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바울의 3차에 걸친 세게 선교여행의 마지막 종착지 목표점은 당시 제국의 심장인 로마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미국의 뉴욕과 같은 도시를 향한 바울의 마지막 메시지가 바로 로마서입니다,
바울은 이 로마서에서 자신의 신앙의 마지막 총결산을 합니다,
이 로마서의 핵심적 문제 제기는 무엇입니까?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첫 번째로는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로마로는 세상을 구원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로마서의 첫 번째 2장은 그동안 선민으로 주장하던 유대교의 율법과 로마라는
제국의 법과 제도와 그리고 헬라인의 지혜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다고
이 모두를 하나님의 심판대 위에 올려놓습니다, ‘
우선 로마서는 이 로마법과 유대법을 하나님의 법정에 세웁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하는 말씀처럼 이제 이방인과 유대인 세계 모두가 신적 심판아래 있다는 것이 로마서의 전제 입니다.
이처럼 로마서는 개인의 책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이런 기소장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특별히 로마에서 어떠한 점은 문제시 삼습니까?
바울은 그 핵심으로 로마의 가부장제와 노예제를 문제시 삼습니다.
첫째는 바울 바울 당시 지중해 시대 대도시는 노예로 강제 이주되는 일이 벌어져.
엄청난 노예들의 이동이 있었고, 지중해 인근 도시와 농촌 지역은
노동력의 30% 이상이 노예이었습니다.
두 번째 로마시대 당시 세상은 일부삼처제의 지독한 가부장제 이었습니다.
셋째로 특히 바울은 이로마의 가부장제와 노예제를 당시 헬라권 문화에는 호모 사케르라는 개념이 있었는데
이 호모 사케르는 바로 생명이지만 죽여도 법밖의 사람들 이었습니다
호모 사케르는 즉 법(사회)적 영역과 종교(희생제의)적 영역을 벗어난 ‘절대적인 살해 가능성에 노출된 생명’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바로 그러한 희생양의 대표적 죽여도 되는 호모 사케르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세상의 핫이슈는 페미니즘 사회적 소수자 그리고 난민들인데
이들이야 말로 우리 시대의 법밖에 있는 자들 오늘의 호모 사케르입니다 ,
그런데 예수님이야 말로 바로 호모 사케르입니다,
예수를 죽이고 벌을 받은 사람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희생양이요 법밖의 호모사케르를 우리가 죽였으나 하나님에 의해
그가 부활하였고 그리고 그가 사실은 우리의 메시야였다는 담대한 신앙을 선포합니다,
이러한 담대한 기획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눈에 비늘이 떨어진 것처럼 다메섹에서 뒤집어진 사건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뉘시오니이까? 주여!”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 9:4~5)라는 다메섹에서의 바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는
바울의 다메섹 회심 사건은 사실 여성과 난민들을 혐오와 배제하는데 앞었던 당대 유대율법의
최고의 엘리트로서 자신의 엘리티즘을 거부하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존재부정 사건입니다,
바울은 이 회심사건으로 이제 더 이상 율법밖에 있는 호모 싸르크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을
박해하는 것을 중단할뿐만 아니라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는 부활사건이
오히려 이미 세상의 희망을 잃은 유대교의 율법과 로마의 지헤를 대신하는 희망과 구원의
복음이 된다는 신앙으로 전향적으로 돌아서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담대한 전향이 가능했습니까?
바울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습니다. 바울은 디아스포라로서 로마뿐 아니라
소아시아 지역, 팔레스타인 바깥 지역에서 길게는 3년, 짧게는 6개월 정도면서
바울이 여러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문제와 갈등을 해결해 나갔습니다,
바울이 보기에 그들이 법과 제도로 협오하고 베제하여 십자가에 목박혀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는 예수라는 호모 싸르크의 부활사건이 오히려 지금 세상의 희망을
사람들에게 유대교의 율법과 로마의 지헤를 대신하는
희망과 구원의 구체적인 복음이 된다는 것을
이러한 디아스포라의 지혜와 신앙으로 깨달았던 것 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예수라는 호모 사르크가 부활하고 메시야가 될 때 오히려 세상이 구윈되는
새로운 메시아적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는 부활하였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때에
나팔소리가 날 때 그는 공중 재림할 것 이라는 신앙으로 역동적화 시켰습니다,
이때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로마에 있는 핵심적인 에클레시아 구성원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유대인들에게 그 좁은 배타성을 넘기위해
로마에 코스모 폴리나탄한 시민의식으로 나가야하고
이 로마의 범지구적 시민 세계관도 한계가 있으니
그 로마의 한계도 넘어 예수의 하나님 나라 시민의식 즉
하나님 나라의 시민의 메시야니즘까지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 메시야 시민사상은 유대적인 율법적 삶과
로마 시민적 삶을 넘어 유대교와 로마밖의 로마나 체제 밖의 사고를 하면서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삶의 긴장성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그러면 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무엇이 오늘 탈교회 탈물질 종교없는 사회
무종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기쁜 소식 복음이되고 은혜가 됩니까?
지금 체제 즉 유대인의 율법, 로마의 지혜와 법과 제도 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지금 체제 밖에서 새로운 것이 들어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은혜와 은총인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에 유대인과 로마인의 죄악을 고발한후 로마서 3장에서 유대인의 유익이라는 주제로앞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선민으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의 특권을 재론합니다,
그 이유은 유대교에는 율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 밖의 믿음으로 정의를 선포하는
메시아적 믿음의 전승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즉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에는 율법과 법과 제도를 넘는 유대인/이방인,
그리스인/야만인, 로마 시민권/노예의 일체 구별을 뛰어 넘는 믿음의 근거로서 바울은
아브라함을 예시하며 바울은 전 인류의 보편적 구원의 가능성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과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유대교와 로마법은 폭력(부정의)을 확산시켰으나 은혜는 이 땅위에 생명(정의)을 생산했으나
우리는 이 메시아로 인해 넘쳐나는 은혜(선물)을 얻게 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런 메시아적 정의가 우리에게 그에 대한 충실함(충성)을 불러일으킨다고 바울은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로마교인들에게 지금 어떻게 로마제국 곳곳에서 빌립보 데살로니카 고린도 에베소등
로마제국 곳곳에 어떻게 이방 도시의 펴져있는 작은 교회들을 통하여 서신과 전달자와 전도여행과 중보기도와 선교여행으로 소통하면서 어떻게 당시 유럽 전역에 이러한 메시아적 희망과 부활의 메시지가 번져나가고 있는 가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은 메시야 예수를 처형한 제국 안에서 그와 다른 세상을 만들고자고 쓴 서신입니다,
그래서 메시아를 처형한 주체세력으로서 제국 로마에 이질적인 메시아 사상을 뿌리내리고자 했다.
그렇기에 바울은 1장16절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은 모두에게 자랑할 것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로마서는 바로 로마에 있는 이 메시아적 삶의 추종자와 세포조직에 쓴 서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사도바울이 로마에 있는 이 메시아적 삶의 추종자와 세포조직에 쓴 서신에 나오는
정의, 관용, 선물 환대 같은 가치들입니다,
몇가지 독특한 언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메시아적 공동체가 되려면 특별히 중요한 것은
바로 선물(은총)과 환대 같은 메시아적 용어들입니다,
선물 은총이란 무엇입니까? 선물경제가 시장경제와 다른 점의 핵심은 바로 선물은
주고 나서 바로 받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선물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시간적 간격이 있다는 것은 받는다는 것이 없이
단지 '주는 것'만 기억하는 것입니다
증여 자와 수증자라는 개별적 선물행위가 단편적으로 보면 교환행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전체 공동체로 확대해서 본다면 그것은 결국 순환하는 선물행위이다
내가 너에게 너가 그에게 그가그 녀에게 그녀가.또다른 사람에제 전하는
그야말로 상호간의 호혜적 관계에 바탕을 두는 것입니다.
환대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의미입니다, 나그네와 고아를 환대하는 것 난민을 환대할수 있으려면 바로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계산할때는 결국 할수 없는 것입니다 ,
내가 나그네와 고아들 환대할 때 그는 또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주고 환대할것이고
결국은 그것이 돌고 돌아 나와 공동체에까지 더 풍요로운 선물로 순환해서 돌아온다는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정의 선물 은총을 믿을 때
메시아적 평등 평화 공동체가 되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바울은 지금은 로마에 있는 호모 사케르 즉 메시아 시민 혁명군으로
삼아 이 로마서를 쓰면서 이 하나님 나라의 메시아 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면서
우리 하나님 나라의 메시아 세포들은 법밖에 있는 나그네 난민 소수자를 사르크로
배제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과 은총으로 환대할 때
결국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구원받고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승전의 나팔소리를 울리며 속히 임할 것을 힘차고 자랑스럽게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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