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말씀과 함께 떠난 항해 (마가4:33-41)
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 들을 수 있는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지난주 3장에서 안식일날 손이 마른 사람을 고치시다가 안식일 법을
어기시자 바리새와 헤롯당이 예수를 죽일음모를 꾸미기 시작하며
예수님은 가버나움 마을 쫓겨나십니다, 마을에서 쫓겨난 예수님은
들판과 호수가에서 비유로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가버나움 마을사역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 특히 화병과 고립과 마비와 위축되고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시고 그들과 마을 곳곳에서 밥상을 펴는 밥상 공동체 운동이라는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펴신 것입니다,
그런에 이제 마을에서 쫓겨나시면서 장면은 바뀝니다,
예수님은 들판과 호숫가에서 비유로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들판의 비유로 가르치시면서
이방땅으로 항해하는 거라사와 시돈 그리고 테카폴리스라고하는
로마풍의 10도시의 이방선교여행과 다른 한편으로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 여행으로
이어지는 수난 여행으로 방향이 바뀌어지는데
이 예루살렘 여행부터 바로 예수님의 수난 경고가 이어지는
우리 사순절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방항해 여행과 예루살렘 수난여행부터 마가복음의 주제도
치유와 밥상공동체 운동에서 예수를 따름이라는 주제로 바뀌면서 제자들의
예수 따름의 실패와 예수님과 제자의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오늘 설교제목은 비유말씀과 함께 떠난 항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들판에서 제자들에게 씨뿌리는 비유 말씀을 전하시고
이제 저 건너편 이방땅으로 넘어가자 하는 그 시점에서 시작이 됩니다,
여기서 이 호숫가라는 장소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이 호숫가란 바로 들판과
그리고 고대사람들이 리바이던이라고 부르는 혼돈의 중심지인 바다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들판에서 호숫가에 배를 띠어 놓고 비유로 제자들과 무리들을 가르치시고 이제 저 호수 건너 낯선 이방땅으로 가기 위해 저 혼돈의 바다른 먼져 건너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준비되지 못한 제자들은 얼떨결에 이제 막 들판에서 씨부리는 비유를 듣고 이방땅으로 항해의 길에 오르는데 오늘 이 제자들이 바다 한복판에서 들판에서 본인들이 들은 비유이야기를 이 항해 도중 제자들은 기억하고 체험하게 됩니다,
37.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여기서부터 신앙의 핵심은 풍파와 같은 위기와 고난을 어떻게 헤치며 나가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잠잠케 제압을 해야하는데 제자들은 실패를 하고 마는 것입니다, ‘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여기서부터 신앙의 핵심은 풍파와 같은 위기와 고난을 어떻게 헤치며 나가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잠잠케 제압을 해야하는데 제자들은 실패를 하고 마는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마가 4장 15-19절의 씨뿌리는 비유말씀처럼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4;15. 말씀이 길 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또 어떤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19.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풍파가 치자 이들이 두려움과 공포로 사단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기고,
환난과 핍박과 세상 염려와 유혹으로 결실치 못하고 있는 것을 항해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지금 노년층 보다 40-50대 자살률이 가장높다고 하는데 청소년에 두배로
일년에 1600-2000명 정도되는 중장년층이 자살을 하신다고 합니다
, 대개 자기개발서 보고 성공을 위해 달려온 사람 고지식하게 열심히 일한 사람
주변 관게망도 없고 갑자기 위기에 닥쳤을 때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입시위주 자기계발서 위주의 스카이캐슬을 꿈꾸며 살아오게한
오늘 우리의 교육은 너무나도 잘못된 것입니다,
성공 실패 그리고 입시 경쟁 자기 계발서를 보고 자란 사람들은 오직 입시와 성적으로 대표되는 성공이외에 다른 자기 삶의 뿌리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의 실패나 고통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뭔가를 방어하고 버티다가 갑자기 위기가 닥치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육의 핵심은 임시나 성공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위기와 실패와 고난이 무엇인지 알고
그 위기와 실패를 넘어설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입시 코디네이터는 80년대 중반에도 있었습니다.
그때도 입주 과외 교사가 성적은 물론 생활 지도, 원서 내는 것까지 다 책임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교육 업체들이 창궐하면서 상류층 아이들이 전략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합니다. 이 입시공부에는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청년기 그리고 중 장년기의 자살률을 막으려면 우선 아이에게 살아갈 힘을 길러주어야 합니다.오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풍파와 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핵심적인 이유의 하나는 우리의 청소년기의 교육이 가족과 공동체에 의해서 이루어 진것이 학원과과 같은 사교육 기관이나 시장에서 맡겨서 교육되고 관리되었기 때문 입니다,
시장에서 맡겨져 학원의 입시 코디네이터에 의해 교육되고 관리된 사람들은 스스로 할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이 로봇 같이 키워 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승자독식의 세계관으로 쉽게 물들어져 자신들을 남들과 구분 짓고 싶어 하고, 어떻게든 지배층이 되어 세상을 독점하고 싶어 하는 이러한 자기 계발서류의 허황된 세계관을 자신도 모르게 주입 받게 됩니다. 이처럼 자기계발서류의 시장적 가치에 중독된 사람들은 자신의 삶 속에 다가온 풍파와 위기를 주변 사람들과 협력하며 자기 스스로 극복해 나가는 능력을 잃어 버려 인생의 풍파와 위기 가운데 스스로 서질 못하고 자신의 삶을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 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제 우리는 자녀들을 학습로봇으로 보아 오직 서로의 학력만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자녀들의 성적을 비교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승패나 우열에 신경을 곤두세우기 보다는 뭔가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집에서는 공부 못한다고 구박받는 아이가 동네 축제를 벌이면서 다른 부모에게도 인정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통찰을 얻을려면 가족을 넘어선 세대간의 만남이 중요하고 자기아이를 넘어서서‘사회적 양육’에 동참하는 일상의 반경을 넓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우리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부모들의 자녀를 위한
기도의 내용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 아이의 대학진학, 남편의 직장 승진 사업 성공, 내 교회의 부흥, 병에 걸린 가족의 쾌유, 자신과 가족의 건강.이렇게 모든 것이 나만 좋고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는, 저급하고 저속한(?), 혹은 수준낮은 한심한 기도와 믿음의 수준에 머물지 않으며, 나의 이웃 내가 속한 지역과 도시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구현하고, 하나님의 영향력이 되고자 하는 갈망하는 새로운 기도가 필요 합니다.
무수히 많은 실수와 실패를 하는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성공이 아니라 위기와 실패와 고난이
주는 축복의의미를 알아야 진정한 성공이 있는 것입니다.
입시와 성공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고난과 위기의 극복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예수와함께 바닷가를 건너 항해하는 제자들의 수없는 실패와 오늘 우리들이 격는 고난과위기와실패는 축복일수 있습니다,
제가 오래전에 산 책의 책 제목이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 입니다,
오늘 예수의 제자들은 이 이방땅 항해에서 큰 좌절을 경험하고 두려움 가운데
큰 실패를 맛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항해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해석학은 실패냐 성공이냐의 관점이 아니라 고난이 오히려 우리를 성장시킨다
는 새로운 관점입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에서 주인공 산티아고는 84일간 이나 고기를 잡지 못하고 한 노인이“돛은 여기저기 밀가루 부대 조작으로 기워져 있어서 돛대를 높이 펼쳐 올리면 마치 영원한 패뱅를 상징하는 깃발처럼 보였다”하는 낡은 배을 타고 바다에 나가 거대한 청새치를 잡았지만 상어들의 습격에 의해 그 살을 전부 뜯기고 실신해서 돌아옵니다,
그러면서 헤밍웨이는 이 장면에서 "인간은 파멸당할수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수는 없다” 라는 이야기 합니다. 즉 육체는 파멸될수 있더도 정신은 패배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온통 비유 뿐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에수님의 제자들처럼 비유의 배를
타고 저 미지의 세계로 향합니다,사순절 저 다른 곳을 가자던 예수님과의 항해에서 거듭된
실패를 하고 있지만 다음에 더 낫게 실패하다 보면 결국 우리 모두는 이 믿음으로
복된 항구에 도착할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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