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세상에 생명을 주는 분으로 4장에서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 6장에 생명의 떡 으로 9장에 생명의 빛 10장에 생명의 목자라는 사실을 누누이 증언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시기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의 물과 떡과 빛과 목자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오늘 나사로의 부활이야기는 베다니에서 일어나는데 요한 복음 기자는 이 나사로의 가족을 소개할때 2.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라고 소개 하면서 예수님이 이 마리아와 그의 언니 마리아와 오라버니 나사로를 끔직이 사랑했다고 이 가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4.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그런데 이상한일은 주님은 사랑하던 사람들인 나사로가 죽었다고 예수님께 전갈이 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예수님은 자신이 사랑하던 나사로가 죽었다는 전갈을 받고도 당장 달려가지 않고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시면서 나흘이나 지체한후 베다니로 갑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자 마리아는 21. 당신이 일찍 왔으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것이라고 섭섭함을 표현하지만 곧 이어22.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하고 마르다의 부활신앙을 표현합니다,
이에 23.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하자
24.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오라버니의 부활
을 믿음을 고백하자 이에 예수님은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을 영원히 산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이 오늘 코로나 사태로 공포와 두려움과 좌절과 절망에 빠진 우리에게 큰 위로하 힘과 희망이 되는 말씀인줄로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 사회가 코로나 때문에 공포와 두려움빠졌을 뿐만 아니라 서로 만나고 접촉하는것도 두렵고 공포스러운 상황이 되어 모든 사람들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시체와 같은 좀비가 되어 좌절과 절망으로 괴로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와 두려움에는 우리 신앙에 큰 위기와 절망과 좌절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의 빛과 소금과 치료와 구원의 기관인 교회마져도 이제 감염의 공간이 되어 교회의 예배를 페쇄해야하는 비상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본문에 나자로가 죽고 죽은지 사흘된 시체가 되자 나자로 주변사람은 그가 죽었고 다시는 살아날 수 없다고 난리를 치면서 이럴 때 예수님이 왜 이처럼 늦게 나타나셨느냐고 하실 때 예수님은 무엇이라 하십니까?
그가 잠든 것 뿐이고 내가 깨우러 갈것이고,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하나님이 일으킨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희망이 있다는 것이고 오히려 너희는 진정 부활인 무엇인지를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이번기회에 체험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
이 대목에서 우리가 읽어야할 중요한 말씀이 24절의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하는 부활신앙고백입니다 여기 24절의 마르다의 고백은 바로 죽은 사람의 부활을 미래의 일로 보는 당시 유대교의 부활의 사상과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부활 사상과 교리에 맞서 25절부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5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라고 말씀 하십니다,
당대 유대인들의 부활이해는 단순히 육체적 생명이 끊긴 이후의 부활만으로 알고 있습니다, 늘 죽음 다음의 먼 미래의 이야기 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을 먼 미래에 일어날 것으로 말하는 유대적 신앙을 넘어 죽은 나자로가 다시 살아나리라하는 부활이 지금 여기서 일어난다는 현재적 부활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이해하려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가 사는 베다니는 당시 문둥병자와 전염병걸린
사람들 그리고 창녀들등 소외된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지금 베다니의 나병환자들과 창녀들은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죽음의 권세 하에 있고, 죽음의 기운과 냄세와 권세가
그들을 지배하여 그들은 살은 것 같지만 사실 죽은 시체와 같은
절망과 좌절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베다니 마을의 죽음과 같은 상황을 대변하는 대표적 인물이 바로 나사로인 것입니다, 우리는 나사로의 부활에서 이 죽음의 권세하에 눌려 붕대로 묶여 돌로 입구가 가로막혀진채로 묻혀진 나자로를 보아야 하고 예수님이 일으킨 부활 사건은 바로 이 죽음에 권세에 묵인 나자로를 일으킨 사건으로 읽어야 합니다,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자 오늘 우리 사회에서도 본문에서 예수님이 나흘만에 도착하자 이미 나자로는 죽은 지 사흘이 지났다, 이미 시체 냄세가 펄펄난다, 큰일났다 우리가 다 죽게되었다하는 공포와 절망의 아우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여기서 이 코로나 사태를 통해 먼져 지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죽음의 권세와 파워와 그 네트웍과 전염력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라고 하는 전염병이 창궐하자 이 죽음의 권세와 네트웍들은 온힘을 다해 공포감을 퍼트리고 있기에 우리가 가장 먼져 맞서 일어나야 하는 것은 바로 이 공포감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나자로는 지금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자고 있는 것이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라고 말씀 하시것처럼 우리는 이 죽음의 권세와 냄세와 공포감에서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일어선 것처럼 지금 여기서 이세상을 지배하는 죽의 권세와 파워와 냄세와 네트웍에 대항하여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부활사건이란 단순히 죽은 다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를 지옥으로 만들고 죽음의 권세와 전명병의 권세에 죽읨의 네트웍들에 맞서
생명과 부활의 권세와 네트웍으로 일어나는 일임을 분명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 전염병의 시기에 모든 공간이 감염을 매가하는 공간이 되어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는 것을 꺼려하고 공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제 교회 마져도 공간적으로는 온 세상에 창궐하는 바이러스 병균의 우산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도피처'도 아니요, 염병·악질·전염병·온역·역병에서 보호해 줄 안전지대가 아니게 되면서 그동안 거룩한 은총의 매개 공간이었던 교회마져도 지금 은총의 공간이 아니라 감염의 공간이되어 예배를 패쇄하고있는 실정이라는 것 입니다,(김동춘교수:느헤미야신학교)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이 교회라는 공간을 감염의 공간이 아니라 생명과 부활의 거룩한 공간으로 다시 고백할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옥성득 UCLA 교수 “신천지 토양은 개신교 대형 교회”라고 하면서 개신교 대형 교회들이 눈에 띄게 퇴조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면서 “이제 많은 사람이 모이면 힘이 있는 게 아니라 위험합니다. 작은 공동체 교회를 향한 열망이 커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요한 복음은 바로 당시 유대교에 의해 핍박 박해 받는 작은 교회인 요한 신앙 공동체에서는 쓴 책입니다,
그들은 너희 작은 교회에 무슨 가능성이 있어 너희는 벌써 죽었고 시체냄세가 나 하고 박해할 때 여기에 대향해서 죽은 나자로를 살리는 예수의 부활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부활신앙은 신천지처럼 시한부 혹은 조건부 종말론에 묶여 있습니다, 그것은 먼 훗날 몇날 몇시에 내가 어떤 조건을 충족시킬 때 일어날 일로 치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자로를 무덤에서 일으키신 예수님의 부활은 더 이상 시한부 조건부 부활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일어나는 부활사건 인 것입니다,그것은 사망과 죽음의 권세 앞에서 아무것도 할수 있는 인간들을 비통하고 불쌍히 여기사 이 눈물을 딱아주기 위해 이 공감과 고난으로 발검음을 옮기신 예수님의 부활신앙에서 시작된일 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부활신앙은 지금 이 죽음의 냄세와 권세와 네트웍에 맞서 부활생명을 일으키는 연대와 돌봄, 사랑과 헌신,그리고 생명과 평화의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은총공간으로서 교회가 폐쇄되고 있는 이러한 때야 말로 은총의 공간을 오직 교회당 안으로 자폐 폐쇄하는 낡은 신앙이 아니라 우리의 은총의 공간이 지역사회와 마을 전체로 확장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있다는 새로운 부활신앙의 눈으로 이사태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부활신앙으로 재 무장할 때 우리는 우리 사회 곳곳이 새롭게 움직이는 것을 분명히 볼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지금 모든 공간이 감염의 공간 죽음의 공간으로 되면서 모든 시장과 거리의 중소상인들이 지금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씁니다 그리고 지금 무엇보다도 몇주째 수입이 없는 작은 소상인들을 다시 살려야 합니다,
이러한 절대 절명의 순간 우리는 지금 대구로 내려가는 광주의 달빛 의료 지원단 일시적으로 임대료를 받지 않는 착한 건물주나 이러할 때 국회에서는 국민모두에게 기본급을 지급하는 국민청원을 운동이 일어나고몇몇 지역교회들이 이러한 재난 시기에 교회의 시설들을 지역에 개방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일이야 우리의 은총의 공간이 교회에 패쇄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마을 전체로 확장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있다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지금 이 시기야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나는 시기이요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이 은혜에 동참할때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얼마전 우리 약대동 마을의 평화아카데미 분들과 모였습니다,
이제 이 기후위기의 시대와 재난시대를 맞이하여 우리 평화아카데에서는 재난의 학교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이제 전연병이 자주 출몰할터인데 그때마다
이렇게 매번 공포에 휩사일수 없다는 것입니다,
재난학교을 만들어 재난에 대응하는 마을 단위의 매뉴얼을 만들고
마을의 모든 의료인등 종교인들 마을 돌보미들과 지역상인들을
재난에 대항하는 돌봄과 평화의 네트웍으로 묶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역과 마을의 의사들과 교회와 지역 돌보미들이 그야 말로 재난에 대항하는 공공병원 마을 에너지 발전소 녹색 평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고 만들 수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자기 사업체를 잠시 접고 대구에 내려간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될 때 우리 사회가 감염과 죽음의 공간에서 생명과 부활의 공간으로 재생할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 교회라 이일에 앞장서야 할때입니다,
43.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의 마지막 장면에서 예수님이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부르니 수족을 베로 동이고 그 얼굴이 수건에 싸인채로 나온 나사로를 풀어주어 그를 자유롭게 다니게 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무덤과 같은 현실이 되어 있는 거리에서 공포로 마스크 얼굴을 가린채 거리를 다니며 심지어우리의 얼굴을 뒤덮는 그 마스크가 동이났다고 아우성이 죽음의 사망권세가 득세하는 이 무덤과 같은 현실에서 예수님이 무덤가에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하고 죽은 나사로를 불러 일으키신 것 처럼 부활의 신앙으로 우리를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지금 이때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며
지금 이세상을 지배하는 사망권세의 그 구속과 억압을 향해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시며 그 구속과억압을 풀어헤치시며 자유롭게 다니게 하라는 주님의 부활의 음성을 외칠 때입니다,
지금 이 시간이야 말로 우리의 은총의 공간인 거룩한 교회가 단순히 교회라는 건물로 퍠쇄되는 것을 넘어 지역사회와 마을 전체로 확장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때요, 지금 이야 말로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며 그 부활에 동참할때임을 고백할수 있는 은총의 시간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는 이 예수님의 부활신앙을 기초로 연대와 돌봄, 사랑과 헌신, 공평과 정의, 생명과 평화가 넘치는 예수님의 공동체와 마을을 만들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사망권세가 죽음의 공포로 우리를 지배하려는 이 사순절 부활의 능력을 기억하며 승리하시는 우리 그리스도의 신앙인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