 문화인 로마의 식사 문화를 흉내내려고, 가난한 교우들이 오기전에 식사를 하는 고린도의 부자들, 로마의 열광주의에 빠져 무질서한 방언을 하는 여성등, 그리고 우상숭배에 제물로 쓴 고기를 먹을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로마제국의 가진자 힘쎈자들의 풍습을 고린도 교회에 들여오기를 원하는 후견그룹의 행태에 대해 바울의 에쿨레시아 교회가 저항을 하면서 기록된 책이 바로 고린도전서 인 것이다.

바울의 이러한 에클레시아 운동은 로마의 후견인체제와 제국의 힘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된 것이다, 고린도 교회의 분열의 핵심 원인인 로마의 강력한 지배체제인 후견인 제도의 숭배자들이 교회에 들어와 아볼로와 함께 헬라적 개인 입신과 출세 세계관으로 고린도 교회 은사와 공동체의식 분열 시키는데 성공 하였을 때, 사도 바울은 그 교란을 잠재우기위해 예루살렘 모금을 통해 바울이 개척한 에클레시아 전체의 협동과 공동체의식 고양하고자 한다. 바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금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주후57년 밀레도에서 모인 에베소 장로들에게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남긴다 “29 내가 떠나가면 사나운 이리떼가 여러분 가운데 들어 와 양떼를 마구 헤칠 것이며 30 여러분 가운데서도 진리를 그르치는 말을 하며 신도들을 이탈시켜 자기를 따르라고할 사람들이 생겨날 것은 분명합니다. 31 그러므로 여러분은 언제나 깨어 있으시오. 그리고 내가 삼 년 동안이나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각 사람에게 쉬지 않고 훈계하던 것을 잊지 마시오“ (20:29-31) 또한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걱정하면서 디모데 전서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면서 에베소 교회를 디모데에게 맡긴다.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딤전3;15)

54-55년 겨울 바울이 에베소 감옥에 갇혀 쇠약해지면서, 바울은 이러한 초기 바울의 에클레시아 공동체에 로마황제의 후견 네트웍의 침투에 의한 에클레시아의 분열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을 열렬히 기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개척한 마케도니아의 빌립보 데살로니카 교회로 부터 시작하여, 아시아 지역의 갈라디아 교회 까지 예루살렘 후원에 관한 편지를 쓰기 시작하자, 바울이 개척한 에클레시아들이 예루살렘 후원 프로젝트에 열렬히 참여하는 돌풍이 일어나면서 로마제국의 후견네트웍에 경제적 저항(코이노니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바울은 당시 공동체에게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3:28)라는 사회정의와 평등을 실천하는 성도들만이 하나님 나라 상속자가 된다고 말씀을 전하고, 데살로니카후서 3:10 일하지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데살로니카 교회가 이 바울 사도의 말을 듣고, 로마의 브로커 제도나 부자교인(고린도교회)에게 의존하지 않는 스스로 자립 자치의 길을 간다.

 

이러한 초대교회에 침투한 로마제국의 후견그룹과 바울의 에클레시아의 영적 투쟁은 오늘 코로나 이후 작은 교회, 마을교회, 민중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공회대 은퇴교수 권진관 교수는 최근 민중신학과 마을목회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마을 목회의 주체는 누구인가? 오늘날 매스미디어와 인터넷 등이 발전해서 수많은 이야기와 정보가 우리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전국, 그리고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거기에는 신자유주의적인 이념성 사고구조나 현실 안주적인 보수적 사고구조가 들어있다. 그러므로 바깥의 사고구조가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 이기주의, 물질물량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을 주민들은 이기적인 주민일 수 있다. 우리는 민중교회의 주체인 마을주민들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마을의 주민들은 두 가지의 생각을 다 가질 수 있다. 마을 주민들 가운데서도 이처럼 거짓과 위선, 이기심, 분열, 배반, 이전투구 등등이 발견될수 있을 것이다. 예전처럼 단일화된, 혁명적, 영웅적인 민중을 찾기 힘들다. 그동안 민중교회의 구조로는 이들을 중심으로 진정한 주체성을 형성시키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마을목회는 좀 다르다. 주민들을 위해서 마을목회는 새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언어(이야기와 담론)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우리 교회와 마을 공동체의 건강과 행복은 사실 돈이나 자본과 같은 물신화된 맘몬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나 사람과 민중의 하나님괴의 소통에 가운데 온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의 이러한 공동체와 말씀(언어)을 통합적으로 소통케하여 건강한 몸을 형성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나간다, 교회공동체는 분열된 몸을 가진 주민들의 이 영과 육의 갈등을 성령의 길로 통합해 가도록 인도해야 한다”.

4. 한국교회의 역사가 보여주는 민중교회와 마을교회의 가능성

한국 기독교의 마을 운동의 역사를 오늘 한국 교회의 위기와 연결해서 생각해 본다면      오늘 한국 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교회를 건물 이상의 교회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코로나 이후 건물 중심의 교회의 의미가 점점 상실화되어 가는 이때에 한국교회가 건물 넘어 지역사회와 함께 했던 경험이나 상상력이 부재하다면 코로나 이후 출구가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역사 속에 그동안 주변부로 자리매김을 받아왔던 민중교회운동이나 작은 교회운동이나 마을교회 운동은 처음부터 교회는 건물이 아니었다, 민중교회나 작은 교회는 처음부터 지역사회와 함께 하였고, 마을의 마당이었고 마을의 플랫폼이었다. 마을 목회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이미 우리 한국교회의 역사 가운데는 처음부터 지역사회와 함께 하였고, 마을의 마당이고 플랫폼이었던 자랑스러운 교회 공동체의 역사가 있었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마을 교회의 교육과 선교의 입장에서 다시 돌아보면 일제 강점기 북간도의 명동촌 이후 한국기독교의 역사 가운데는 1950-60대의 홍성 홍동면의 풀무학교, 70년대의 수도권 특수지역 선교위원회의 성남 주민교회(이해학 목사)와 동월교회(허병섭 목사) 그리고 80년대의 민중교회 탁아소 공부방 운동의 흐름이 끈질기게 연결되언 것을 깨달을수 있다. 특별히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민중교회의 마을 교육과 선교는 이미 마을 마당으로 출발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시각으로 1987년 민주 대항쟁과 1997IMF까지의 한국 교회의 선교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급격한 사회변혁기에 한국교회는 민중선교에 기초하여 마을 속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1980년대 공단과 빈곤 지역에서부터 가난한 노동자의 아이들도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하고 배울 권리가 있다는 꿈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역과 마을의 탁아소들과 이러한 탁아소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출발한 지역 공부방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 바로 공단과 빈민촌의 마을 교회를 다니고 있었던 젊은 여성 교인들이었고 또한 기독교 여성 마을 활동가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역 탁아소와 지역 공부방 운동이 대부분 마을에 자리 잡은 마을 민중교회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러한 마을 교회를 중심으로 한 지역 탁아소 운동과 공부방 운동은 한국 지역사회 복지와 교육의 중요한 전달체계를 확보하는데 큰 영향력을 끼쳤고, 오늘날 지역과 마을을 대상으로 한 한국 사회복지 활동의 맹아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1997IMF 구제금융 이후 실업극복 국민운동과 자활운동 등은 각 도시와 마을에 있는 작은 마을교회와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던 노동복지단체 및 지역의 복지단체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었고 이러한 실업극복운동과 자활사업은 당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민중교회들을 통해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교회의 지역 복지운동에 커다란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70~80년대 광주민중항쟁에 영향을 받아 전국 도시의 빈민마을과 산업현장과 농촌교회에 1986년과 90년대 어간 100여 곳에 세워진 민중교회는 1980년대의 민중교회의 탁아소 공부방 등 마을 운동으로 이어지면서 그 후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마을 교회와 마을 도서관과 지역아동센터를 연결하며 마을과 도시를 잇는 평생학습공동체와 마을만들기의 꿈으로 이어져 나갔다. 이러한 마을운동의 흐름은 전국적인 마을 만들기 운동과 연결된 도시형 농촌형 마을 교회들의 등장으로 연결되면서 도도한 마을 교회와 마을 만들기의 흐름으로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2016311

예장 총회 지역 마을 목회 컨퍼런스에 참여한 예장마을만들기네트워크 목회자 일동으로 마을 목회 선언문이 발표되기에 이른다.

 

또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생명과 평화를 여는 2010년 한국그리스도인 선언>이 나오게

되는데 이는 한국교회의 일각에서는 본격적으로 한국 교회 생태계의 위기문제를 생명 신학적 담론의 관점으로 성찰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생명 신학적 담론은 2013년 작은 교회 박람회를 거치면서 탈성장시대의 대형교회의 신화의 붕괴가나안 성도의 출현그리고 대형교회 생태계 이후 작은 교회의 새로운 생태계의 등장을 예고하는 신학적 토론 과정과 5번의 작은 교회 박람회를 거치면서 2017 종교개혁 500주년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작은 교회의 운동은 2017 종교개혁 500주년 탈성장 탈성직 탈성별의 세탈의 교회론을 정립한 이후 한국적 작은 교회론 이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그 신학적 소명을 마무리 하게 되지만, 종교개혁 500주년 전후의 5번의 작은 교회 박람회를 통한 작은 교회운동은 한국교회의 교회론적 반성을 촉구하면서 한국교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작은 교회의 생태적 중요성을 일깨웠을 뿐만 아니라 탈성장시대 한국교회의 나갈 길과 새로운 작은 교회의 생태계로 마을 교회의 가능성을 열어준 중요한 한국 교회사적 신학사건 이었던 것이다.

 

5. 돌봄 민주주의 시대에 마을 살림 살이에 기초한 돌봄 교회와 돌봄 마을

 

필자의 38년간의 민중교회 작은 교회 마을 교회의 경험으로 볼 때 그동안의 민중교회의 최대의 수확은, 민중교회가 민중신학을 가지고 지난 30년간 마을 살림살이를 해 본 경험이다. 민중교회에는 이 살림살이의 기초가 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이제 민중신학은 이 살림살이의 기초 위에 민중신학을 재구성해야 할 시기를 맞고 있다. 왜냐하면 민중교회는 비약적이고 불연속적인 사건 속에서만 살기보다는 연속적이고 일상적인 삶을 기초로 하고 이 기초위에 불연속적이고 종말적인 사건을 체험화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사건 중심적, 이슈중심적인 선언적이고 당위적인, 그래서 기구중심적인 기독교운동은 빨리 지역중심의 생활과 살림의 차원으로 그리고 생활공간인 마를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이 생존의 상황과 살림 속에서 사건과 종말을 재현하고 그것을 신앙화, 신학화해야 한다. 같은 의미로 지금 한국의 작은교회의 문제는 백약이 무효한 시점이다. 그동안의 작은 교회운동이 왜 백약이 무효이었나, 핵심적인 이유는 한 개교회단위로는 작은 교회의 문제를 극복할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교회의 문제는 지역과 협력하고 마을의 살림 살이와 연대하면서 지역과 마을 단위의 연대(지역 에큐메니칼 연대))로만 해결될수있다,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앞으로의 작은 교회운동과 마을 교회 운동과 민중교회 운동은 지역 마을 교회 운동으로 플어나가야 하고, 교회는 마을을 살리고 마을은 교회를 살여야한다, 교회가 진정 마을을 살리는 교회가 될 때 역으로 마을이 교회를 살린다, 재정과 인력과 일꾼이 지역과 마을에서 나오게끔 되어있고, 이것을 보는 사람들이 모이고 후원을 하게끔 되어 있다. 이처럼 코로나 이후 마을 목회는 돌봄 마을을 향해 가고 있다, “돌봄 민주 국가라는 책에서 김희강 교수는 앞으로 올 시대를 다음과 같이 예고하고 있다, 18-19세기 자유민주주의가 봉건적 위계질서에 도전하며 자유의가치를 중심으로 재편된 민주주의였다면, 19-20세기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위계질서에 도전하며 노동의가치를 중심으로 재편된 민주주의였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모두 사회적 관계를 단순히 개인들의 집합이나 계약의 산물로 본 약점이 있다. 돌봄민주주의는 우리 사회를 개인들의 집합이나 계약의 산물로 보는 것을 넘어 관계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사람들 간의 다양한 돌봄의 관계의 망으로 구성된 공동체로 본다..이 돌봄의 관계망이란 돌봄 민주주의가 되어 신뢰와 상호관심, 사회적 연결과 사회적연대를 구축하는 필수적인 주춧돌이됨으로서 돌봄이 배제된 사회경제의 위계질서에 도전하고 돌봄의가치를 중심으로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마을 단위의 돌봄 생활 민주주의를 실현할수있는 재편된 성숙한 민주주의이다 우리는 앞으로 돌봄이라는 관점에서 산업 노동과 기후위기를 보아야 할 시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 시대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한 건 필수노동자들(essential workers)이 있었기 때문라 한다. 이 필수 노동들의 핵심에는 무엇보다도 돌봄연결이 있다.

 

시장중심의 근대 복지국가는 우리 사회를 개인들의 집합이나 계약의 산물로 보기에 관계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사람들 간의 다양한 돌봄의 관계의 망으로 구성된 공동체로 보지 못하고 상품으로 보고 있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국가와 시장을 넘어서는 돌봄민주주의 관점에 서면, 우리는 필수 노동을 공동체와 관계중심적인 돌봄으로 보기 시작한다. 이것은 필수 노동들을 값싸게 무급으로 제공되는 현 사회체제를 멈추고 근본적인 사회개혁이 가능하게 할 것이다. 산업 민주주의와 돌봄의 민주화가 지역 풀뿌리 운동으로 이어지고 구체적인 일상을 변화시키는 일상 민주주의가 꽃필 때, 예컨대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타, 마을도서관, 주민복지센터 등 마을의 돌봄 공동체가 돌봄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있는 거점이 되기 시작하면 이제 그동안의 산업민주주의 시대는 산업혁명 시대를 넘어 돌봄 민주주의와 결합하여 돌봄 혁명을 시작할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재난 이후 탈 탄소화 노력은 더욱더 치열하고 빠르게 추진돼야만 한다 만약 탈 탄소화가 시도되지 않는다면, 3도 이상 상승 시나리오가 끝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 재난 이후 탈 탄소 기후 담론이 전부인 양 치부돼서는 안 될 것이다. 탈 탄소 기후 대응을 한 기둥으로 돌봄 노동을 다른 기둥으로 두 기둥을 세우며 기후 돌봄 생태 시대를 열어 나가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탄소를 배출하는 산업생산 노동보다는 돌봄과 관계 노동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야하고 이를 위해 시간과 임금을 재편하는 돌봄 생태 시대를 열여야 지구촌이 지속 가능할 것이다.

 

2026327일 시행전에 전국에 마을 통합지원법이 실해되기 시작하면 읍면동단위의 종교.의료 돌봄 협동조합등을 아우르는 돌봄공동체가 세워지는 시대가 시작되는데 각 지역과 마을 마다 돌봄마을을 준비해야할 때이다 2년후 통합돌봄법이 통과되고 내년 봄에 종교 사회계 돌봄선언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돌봄"이라는 주제가 굉장히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돌봄이라는 주제는 우리가 시대의 흐름을 읽고 선교 정책과 전략을 짤때 시대의 배경으로 생각했던 국가 중심의 복지국가가 흔들리면서 나오고 있는 문명전환기의 새로운 담론이 코로나 이후의 돌봄의 사회와 돌봄민주주의나 돌봄민주국가로 요약되고 있다. 즉 공적 돌봄(국가의 실패)과 사적 돌봄(시장의 실패) 사이: 사회적 연대 경제(공동체 돌봄)를 통한 돌봄마을 돌봄교회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상황은 지자체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고 있다. 풀뿌리 돌봄이 준비되어 있지 않고 있다 (마을 일꾼의 부재) 그런데 대기업이 마을 돌봄 사업에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하기에 앞으로의 돌봄교회와 돌봄마을의 방향을 다음과 같다, . 국가 돌봄 ,시장돌봄에서 마을공동체 돌봄으로! 간접민주주의에서 직 간접 마을 돌봄공화국 . 행정 돌봄에서 생활돌봄 = 선거정치에서 마을 생활 살림살이 정치로 . 코로나 이후의 산업 선교의 방향성은 산업혁명 넘어 돌봄혁명으로 나가야 할것이다!!

나가며 ; 오늘의 시대는 민중신학과 민중교회의 파상성을 소환한다!

=물신의 영성을 생명의 영성으로 뒤집는 생태 변방 정치신학 주체로서 민중교회 =

저는 그것을 주체의 형성문제로 보았고, 최근 세가지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먼져는 저항적 주체인데 저항적 주체들은 공동체안의 다양한 관심사를 섬세하기 살피기 보다는 자신의 선명한 정의와 가치를 가지고 나가려는 경향속에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찾습니다, 이들이 좋은 역할을 할때도 있고, 파괴적 역할을 할때도 있습니다. 이와는 달린 그런 저항적 주체의 생각이 고루하다고 생각하고 성평등 이슈, 청년이슈, 생태 이슈에 관심하는 주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취향과 관심을 넘어서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공동체가 호소할 때 움직이지 않고, 공동체의 미래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도 참여는 하지만 몰입은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을 탈근대적 추제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 두 주체로만으로는 미래가 열리기 힘들겠다고 생각합니다. 근대적 저항적 주체로만으로도 안되고, 탈근대적 해체적 주체만으로도 공동체 운동은 어렵습니다. 모두의 한계와 인식하면서도 딛고 일어서려면 우리안에 생태적 주체가 등장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혁명운동을 해왔던 저항적 주체로로서의 기질도 이어가고, 근대적 폭력성을 극복하고자 했던 해제적 주체의 섬세한 감각을 포괄하면서 ,여전히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전체적 책임성을 놓치치 않는 주체들을 어떻게 길러낼까?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억압과 파괴로 얼룩진 문명을 싸매기 위해서는 생태적 주체가 필요합니다. 자기 진리에 대한 충실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감각과 평화의 이상으로 충동질 당하는 영혼이 역사의 품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자비로운. 열정과 은혜로운 관계에 대해 겸손한 생태적 주체의 등장을 염원 합니다 이러한 근대적 저항적 주체와 탈근대적 해체적 주체를 포괄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생태적 주체의 등장을 염원하는 김희헌 목사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신학자 김진호 목사의 앞으로 작은교회 민중교회들은 변방의 정치신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작은교회는 예배를 위한 예배가 아니라 이웃과 공론을 만드는 그 공론이 예배가 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작은 교회들은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고통에 주목했지만, 코로나가 가져온 비접촉과 비돌봄의 경계선 밖 변방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이나, 기분장애 질환자가, 자살자, 플랫폼 노동자의 과로사, 최말단 노동자의 사고사등 교회밖 떠돌이들이 되고 적절한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이들에게 새로운 대안과 방향이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민중 교회와 민중신학의 앞으로의 과제는 앞서 이야기한 민중신학과 민중교회의 태동과 전개 과정속에서 형성된 민중교회, 작은교회, 마을교회의 전통을 상상력을 넘어서는 파상적 가치로 도도히 전환시켜 나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교회의 마을 살림살이 전통과 생태적 주체를 결합해 나가는, 교회밖 마을 밖의 변방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변방의 정치 신학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과 전세계에 또아리를 틀고있는 신자유주의적 물질만능의 죽임의 문화를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영성으로 뒤집는 생태적 변방의 정치신학 주체로서의 파상성을 살려나가는 민중신학과 민중교회가 되길 기대한다.

 

민중목회의 돌봄사역을 추구한다 - 가스펠투데이

 

민중목회의 돌봄사역을 추구한다 - 가스펠투데이

일하는예수회(회장 안하원 목사) 가을 수련회가 11월 10일(주일)부터 12일(화)까지 ‘돌봄이 돌보는 세계’를 주제로 국립대전숲체원에서 열렸다.수련회는 개회예배로 시작하여 신승원 목사(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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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목회의 돌봄사역을 추구한다, 일하는 예수회 돌봄 선언문! ==

일하는예수회는 20241110~12일 국립대전숲체원에서 돌봄이 돌보는 세계를 주제로 가을수련회를 가졌다. 돌봄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찾기 위해, “돌봄선언과 돌봄목회”, “목회자의 마음 돌봄”, “돌봄사역의 실천사례”, “사회변화와 돌봄노동”, “세계의 변화와 이주민 돌봄등을 살펴보며 실천 방안을 모색하였다. 20243지역돌봄 통합지원법이 통과되었고, 2년 후인 2026년에 돌봄 통합지원법의 전면 실행을 앞두고 우리 사회의 나아갈 길의 핵심적 방향으로 돌봄과 마을이 부각되고 있다. ‘돌봄은 이상적인 복지사회로 생각했던 복지국가이념이 흔들리면서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사회상으로 돌봄의 사회화돌봄의 민주주의”, “돌봄 민주국가가 등장하면서 더욱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즉 공적 돌봄(국가의 실패)과 사적 돌봄(시장의 실패) 사이에서 마을공동체 중심의 돌봄 사회와 돌봄 마을이 대안으로 떠 오르고 있다.

2025년에는 인구의 20%65세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고, 돌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2032년이면 돌봄인력이 최대 71만명 가량 모자랄 것으로 예상된다. 돌봄노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저임금 구조를 개선해야 그나마 돌봄 공백을 막을 수 있다. 동시에 돌봄노동은 여성과 남성 간에 민주적으로 재분배되어야 하며, 시장에만 맡기지 말고 공적 돌봄을 새롭게 구축해나가야 한다. 이제 우리는 경쟁에서 연대로, 독립에서 의존으로, 성장에서 돌봄으로! 마을과 지역과 국가를 넘어 지구적인 차원의 돌봄 연대를 확산시켜 나가야 할 때임을 직시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하나, 우리 모두가 생애주기에 따라 차별 없이 안전한 돌봄체계와 환경 안에서 살아가도록 통합적인 민·관 협력 돌봄체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

하나. 우리는 동() 단위의 통합돌봄 전담조직이 지역사회의 복지· 의료, 교육 등의 조직들과 긴밀하게 연계해 촘촘한 돌봄 지원망을 구축한다.

하나, 우리는 돌봄 노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돌봄 노동의 성차별과 착취구조를 혁파하여 민주적 돌봄 노동 생태계를 구성한다.

하나, 우리는 장애를 이유로 제한, 분리, 배제, 거부하지 않고 지역사회에 베리어프리(barrierfree) 환경을 구축하고 장애인을 위한 편의와 돌봄공동체를 마련한다.

하나. 우리는 노인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돌봄을 받으며 지역사회에서 인간답게 생애를 마칠 수 있도록 노인친화적 돌봄공동체를 마련한다.

하나, 우리는 이주민들이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살아가도록 다양한 지원과 이를 뒷받침할 돌봄체계를 구축한다.

하나, 우리는 돌봄의 영역이 한 지역에 고착되지 않고, 다극화되고 변화하는 세계화 흐름에 조응하여 국제사회의 민중들이 주인이 되어 서로를 돌보는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계 돌봄을 실현한다.

하나, 우리는 한국교회가 돌봄 사회 속의 교회로 전환되기를 바란다. 돌봄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구원, 섬김 사역과 맞닿아 있음을 주목하면서 영적 돌봄과 함께 지역사회 돌봄망을 구축한다.

20241112일 일하는예수회 돌봄이 돌보는 세계수련회 참석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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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성장과 탈교회, 기후위기 시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길 - 겨자씨신문

1. 코로나 재난과 탈성장, 탈교회, 기후위기 시대의 도전 속에서 돌아보는 민중교회 운동최근 코로나 이후 우리 사회와 교회의 흐름은 고도 성장기의 막을 내리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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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민주주의 시대의 민중교회와 생태적 정치신학 < 교회·신학 < 기사본문 - 겨자씨신문

 

돌봄 민주주의 시대의 민중교회와 생태적 정치신학 - 겨자씨신문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과 바울의 에클레시아 운동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운동과 바울의 초대교회 에클레시아 운동은 로마 제국과 제사장으로 대변되는 종교 브로커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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